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차 AI 스타트업이 CES 2024 최고혁신상을 받은 비결은?
강성훈 스튜디오랩 대표 인터뷰
“오픈AI가 우리 회사를 죽였어(OpenAI killed my startup).”
지난해 말 오픈AI의 데브데이(개발자대회) 직후 실리콘밸리에서 유행한 밈입니다. 오픈AI가 대형언어모델(LLM) 강화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파생 서비스까지 공개하자 사업 분야가 겹치는 많은 생성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이 경쟁력을 잃게 된 상황을 과장되게 표현한 건데요.
밈이라고 마냥 웃어 넘길 일은 아닌 모양입니다. 국내외 AI 스타트업의 냉엄한 현실을 관통한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거든요. 실제 미국 IT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데브데이를 두고 ‘AI 스타트업 최후의 날’이라는 평가를 남겼습니다.
AI 스타트업을 괴롭히는 건 오픈AI뿐이 아닙니다. 대기업과의 경쟁도 치열합니다. AI 서비스는 필연적으로 규모, 즉 방대한 데이터와 막대한 비용을 요구하는데 이걸 가장 잘 하는 건 대기업이거든요. 한쪽에선 오픈AI가 서비스를 확장하고 다른 한 편에선 대기업이 고도화된 서비스를 내놓고 있으니, AI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어도 스타트업이 경쟁력을 갖추기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실제로 미국 벤처투자사 글래스윙 벤처스의 설립자인 루디나 세세리는 최근 미국에서 열린 한 AI 행사에 참가해 “AI 시대에 스타트업은 기존과 전혀 다른 어려움에 직면했다”며 “고객이 구매하고 싶을 만큼 성숙하고 신뢰할 만한 서비스를 개발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요구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요. 잘 나가는 곳은 분명 존재합니다. AI 스타일테크 기업 스튜디오랩도 그 중 하나입니다. 스튜디오랩은 지난 1월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 2024에 참가해 AI 부문 최고혁신상을 거머쥐었습니다. 해당 상은 총 두 곳에만 수여됐는데요. 다른 한 곳은 독일 최대 기술회사 보쉬입니다.

게리 샤피로 CTA(전미소비자기술협회) 회장은 CES 2024 개막식에서 “AI 서비스 상용화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사용성을 강조했습니다. 스튜디오랩의 수상을 주목할 만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혁신적이고 참신한 기술력을 인정 받아서가 아니라 실제 고객의 지갑을 열 만한 사용성을 AI 서비스에 녹여냈기 때문입니다.
스튜디오랩은 2021년 삼성전자 사내 벤처로 분사해 올해로 4년차를 맞이했습니다. 제품 사진을 업로드하면 온라인 쇼핑몰 상세페이지를 자동으로 생성하는 ‘셀러캔버스’를 운영 중입니다. 어떻게 4년차 국내 스타트업이 쟁쟁한 빅테크를 넘어 보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까요? 비결은 1. 뾰족한 타깃 2. 전문가 수준의 품질 3. UX로 요약할 수 있는데요. 강성훈 스튜디오랩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결 1. 뾰족한 시장 설정
스튜디오랩은 이번 CES 2024에서 셀러캔버스로 AI 최고혁신상을 받았습니다. 셀러캔버스는 패션 분야 온라인 커머스 셀러를 타깃으로 한 SaaS 기반의 AI 서비스로, 제품 사진을 웹에 업로드하면 15~30초 만에 상세페이지를 만들어 줍니다.
셀러캔버스의 최대 강점은 뾰족한 타깃 설정에 있습니다. 넓은 이커머스 영역 중 패션 분야를 콕 짚었고요. 특히 ‘상세페이지 제작’이라는 구체적인 업무에 집중했습니다. 상세페이지에 주목한 건 그 안에서 반복되는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선 국내 온라인 커머스의 벨류 체인은 크게 <온라인 쇼핑몰 제작 – 제품 촬영 – 상세페이지 제작 – 광고물 제작 – 판매 관리> 5단계로 구성되는데요. 이 중 처음과 끝인 쇼핑몰 제작과 판매 관리 단계에는 네이버스마트스토어나 여러 웹 빌더 서비스와 같은 자동화 솔루션이 존재하지만요. 제품 촬영과 상세페이지 제작, 광고물 제작 등 중간 단계는 여전히 수작업으로 진행돼 자동화 솔루션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것이 강 대표의 설명입니다.
