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UX

[기고] XR은 왜 아직 일상이 되지 못했을까?

경험 설계 관점으로 본 공간 서비스

※ 해당 콘텐츠는 조영희 나인파이브 대표의 기고를 바탕으로 제작됐습니다.

XR(확장현실) 헤드셋을 처음 써본 사람의 표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눈이 커지고, 손을 허공으로 뻗고, “와”하는 짧은 감탄을 내뱉는다. 그리고 5분쯤 지나면 헤드셋을 벗는다. 다시 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는 나인파이브에서 XR 애플리케이션을 디렉팅하고, 공간 경험을 평가하는 멀티모달 분석 연구들을 진행해 왔다. 덕분에 기술을 밖에서 관찰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그 공간 안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디서 등을 돌리는지 가까이 지켜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XR이 대중화되지 못한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험이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XR이 일상으로 들어오지 못한 이유를 물으면 보통 이런 답이 돌아온다. 기기가 비싸고 무겁다, 콘텐츠가 부족하다, 멀미가 난다.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원인이 아니라 증상에 가깝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지난 10여 년간 XR 산업이 “이 기기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위에서 발전해 왔다는 점이다. 360도를 볼 수 있고, 손으로 허공을 만질 수 있고, 가상의 공간을 걸을 수 있다는 기능의 나열이 곧 제품이 됐다. 하지만 정작 던졌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사람은 이 공간 안에서 무엇을 느끼고 싶어 하는가.”

기능을 파는 제품은 신기함을 준다. 그러나 신기함은 한 달을 못 간다. 고객의 하루에 자리를 잡으려면 신기함이 아니라 필요와 의미가 있어야 한다. 스마트폰이 일상이 된 것은 화면이 신기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매일 하고 싶은 일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XR은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기술의 천장은 충분히 높아졌지만, 그 아래에 사람이 머물 이유를 만들어주지 못한 것이다.

기술보다 경험 설계가 중요한 이유

하나의 매체가 대중화되는 순간은, 사람들이 그 기술을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될 때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쓰면서 터치스크린의 정전식 센서를 떠올리지 않는다. 그냥 그 안에서 살아간다. 반대로 XR은 여전히 “이 기술 좀 봐”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사용자가 기술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곧 경험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신호다.

XR에서 경험 설계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사람의 몸 전체와 감각이 인터페이스가 되기 때문이다. 화면 속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머무는 방향, 몸이 움직이는 속도, 공간이 주는 거리감과 밀도가 그대로 경험이 된다. 그래서 설계의 실패는 피로감과 멀미, 방향 상실 같은 신체적 불편으로 곧장 이어지고, 설계의 성공은 몰입과 안정감, 경외감 같은 감정으로 되돌아 온다.

기술은 가능성의 천장을 정한다. 그러나 그 천장에 사람이 닿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경험 설계다. 같은 하드웨어, 같은 해상도, 같은 트래킹 성능을 가지고도 어떤 공간은 사람을 머물게 하고 어떤 공간은 5분 만에 헤드셋을 벗게 만든다. 그 차이는 사양표에 적히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래서 나인파이브에서 진행한 두 XR 프로젝트를 통해 경험 설계의 중요성을 설명해본다.

1. 명상 앱: 사실감과 상호작용의 균형

나인파이브에서 제작한 XR 명상 애플리케이션은 “명상 경험에서 XR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일반적으로 명상 콘텐츠는 불필요한 자극을 줄이고, 최대한 단순하고 추상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안정감에 유리하다고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실제 테스트 과정에서 확인한 것은 조금 달랐다. 외부 전문 기관과 함께 진행한 UX 평가에서 전문가 그룹과 일반 사용자를 대상으로 정량 데이터와 인터뷰를 수집했는데, 추상적이고 단조로운 시각 표현이 몰입과 감정적 반응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반대로 시각적 완성도와 사실감을 끌어올린 환경에서 사용자는 더 깊이 몰입했다. 텅 빈 추상 공간보다, 충분히 그럴듯해서 ‘실제로 그곳에 있다’고 느껴지는 공간이 사람을 더 깊이 가라앉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오르비 XR 명상앱의 명상 공간(자료=나인파이브)

