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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인터뷰] 32년 간 이어진 글자에 대한 탐구… 홍익대학교의 소모임, 한글꼴연구회를 만나다

한글꼴연구회 회장단 인터뷰

국내에서 디자인과 예술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홍익대학교다. 1946년 재단법인 홍문대학관으로 시작한 홍익대학교는 그동안 한국 미술을 이끄는 수많은 거장을 배출한 명맥 있는 학교다.

일례로 작년 10월 작고한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 또한 홍익대학교 출신으로, 1997년 정년 퇴직 전까지 홍익대학교 회화과에서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홍익대학교의 타이포그라피 소모임 ‘한글꼴연구회’. 올해로 32주년을 맞은 오래된 소모임이다(자료=한글꼴연구회)

이처럼 국내 미술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홍익대학교에서 학교의 발자취만큼이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소모임이 하나 있다. 바로 올해로 32주년을 맞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시각디자인전공 타이포그라피 소모임인 ‘한글꼴연구회’다.

1992년 설립된 한글꼴연구회는 한글을 중심으로 타이포그라피를 공부하는 학술 모임이며, 서체 개발부터 레터링, 저판, 제책과 그래픽에 이르기까지 글자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다.

올해도 한글꼴연구회는 타이포그라피를 소재로 두 권의 도서 출판을 준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홍익대학교의 역사 깊은 소모임, 한글꼴연구회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와 궁금증을 3인의 회장단을 서면으로 만나 물었다.

타이포그라피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모이는 곳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글꼴동아리의 회장 김주현(이하 김), 정우성(이하 정), 그리고 부회장 이주아(이하 이)입니다.

한글꼴연구회에 대한 소개를 듣고 궁금한 게 많았습니다. 매력적인 소모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 분은 어떤 이유로 입회하게 됐나요?
김: 타이포그라피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수업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타이포그라피 기반의 그래픽 디자인과 편집 디자인의 매력에 빠진 게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이: 대학에 진학할 때부터 타이포그라피에 관심이 있었어요. 글자를 그리거나 지면을 다루는 편집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 대학에 진학했으니까요. 신입생이던 때 소모임 설명회에서 한글꼴연구회에 대해 알게 됐고, 여러 사람과 함께 작업하며 타이포그래피를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입회하게 됐어요.

정: 석재원 교수님과 구자은 교수님의 타이포그라피 강의를 듣고 타이포그라피의 매력을 알게 됐어요. 더해서 디자이너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글자를 다룰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울러 두 교수님 모두 한글꼴연구회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입회를 결정하게 됐죠.

교수님과 학생이 동아리 선후배라는 점이 독특하네요.
정: 동아리 역사가 긴 만큼 현업에서 활동하시는 디자이너부터 교수님까지 다양한 곳에서 한글꼴연구회의 선배님들이 활동하고 계세요. 말씀 드린 것처럼 학교에도 한글꼴연구회 출신 교수님이 여럿계시고, 강의 외에도 한글꼴연구회 활동을 위해 많이 도와주고 지원해주고 계십니다.

학교 밖에서 활동하는 선배들과의 교류도 활발한가요?
이: 맞아요. 작년 여름에는 산돌에서 재직하고 계신 노은유 교수님과 이유빈 디자이너님, 정태영 디자이너님께서 ‘타입 쿠커 워크숍(Type Cooker Workshop)’을 진행해주셨고, 이외에도 현업에 계신 많은 선배님들이 워크숍 등 다양한 교류의 기회를 마련해주고 계십니다.

출판부터 전시까지… 활발한 한글꼴연구회의 활동

2006년부터 비정기로 발행된 한글꼴연구회의 출판물 ‘가나다라'(자료=한글꼴연구회)

오랜 연혁만큼 다양한 작업물이 소모임 활동을 통해 만들어졌을 것 같은데요. 대표적인 작업물이 궁금합니다.
김:
한글꼴연구회의 비정기 출판물인 ‘가나다라’를 소개하고 싶어요. 2006년 1호로 시작해 현재 7호까지 발행된 가나다라는 활동 시기에 한글꼴연구회가 가장 주목하는 주제를 연구해 발행하고 있습니다.

5호부터는 출간 시기에 맞춰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고 있고, 7호 출간 이후에는 북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아트북페어인 언리미티드에디션(Unlimited Edition)에도 참여했습니다.

정: 저는 2022년 코엑스&파르나스 미디어타워에서 진행됐던 한글날 576돌 타이포그라피 전시 ‘마음으로, 한글로’를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코엑스에 위치한 대형스크린을 통해 작품이 전시됐는데, 거리의 풍경 속에서 스며든 한글꼴연구회의 글자가 인상적이었요.

올해도 두 권의 책을 출판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김: 우선 앞서 말씀드린 가나다라의 8번째 발행을 앞두고 있어요. 저희 한글꼴연구회의 대표적인 출판물인 만큼 올해도 출판을 위해 열심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권은 어떤 책이죠?
이: 올해 처음으로 출판을 계획 중인 ‘레터링들’이라는 책입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한글꼴연구회 회원들이 하나의 주제 안에서 다양한 언어가 가진 문자를 표현한 레터링을 담은 출판물이에요.

한글꼴연구회의 이름에 직접적으로 ‘한글꼴’과 ‘연구’라는 말이 포함된 탓에 한글 만을 연구하는 모임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이번 출판물을 통해 저희가 한글뿐 아니라 라틴, 히라가나 등 다양한 글자를 연구한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요.

독립 출판을 결심한 계기가 궁금한데요.
이: 가나다라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한글꼴연구회는 오래 전부터 출판물을 만들어왔어요. 대한교 안에 소속된 모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립출판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모임의 작업물을 외부에 공개하는 자연스러운 방법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한글이 가진 타이포그라피적 매력

이번 <DI> 274호의 표지를 디자인했습니다. 세벌체를 디자인에 활용했다고 들었는데, 세벌체란 무엇인가요?