상세페이지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제품을 클릭했을 때 나타나는 페이지고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제작에는 생각보다 많은 품이 듭니다. 수십, 수백 장의 이미지 중 가장 좋은 것을 선별한 뒤 보정을 거쳐야 하고요. 제품에 어울리는 디자인과 레이아웃, 카피 문구를 일일이 만들어 보기 좋게 배치해야 합니다. 전문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짧게는 수 십분, 길면 수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죠. 이를 수 분 단위로 단축했으니 시장의 호응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강 대표는 처음부터 뾰족한 타깃 설정을 위해 시장 조사를 철저히 진행했습니다. 삼성전자 재직 시절 사이드 프로젝트 겸 취미로 작은 무인 패션 스튜디오를 운영했는데요. 고객이 방문할 때마다 커피 한잔을 건네며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공통적으로 수집한 의견이 “온라인 쇼핑몰의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게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죠.
스튜디오를 방문한 셀러 분들의 하루 사이클을 살펴 보니 이렇더군요. 그날 장사를 마치고 동대문에서 옷을 떼 오면 새벽 2~3시입니다. 이 시간에 무인 스튜디오를 방문해요. 혼자 옷 세팅하고 타이머 맞춰가며 촬영한 뒤 집에 돌아가 밤 새가며 상세페이지를 만듭니다. 이런 반복 업무를 우리 기술로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셀러캔버스는 지난해 말 베타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당초 타깃으로 설정했던 소상공인 셀러뿐 아니라 대기업과 중견기업에서도 러브콜이 쏟아졌습니다. 기업 내부 디자이너들도 비슷한 고충을 갖고 있던 것이죠. 현재까지 제작된 상세페이지는 1000건 이상, 고객사는 30개 사에 이릅니다.

비결 2. 품질 극대화… “상세페이지는 K-콘텐츠”
타깃만 잘 설정했다고 서비스가 팔리는 건 아닐 겁니다. 품질이 뒷받침돼야 하죠. 그런데 적지 않은 AI 스타트업이 이 점을 간과합니다. ‘AI가 어떻게 완벽하겠어? 어느 정도 부족한 점은 사용자도 이해해 주겠지’ 라고 여기는 건데요. 강 대표는 “AI 서비스라고 해서 실수가 허용될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품질이 어설프면 아무도 돈을 내고 구매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죠. 무조건 사람이 만든 것만큼 좋아야 해요. 셀러캔버스를 예로 들면요. 크몽의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제작한 수준의 품질을 갖추면서도 속도는 더 빠르고 가격은 저렴해야 비로소 시장에 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셀러캔버스는 전문가 수준의 결과물을 자부합니다. 사진 속 의류 특성을 완벽히 분석해낼 수 있도록 개발 초기부터 자체 비전 AI와 생성 AI 기술력을 연구했고 특허도 받았습니다. 타깃을 패션 분야로 한정한 것도 품질을 극대화하기 위함입니다. AI 서비스를 고도화할 때는 생성 AI가 내놓는 잘못된 답변을 사전에 걸러내는 것이 중요한데, 답변 영역이 좁아야 예외 케이스를 완벽히 잡아낼 수 있다는 판단이었죠.
수많은 빅테크가 선보인 첨단 기술의 향연 속에서 셀러캔버스가 CES 2024 최고혁신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도 이 품질에 있습니다. 정확히는 사용자의 지갑을 당장 열 수 있을 만큼 뾰족하고 명확한 서비스,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사용성을 인정 받은 겁니다.
더해서 서비스 대상이 상세페이지라는 점도 수상에 도움이 됐습니다. 강 대표에 따르면 상세페이지는 단순한 제품 설명 이미지가 아닙니다. 고객이 제품 구매 직전에 마주하는 마지막 화면이기 때문에 구매 전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요. 디자인 감각은 물론 스토리라인에 맞게 배치하는 능력도 요구돼 전문적인 마케팅 콘텐츠라는 설명입니다.