이 발견을 따라 다섯 개의 환경을 가능한 한 높은 품질로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예를 들어 ‘모래 동굴’ 환경이 그랬다. 처음에는 바닥에 모래가 깔리고 하늘엔 별이 가득한, 경계가 없는 추상적 무한 공간이었다. 시각적으로는 아름다웠지만 사용자를 충분히 붙들지는 못했다. 사실적인 환경이 오히려 몰입을 끌어올린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이 공간을 실제로 있을 법한 지형의 모래 동굴로 바꿨다. 끝없이 열린 추상 공간 대신 동굴이라는 구체적인 장소가 주어지자, 사용자는 ‘어딘가에 실제로 들어와 있다’는 감각을 한결 분명하게 느꼈다.

다만 XR에서 사실감은 공짜가 아니다. 렌더링 성능, 발열, 프레임 안정성 같은 제약이 곧장 몰입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유니티 환경에서 구현 가능한 범위를 조율하며, 사실감과 실행 안정성 사이의 균형점을 환경마다 다시 찾아야 했다.

오르비 XR 명상앱의 메뉴(자료=나인파이브)

상호작용도 마찬가지였다. 명상하는 사람에게 복잡한 조작을 학습시키거나 기능을 탐색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시선과 움직임이 직관적으로 이어지고, 공간의 반응은 과하지도 둔하지도 않아야 한다. 반응이 조금만 어긋나도 명상 상태는 깨진다. 작은 행동 하나가 어떤 피드백으로 돌아오는지, 그 반응이 고요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살아 있다’고 느껴지는지를 수없이 테스트하며 다듬었다.

결국 XR 명상의 몰입은 ‘조용하고 비어 있는 공간’에서 나오지 않았다. 실제 장소에 있는 듯한 환경적 신뢰감과, 내 행동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섬세한 상호작용이 함께 맞물릴 때 깊어졌다. 이 경험 속에서 기술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사용자가 공간을 믿고 머무를 수 있게 하는 보이지 않는 구조로 작동했을 뿐이다.

2. 전시 앱: 감상의 조건 설계하기

아트리액트 XR 도입부(자료=나인파이브)

현재 나인파이브에서 개발 중인 XR 전시 애플리케이션도 좋은 사례다. XR 전시는 물리적 전시장보다 훨씬 자유로운 공간 구성이 가능하지만, 자유도가 좋은 감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거리, 스케일, 시선의 흐름, 주변 환경, 안내자의 개입 정도를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경험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작품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보다 “관람자가 작품과 어떻게 관계 맺게 할 것인가”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안내자, 즉 NPC(비플레이어 캐릭터, Non-Player Character)의 완성도와 개입 방식이었다. 전시 공간에서 안내자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다. 관람자의 감상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순간에 작품 이해를 도와주는 매개자에 가깝다.

그러나 이를 XR 환경에서 구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실사 인간형이나 인간·동물 캐릭터형처럼 구체적 형상을 갖춘 NPC는 현실감과 존재감을 줄 수 있지만, 완성도가 조금만 부족해도 곧장 어색함이나 거리감을 만든다. 반대로 추상형 NPC는 전시 환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지만, 그만큼 실체감이 옅어 몰입감이나 교감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이를 만들어내려면 더 섬세한 설계가 필요하다. 따라서 NPC를 어떤 형태로 구현할 것인지, 어느 정도의 존재감을 부여할 것인지, 언제 개입하고 언제 물러나게 할 것인지를 세밀하게 설계해야 했다.

추상형 NPC(좌)와 구체형 NPC(자료=나인파이브)

그래서 우리가 디자인한 NPC는 하나의 고정된 형태에 머물지 않는다. 도입부와 몰입 모드에서는 추상형, 곧 빛의 형태로 등장해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환경에 스며든다. 반면 전시 공간을 안내하거나 관람자가 직접 불러 대화할 때(LLM 기반)는 빛에 캐릭터 형태가 더해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고요히 물러나 있어야 할 순간에는 빛으로, 다가가 도와야 할 순간에는 형상을 갖춘 안내자로, 같은 NPC가 맥락에 따라 존재의 밀도를 달리하며 변주된다. 형태를 하나로 고정하지 않은 덕분에, 구체형 NPC가  안고 있는 어색함과 추상형 NPC가 안고 있는 교감 부족을 모두 피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핵심은 몰입 모드의 디자인과 설계다. XR 전시라면 작품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거나 원작을 분리해 새로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택한 방향은 정반대였다. 작품은 원형 그대로 두고, 대신 관람자가 더 깊이 집중할 수 있는 감상 환경을 만들었다.

