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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콘텐츠로 배우는 연애

새로운 관계에 대한 의욕을 되찾을 시간, N포세대에게 쏟아지는 연애 콘텐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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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로 배우는 연애

흔히 N포세대라고 부르는 20~30대가 3포, 4포, 5포, 7포, 10포를 거치는 동안, ‘연애’는 이들에게 꼬박 포기됐던 것이었다. 연애는 포기했다던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애 콘텐츠가 최근 쏟아지고 있다. 이들 콘텐츠가 그려내는 연애가 어떤 모양새인지 살펴봤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데 집중하는 일’이
‘허용’되는 것

관계에 온전히 집중할 시간

연애를 포기한다고 할 때 까닭의 십중팔구는 돈과 시간의 부족이다. 돈은 항상 없고 쓸 수 있는 자유시간은 항상 적다. 감히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는 일은 철 모르는 행동 같다. 어떤 콘텐츠는 그래서, 부족한 것을 일부 채우는 것에서 시작한다.

채널A에서 방영 중인 관찰 예능 ‘하트 시그널’은 여덟 명의 청춘 남녀를 한 달간 한 공간에서 생활하게 해, 그 안에서 마음이 가는 상대를 찾도록 한 일종의 장기 소개팅 프로그램이다. 2017년 시즌 1을 화제 속에 마무리하고, 현재 시즌 2가 방영되고 있다.

‘시그널 하우스’에서 출연자들은 아기자기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이들은 각자의 일상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함께 장을 보고 밥을 짓고 얼굴을 마주 보며 식사한다. ‘데이트권’이라는 명분 안 혹은 바깥에서 서로를 알아간다. 일상적인 대화 중에 마음이 움트고, 조금 치사한 마음에서 질투가 생기고, 아주 사소한 말실수로 인해 마음 아파한다. 이는 그 공간의 ‘약속’ 덕분이다. 이들에게도 각자 시달리는 현실이 있겠지만, ‘누군가를 알아가는 데 집중하는 일’이 ‘허용’되는 시그널 하우스에서, 잠시 그것을 제쳐두고 연애를 우선에 두는 것은 철 모르는 소리가 아니라 당연히 그래도 되는 것이다.

하트시그널 시즌2의 한 장면

시그널 하우스 안에서 보이는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을 ‘해설’하는 패널진도 프로그램의 재미다. ‘러브라인 추리게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니만큼, 매 화 그들의 감정을 함께 가늠하고 말과 행동의 까닭을 짚어보는 재미가 있는데, 이를 패널진의 해설이 배가한다. 시청자와 함께 영상을 시청하던 패널들이, 같은 타이밍에 환호하고 탄식하는 것을 보는 재미다. 여기에 장면마다 복선과 상징을 깔아두는 세심한 연출과 공들인 음악 및 영상은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제작진의 ‘의도’를 짚어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출연자들이 친해지는 모습도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다. 시즌1 마지막 화에서 출연자 한 명이 울었던 이유는 사랑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였다. 시즌2에서도 이 공간을 나가면 다시 혼자 밥 하고 밥 먹어야 하는데 아쉬워서 어쩌냐고 말한 출연자가 있었다. 이들이 그 공간에서 연애 감정과 함께 새로운 관계에 대한 노력 의욕을 ‘한꺼번에 다시 찾는’ 과정은 시청자에게도 느슨하게나마 비슷한 감정을 전해준다.

출연자들이 친해지는 과정도 프로그램을 보는 재미 중 하나다
(이미지는 하트 시그널 공식 채널에 올라온 시즌1 커플캠)

그렇게까지 낭만적이지 않지만

위 프로그램에서도 그렇지만, 근래 연애를 다루는 콘텐츠의 시선은 대체로 ‘일상적’이다. 사소하고 구체적인 상황 상황을 가까이서 들여다 본다.

콬TV의 웹 드라마 ‘전지적짝사랑시점(이하 전짝시)’는 20대 초중반 남녀의 얽히고설키고 비껴나는 짝사랑사(史)를 담고 있다. 이들이 그리는 연애사는 이렇다.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연애는 이제 그만’을 외치는 여자에게 꼬박꼬박 ‘밥 먹었냐’고 물어주던 남자의 번호가 종국에 ‘쿠쿠’로 저장된다.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와 관계가 깨지는 것이 무서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두려 노력해보지만 결국 잘 되지 않는다. 마음이 오락가락하다가 결국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에게 돌아간다. 굉장한 갈등도 없고 돌발하는 사고도 없고 엄청난 오해도 없다. 그들의 문제는 오롯이 내 마음이 뭔지 모르겠고 네 마음이 뭔지 모르겠다는, ‘마음’의 문제다. 그들 바깥에서 보면, ‘뭘 그런 걸로 그렇게 심각하냐’고 할 만한, 한 발 물러 보면 상황 자체는 별 것 아닌,그냥 연애사다.

여기서 또 하나 ‘없는’ 것은 펀치 라인에 가까운 낭만적인 대사다.

웹 드라마 ‘전지적짝사랑시점’의 한 장면. 흰색 글자는 나레이션이다

전짝시의 등장인물들은 정말 ‘할 만한’ 대사를 한다. 드라마 바깥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할 것 같은 말이다. 말로 내기에 조금 과잉된 구구절절한 속마음은 삼킨다. 때문에 나레이션이 극 전반을 차지한다.

전짝시에 애정을 가지는 이들은 전짝시의 가장 큰 매력으로 나레이션을 꼽는다. 그냥 연애사를 겪으며 속으로 삼킨 말들이 있는, 짝사랑에 앓아 본 20대들은 세심한 나레이션에 공감을 표하며 전짝시에 대한 애정을 댓글에 드러내고 있다.

전짝시는 나레이션 중 사랑받은 구절을 새긴 굿즈를 판매하기도 했다
(이미지는 굿즈 홍보 라이브 방송. 실제 전짝시 배우들이 참여했다)

공감이 되니까

전짝시가 20대 초중반 대학생들의 연애사를 그리면서도 캠퍼스 바깥을 배경으로 삼은 편이 많다면, 본격적으로 타깃을 좁혀서 아주 캠퍼스 안을 배경 삼은 콘텐츠도 있다. 웹 드라마 ‘연애플레이리스트(이하 연플리)’가 예다.

본격 ‘청춘멜로’를 표방하는 연플리는 대학생들의 캠퍼스 연애사를 그리고 있다. 시종 상쾌하지만, 역시나 ‘공감’을 놓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우선, 배경이 캠퍼스에, 이제 막 입학한 신입생을 놀려 먹는 선배나 먹고 토하는 동아리 활동, 아르바이트, 장학금 걱정 등 대학생들이 당장 겪고 있는 상황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대학생들 사이의 지지가 높다.

연플리에서도 대사는 어딘가에서 꼭 누군가 할 법한 대사다. 역시 격앙된 속마음은 속으로 삼킨다. 짧은 재생시간으로 고민하고 마음 키우는 과정을 천천히 그려내기 어려운 탓이겠지만, 이 역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웹 드라마 ‘연애플레이리스트’의 한 장면. 조별 과제 첫 모임 상황이다
웹 드라마 ‘연애플레이리스트’

바깥에서 보면 별 것 아닌 그냥 연애사, 넓혀서는 관계사에 오래 마음쓰고 있는 내가 왠지 한심해보일 때, 이토록 수많은 연애 콘텐츠들을 둘러 봐도 좋겠다. 결코 하찮거나 우습거나 배불러 생기는 마음이 아니라고, 당신에게 진지한 것이면 진지하게 다뤄질 만한 것이라고, 아주 가까이서 공감해주는 목소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