해외 쇼핑몰에는 상세페이지라는 개념이 따로 없어요. 아마존만 봐도 제품 이미지에 카피 정도 적은 게 전부죠. 우리나라가 가장 발전돼 있어요. 상세페이지는 이른바 K-콘텐츠인 셈입니다. 국내에서 최고 품질이 되도록 서비스를 개발했으니 글로벌 시장에선 당연히 놀랄 수밖에요. 최근에 한 일본 업체가 한국 쇼핑몰 스타일의 상세페이지를 만들고 싶다면서 저희에게 연락을 줬는데, 이처럼 해외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걸로 예상됩니다.

비결 3. UX 고도화… 촬영부터 제작까지 한번에
셀러캔버스는 최대한 사용하기 쉽도록 개발됐습니다. 마치 카카오톡으로 이미지를 전송하듯 제품 사진을 업로드하기만 하면 되죠. 주요 타깃이 IT 저관여자인 소상공인 셀러이기 때문에 특히 더 UX에 신경을 쓴 건데요.

스튜디오랩은 나아가 제품 촬영 업무까지 자동화한다는 구상입니다. 이를 위해 AI와 로보틱스를 결합한 자동 촬영 로봇 포토봇을 지난해 개발했습니다. 포토봇은 피사체 인식 기술을 통해 촬영을 진행합니다. 중요한 건 로보틱스가 아닌 탑재된 AI라는 게 강 대표의 말인데요. 예컨대 셔츠를 촬영할 경우 전체 모습뿐 아니라 옷깃이나 단추 등 세부적인 부위까지 별도로 촬영하는 등 제품 특성에 따라 어떤 사진이 필요한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많은 패션 기업이 제품 촬영을 전문 사진 작가에게 맡깁니다. 20~30벌을 보내면서 정해진 가이드라인에 따라 촬영을 요청하는데요. 아무래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요청 사항이 누락되는 등 실수가 발생하곤 합니다. AI는 그런 걱정이 없죠. 균일하고 정확한 촬영이 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앞서 온라인 커머스 5단계에서 설명했듯 제품 촬영은 고비용 저효율 시장에 해당합니다. 스튜디오랩은 올해 상반기 중 포토봇을 셀러캔버스와 결합해 온라인 쇼핑몰 콘텐츠 제작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자동화한다는 계획입니다. 사용자는 포토봇을 간단히 조작하는 것만으로 제품 사진과 상세페이지를 한번에 얻을 수 있겠죠.
결론. ‘AI 꼬리표’보다 비즈니스가 더 중요
스튜디오랩은 앞으로 고객층을 확대해 나갈 방침입니다. 이미 농수산물, 가공 식품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소상공인으로부터 문의가 들어오는 상황이고요. 패션이라는 아주 좁은 타깃으로 시작해 시장성을 검증한 뒤 영역을 확장하는, 스타트업으로서는 이상적인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서비스 품질도 고도화한다는 계획입니다. 전문가보다 더 뛰어난 결과를 내겠다는 건데요. 강 대표가 주목하는 건 데이터 기반의 상세페이지입니다. 시간과 비용 문제로 A/B 테스트 진행조차 어려운 게 상세페이지 업무의 현실이지만요. 셀러캔버스의 AI 기술을 활용해 여러 종류의 콘텐츠를 제작한 뒤에요. 페이지 방문자가 누군지, 예컨대 젊은 여성인지 중년 남성인지 등에 따라 최적의 상세페이지를 자동으로 노출, 구매 전환을 극대화하는 서비스를 구상 중입니다.
정리하면요. 스튜디오랩이 4년차 스타트업임에도 CES AI 최고혁신상을 수상한 데는 우선 뾰족한 타깃 설정이 주효했습니다. 그 덕에 생성 AI 서비스의 고질적인 문제인 환각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요. 의류 인식 기술 등에도 과감한 투자를 진행, 서비스 품질을 극대화했습니다. 이를 통해 소비자가 지갑을 열 만한 사용성을 갖출 수 있었죠.
쓰고 보니 ‘좋은 스타트업’이 갖춰야 할 요소를 나열한 셈인데요. AI 시대라고 해서 특별한 비결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방증일 겁니다.
스튜디오랩의 사례가 모든 스타트업에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힌트를 찾자면요. 대기업에 비해 데이터와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우선 시장을 좁고 분명하게 설정하는 것이 서비스의 경쟁력을 빠르게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 될 겁니다. 결국 ‘서비스에 AI가 탑재됐느냐’보다는 ‘무엇을 해결할 것인가’가 여전히 더 중요한 과제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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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장준영 (zzangit@di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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