아트리액트 XR의 작품 감상 몰입 모드(자료=나인파이브)

예컨대 작품으로 진입할 때는 사용자가 선 바닥에서 공간 전체로 천천히 번지는 점진적 트랜지션을 써서, 장면이 갑자기 바뀌지 않고 자연스럽게 감싸이도록 했다. 거리는 가장 보기 좋은 감상 거리에 놓이도록 다시 맞추고, 스케일도 몰입에 적정한 크기로 키웠다. 밝기는 감상에 집중되도록 한 단계 낮췄고, 작품의 분위기에 맞는 앰비언트 사운드로 공간 전체의 정서를 작품 쪽으로 모았다.몰입 모드를 통해 관람자의 주의를 작품 쪽으로 정렬시키고자 한 것이다.

결국 XR 전시의 몰입은 하나의 기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NPC와 AI 큐레이션이 알맞게 개입하고, 몰입 모드가 집중할 환경을 만들고, 감상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비로소 진짜 몰입이 가능했다. XR 전시의 핵심은 작품을 새롭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보존하면서도 관람자가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었다.

AI 시대, 공간 인터페이스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공간 경험은 대부분 미리 짜여 있었다. 설계자가 장면을 만들어 두면, 사용자는 그 고정된 공간을 통과할 뿐이었다. 그런데 AI는 이 전제를 바꾼다.

앞으로의 공간은 사람에게 실시간으로 반응할 것이다. 시선이 어디에 머무르는지,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나아가 그 순간의 정서적·생리적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공간이 다르게 펼쳐진다. 인터페이스는 점점 환경 속으로 녹아든다. 사용자가 UI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사용자를 ‘이해하고’ 응답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멀티모달 센싱과 AI가 결합하면, XR 공간은 고정된 무대가 아니라 반응하고 개인화되며 살아 있는 환경이 된다. 이때 설계자의 역할도 달라진다. 정해진 장면을 그리는 사람에서, 반응의 규칙과 의도를 설계하는 사람으로 옮겨간다. 무엇을 보여줄지를 일일이 지정하는 대신, 어떤 의도와 원칙 위에서 공간이 스스로 변주하도록 판을 짜는 것이다.

필자가 공간 경험을 정량·정성적으로 측정하는 멀티모달 연구에 매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가 좋은 경험을 만들어내려면, 무엇이 좋은 경험인지에 대한 모델이 먼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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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R의 미래는 기술보다 경험 구조에 있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XR이 대중화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능만이 아니다. 사용자가 그 공간 안에서 무엇을 느끼고, 이해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XR은 화면을 대체하는 기술이라기보다, 사용자의 몸과 시선, 감각과 인지를 다시 조직하는 새로운 인터페이스 환경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나인파이브에서 다양한 XR 앱을 만들며 끊임없이 던진 질문도 이와 같다. 이 경험을 위해 가상 공간이 꼭 필요한가. 사용자는 이 공간 안에서 무엇을 더 잘 할 수 있는가. 기술은 어느 순간 드러나야 하고, 어느 순간 사라져야 하는가.

XR의 가능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야 시장의 질문이 기술에서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전환점에서 중요한 것은 더 강한 몰입이 아니라, 더 정확히 설계된 몰입이다. 사용자가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감각하고, 선택할 수 있을 때 XR은 비로소 일상의 인터페이스가 될 것이다.

조영희 대표 / 나인파이브

디지털 디자인 스튜디오 나인파이브(NINEFIVE)의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20년 이상 디지털 브랜딩, UX/UI, 웹·애플리케이션, XR 기반 인터페이스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연세대학교 통합디자인 박사로 몰입형 환경과 사용자 경험, 스케일 기반 인터랙션 설계를 연구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사용자 경험과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강의하고 있다. 최근에는AI 시대의 공간 인터페이스와 몰입형 경험 설계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 현 나인파이브 대표/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현 연세대학교 통합디자인학과 박사 및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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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장준영 (zzangit@di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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