팟캐스트를 대하는 전통 미디어들의 자세
소비자의 눈높이 충족을 위한 전통 미디어의 팟캐스트 운영 사례들
*본 콘텐츠는 음성 서비스가 지원됩니다.
콘텐츠를 기획하는 이들이라면
지금, 팟캐스트
AI 스피커의 급부상에 따라 음성인식 시장이 발달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콘텐츠’에 주목하고 있다. 음성 콘텐츠 플랫폼 ‘팟캐스트(iPod+Broadcast)’가 최근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애청자 입장에서 팟캐스트가 AI 스피커로 인해 주목받고 있다고 말하기엔 이미 그 안에는 양질의 콘텐츠가 가득했다. 콘텐츠 가뭄 현상에 시달릴 때마다 출구 역할을 해주기도 할 만큼 다양한 기획으로 가득하고 그만큼 무궁무진한 확장성을 자랑하기도 하니까. 이번 특집은 콘텐츠 측면에서 팟캐스트 플랫폼을 담아봤다.
- 콘텐츠를 기획하는 이들이라면 지금, 팟캐스트
- 당신의 취향을 만나는 팟캐스트 채널
- 팟캐스트를 대하는 전통 미디어들의 자세
- 내 옆자리 디자이너들의 이야기, 디자인 전문 팟캐스트 ‘디자인테이블’
팟캐스트를 대하는 전통 미디어들의 자세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 전통 미디어가 전부였던 시절에는 그것들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전해주고, 개인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유일한 도구였다. 그러나 SNS 및 각종 1인미디어가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으로, 아니 누군가는 기존 미디어를 대체하는 새로운 창구로 받아들이면서 콘텐츠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한정적인 미디어의 일방적인 메시지를 여과 없이 수용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 소비자는 정보 습득을 위해서든, 단순 재미만을 위해서든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콘텐츠를 취사선택하고 있으며, 때로는 자신 스스로 콘텐츠 창작자가 되기도 한다. 전통 미디어는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독자로부터 출발한 팟캐스트,
라디오가 되다 ‘Monocle 24 Radio’
“종이는 죽었다.” 전통 미디어의 디지털화를 바라보며 가장 먼저 인쇄 매체의 몰락이 점쳐졌다. 물론 이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보란 듯이 다시 전 세계에서 구독자를 늘리고 있는 잡지, ‘모노클(Monocle)’은 사정이 다르다. 2007년 창간 이후 최고 연 35%의 성장률(발행 부수 기준)을 기록했고, 지금은 신간이 나오면 전 세계에서 8만 부 넘게 팔려나가고 있다. 이러한 모노클의 성공을 두고 사람들은 ‘브랜드화’의 성공이라 해석한다. 말 그대로 모노클의 브랜드 파워가 모든 것을 이뤘다는 것. 그렇다면 모노클의 브랜드화 저변에 깔려있는 기본 철학은 무엇인가. ‘프리미엄 콘텐츠’다. 아주 정확하고 디테일한 타깃(평균 연봉 3억 이상, 1년에 해외 출장을 10번 이상 가며 MBA를 졸업하고 도시에 거주하는 금융, 정부 기관, 디자인, 관광 산업 종사자)을 설정하고는, 그 어느 곳에서도 접할 수 없는, 오직 그들만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 왔기에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노클은 종이에 머무르지 않고 디지털과의 접점을 만들었으며, 2011년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자사의 독자들이 출장 등 이동 중에 들을만한 콘텐츠가 없다는 점에서 착안해 언제 어디서나 24시간 프리미엄 오디오 콘텐츠를 들을 수 있도록 팟캐스트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확장돼 디지털 라디오 형태(모노클 24 라디오)로 진화해 운영되고 있다(팟캐스트 콘텐츠를 엮어 하나의 라디오 채널화 했다). 이 디지털 라디오를 통해 모노클의 독자들은 24시간 하이 레벨의 외교, 비즈니스, 문화, 디자인 등의 주제에 대해 모노클만의 시각과 감성을 귀로 느낄 수 있게 됐다.
한편 타일러 브륄레 모노클 대표는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기존 독자들이 주로 라디오를 듣지만, 라디오 서비스를 통해 모노클을 접하고 매거진 구독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기존 독자를 위해 출발한 라디오 서비스가 역으로 신규 독자의 유입경로가 되고 있는 셈. 그렇게 모노클에 입문한 독자들은 다시 ‘기존 독자’가 되어 모노클에 강한 심리적 소속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Keeping an eye and an ear on the world, 모노클의 슬로건이다. 세상에 눈과 귀를 기울일 것, 모노클이 바라보는 또 하나의 세상은 그들의 독자들이 아닐까.
활자가 아닌 말로 기사를 쓰는 사람들
국내 신문 매체에서 팟캐스트 플랫폼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중앙일보가 먼저 떠오른다(사실 시작은 회사 차원이라기 보다 기자들의 개인 프로젝트 성격). 2030세대의 이야기를 파격적인 형식과 아이디어로 담아낸 중앙일보 ‘청춘 리포트’ 지면을 2015년 신문사(소속 기자) 최초로 팟캐스트로 끌어와 ‘청춘 라디오’를 만들었고, 현재 청춘 라디오의 세번째 버전인 ‘듣똑라(중앙일보 언니들의 듣다보면 똑똑해지는 라디오)’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듣똑라는 세 명의 여기자들이 고정 호스트로, 자사 기자들과 함께 각각 사회, 경제, 문화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채널이다.