정: 세벌체는 닿소리, 홑소리, 받침글자가 각각 한 가지의 형태로 조합되어 사용되는 글자꼴입니다. 세벌체라는 개념은 닿자 1벌, 홑자 1벌, 받침자 1벌로 글자가 타이핑되는 세벌식 타자 글자판 구조에서 비롯되었는데요.

홍익대학교 시각 디자인과 로고인 인사수체(자료=홍익대학교)

닿자/ 홑자/ 받침자를 하나씩 조합한다는 특징에서 한글의 모아쓰기의 특징이 드러남과 동시에 완성형 폰트와 조합형 폰트에 비해 매우 경제적인 글꼴 제작 방법입니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로고(ㅎㅇㅅㄷ)에 사용된 안상수체가 가장 세벌식 서체의 대표적인 예시죠.

한글 폰트를 디자인함에 있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요소는 뭘까요?
김: 가장 중요한 건 전달하고자 하는 인상이 전체 글자를 통해 잘 드러나야 한다는 점인 것 같아요. 의도 안에서 가독성의 확보는 물론, 글자가 시각적으로 균질하게 그려졌는가를 중점적으로 봐야 하죠.

이: 저도 시각적 균질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서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평균 1만 1172자의 글자를 그려야 하는데요. 그 글자가 어느 조합, 어느 위치에 쓰여도 균형을 가질 수 있도록 디자인 하는 게 한글 폰트를 작업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한글 폰트를 디자인 할 때 곧잘 기준이 되는 글자가 있어요. 바로 ‘그를니빼’인데요. 한글 중에서 가로획과 세로획이 가장 적은 글자와 가장 많은 글자를 모두 포함하고 있죠. 이 모든 글자가 적절한 회색도를 유지하도록 의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타이포그라피에서 한글이 가진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 개인적으로 단순히 멋을 내려면 라틴으로 디자인 하는 게 더 쉽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라틴에 비해 다루기 어렵고, 멋지게 표현하기 어렵다는 점이 오히려 한글이 매력적인 이유가 된다고 생각해요. 쉽지 않으니 더욱 아름답게 잘 해내고 싶게 만들거든요.

김: 한글이 모아쓰기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보니, 다양한 글자 조합에서 자음과 모음이 여러 형태로 그려질 수 있다는 점이 재밌습니다. 특히 같은 ‘ㄹ’이라도 ‘라’에서나 ‘를’에서 그려지는 모양이 다른 것처럼, 단어마다 획의 개수, 속공간의 크기, 균형감 등 고려해야 할 점이 다르니 그자를 그릴 때도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요. 그런 여러 요소를 고민하며 그려가는 게 마치 주어진 문제를 해결한다는 인상을 줘 더욱 재밌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이: 단순한 기하학적 모양의 조합으로 이뤄진 글자라는 점이 제겐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원과 사각형, 삼각형 등 기하학적 도형을 결합하거나 회전하는 방식으로 수많은 글자가 만들어진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소모임과 학업, 그 사이에서 뛰어난 디자이너를 향해

학업과 소모임을 병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정: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개인적인 어려움을 꼽자면 저는 체력적인 부분이 큰 것 같아요. 특히 3시간 정도 되는 학과 강의를 듣고 회의에 참여하거나, 회의 전까지 작업을 완성해야 하는 게 힘들죠. 하지만 소모임을 통해 같은 관심사를 가진 회원들과 함께 작업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다양한 전시 참여부터 현업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디자이너분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감사가 더 큰 것 같아요.

김: 소모임 활동이 학생들 사이에서는 전공수업을 하나 더 듣는다는 정도의 인식이 있어요. 당연히 전공을 많이 듣는 학기에는 소모임 활동을 병행하는데 조금 힘들어질 때도 있죠. 그러나 같이 활동하는 회원들과 함께 이겨낸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학업과 소모임 활동을 병행하고 있어요. 


이: 저도 체력적인 부분과 시간적인 부분에서 힘들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여러 전공 강의와 소모임 활동을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소모임 활동과 전공 수업, 이 둘이 재밌는 시너지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해요. 힘든 것 보다는 이런 경험에서 오는 즐거움을 더욱 크게 느끼면서 활동하고 있어요.

작년은 유독 더 바빴다고 들었어요.
김: 한 해 동안 많은 전시를 진행했어요. 한글꼴연구회에서 정기적으로 그렸던 세벌체를 되살리고자 ‘봄전: 세벌체’라는 전시를 진행한 것을 시작으로 여름에는 한글과 타 문자를 혼용한 레터링 전시 ‘언어의 노래, 문자의 춤’을, 가을에는 두성종이서초갤러리에서 ‘2023 한글꼴연구회 가을전: 만약에’를 진행했죠.

올해 한글꼴연구회가 참여한 ‘TYPE LOOP’ 전시(자료=한글꼴연구회)

봄, 여름, 가을 모두 전시를 열었네요. 올해도 활발히 전시를 진행하고 있나요?
이: 올해 3월 2020년부터 열린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소모임전, 줄여서 ‘시소전’에 참여했어요. 제 5회 SISO ‘OUR INDEX’의 ‘TYPE LOOP’로 참여해 베리어블 폰트를 전시했습니다.

학업과 소모임 모두 열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앞으로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나요?
김: 제 색이 강하면서도 위트를 놓치지 않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아울러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 긴 시간 동안 유효한 작업을 이어가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정: 누가 봐도 제가 한 디자인이라는 점을 알아볼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유명해지고 싶다는 의미 보다는, 그만큼 제가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의 색이 강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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