‘기자면 기사나 잘 쓰지 그런 건 왜 하는 거야?’, ‘그냥 자기 잘 났다고 자랑만 하는 거 아니야?’라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채널명에 지향점을 명시했듯, 그저 친한 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 정도로 각 주제에 대해 친절하고 편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그야말로 듣고 있다 보니 왠지 똑똑해질 것만 같아 많은 이들이 유용하게 챙겨 듣고있다. 그런데 듣똑라의 전신인 ‘청춘 리포트’의 첫 진행을 맡았던 두 명의 기자는 그 이전부터 개인적으로 팟캐스트를 운영했던 경험이 있다는 사실. 지면에 담지 못했거나, 제한된 공간에 미처 풀어놓지 못한, 기자로서 가지고 있는 콘텐츠에 대한 목마름이, 터 놓고 말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이 이러한 팟캐스트를 만들게 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그런가 하면 최근 들어 흥미로운 모습이 포착됐다. 중앙일보가 NHN엔터테인먼트와 공동 제작하는 팟캐스트 서비스 ‘J팟’을 오픈한 것이다. J팟은 중앙일보의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으로, 기자 개개인이 운영하는 팟캐스트와 달리 회사 차원에서 포털업체와 손잡고 본격적으로 팟캐스트 운영에 나선 최초의 사례다.
“J팟은 중앙일보 기자들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이야기를 담은 공간입니다. 소소한 일상의 이치부터 미래 전망 인문학까지 각양각색의 팟캐스트를 지금 들어보세요!”
J팟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문구다. J팟의 신호탄은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의 ‘리궁수다’. 윤석만 기자의 ‘인간혁명’이 울렸다. 앞으로 중앙일보 기자들이 어떤 콘텐츠로 J팟을, 그리고 청취자들의 만족도를 채워나갈지가 궁금하다.
거대 공룡의 팟캐스트 진출
팟캐스트 시장으로의 진출 대열에는 방송사도 빠지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팟캐스트 세상에 눈을 뜨기 전 기자는 이미 TV 채널과 라디오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방송사가 팟캐스트(여기서 말하는 팟캐스트 콘텐츠는 이미 방영된 프로그램의 녹취본이 아닌 새로이 기획·제작된 오리지널 팟캐스트를 의미)를 운영한다는 것이 다소 낯설었다. 인프라와 자본 측면에서 거대 공룡인 방송사가 굳이 팟캐스트를 한다? 하지만 이는 팟캐스트의 존재 이유인 콘텐츠의 자율성과 다양성, 그리고 내용의 깊이 측면으로 접근하니 이해가 됐다. 돌이켜 보면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한 이후로 라디오 방송에서 멀어진 이유도 명확했다. 팟캐스트는 콘텐츠의 본질에서 벗어난 외부 제약이 없는 만큼, 훨씬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이야기가 오고 가는 장이 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방송은 편성표에 따라 정해진 타임라인에 맞춰 송출되어야 한다. 하나의 프로그램에 주어지는 시간은 한정적이고, 그 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프로그램 사이에 계약 완료된 광고가 순서대로 나가야 하며, 방송 언어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제된 언어만을 사용해야 한다. 아, 상업 브랜드명은 당연히 노출할 수 없다. 토론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쉽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심의를 피하기 위해 지켜야 할 이와 같은 규제들은 콘텐츠에도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어느 공중파 방송사 아나운서들이 한 자리에 모여 팟캐스트 채널을 시작했는데, 첫 번째 에피소드에 나왔던 말이 있다.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이야기 하기 부담스러웠던 속 깊은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해보자는 취지에서 팟캐스트 방송을 시작한다. 그리고 좀 더 자율성을 갖기 위해 익명이라는 장치를 가져왔다.”
‘나꼼수(나는 꼼수다)’ 종료 이후 잠시 주춤하는 듯했던 팟캐스트가 최근 들어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는 만큼, 방송사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검증된 팟캐스트 채널을 가져와 TV 또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변형해 송출하는 것이다. 다만 단순히 포맷을 가져오는 데서 끝날 문제는 아닌 듯 하다. 팟캐스트를 공중파로 가져와 입맛에 맞게끔(?) 살짝 모양을 다듬는 과정에서 콘텐츠의 본질이 다시 흐려지는 모습도 보이기 때문이다. 라디오 방송으로 재편되면서 재미가 반감됐다고 평가 받는 팟캐스트 채널이 있는가 하면, 팟캐스트 내에서는 약이었으나 공중파에서는 독이된 ‘편향성’을 문제로 폐지 수순에 들어간 프로그램도 있다. 단순히 플랫폼을 가져오는 데서 끝날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어떻게 기획하고 전달할 것인지가 역시나 핵심이다.
지금까지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는 전통 미디어의 사례를 살펴봤다. 각각의 활용 목적과 형태는 다르지만, 그 안에는 높아진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콘텐츠 확장성의 고민이 묻어있었다. 이어서는 콘텐츠 수용자에서 벗어나 스스로 콘텐츠 제작자의 길에 접어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