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29CM 카피라이터의, 조금 사적인 프로젝트
‘업으로서의 글’과 ‘사적인 글’ 사이의 균형을 맞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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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의
조금 사적인 프로젝트
글로 음악으로 공간으로, 브랜드는 자기다움을 만들어간다. 어떨 때는 ‘왜 그 브랜드에서?’ 싶을 만큼 사적인 일을 벌이기도 한다. 이런 브랜드의 브랜딩과 마케팅 사례를 다루다 보니 ‘그렇다면, ‘나’라는 브랜드는 어떻게 정의하고 구축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기에 이르렀다. 이번 특집에서는 ‘조금 사적인 프로젝트’로 경험을 확장하고 업을 깊게 파고드는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를 담아봤다. 그들의 사적인 프로젝트 사례를 보며 여러분도 ‘나’라는 브랜드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 Project 하나. ‘나’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
- Project 둘. 조금 사적인 프로젝트를 하는 기획자
- Project 셋. 조금 사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한 ‘중딩’
- Project 넷. 조금 사적인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디자이너
Project 둘.
조금 사적인 프로젝트를 하는 기획자
이유미 29CM 카피라이터
글을 끄적이는 걸로 먹고 살 수 있다니 새삼 놀랄 때가 많다. 동시에,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니 그것대로의 고충이 밀려왔다. 일의 영역과 사적인 영역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기 힘들었기 때문. 그런 기자는 이유미 카피라이터가 29CM 매거진에 연재했던 ‘소설로 카피쓰기’로 ‘업으로서의 글’과 ‘사적인 글’ 사이의 균형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공감을 일으키는 콘텐츠
29CM는 온라인 편집샵이지만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는 온라인 쇼핑몰을 넘어서 디자인 참고사이트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기자 역시 기사를 작성하며 29CM를 자주 참고한다. 처음 29CM를 드나들기 시작한 건 푸시알림 ‘루시’ 때문이었다. 내일 비가 오니 우산을 챙겨나가라고, 지금 듣기 좋은 노래니 한 번 들어보라고,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산책을 하며 햇볕을 쫴 보는 게 어떠냐고 말을 건다. 다루는 주제 역시 책, 음악, 그림 등 일상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알림 서비스에 공감하고 더 나아가, 말을 건넨 이가 궁금해지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어떻게 공감을 이끄는 기사를 작성할 수 있을지가 최대 고민이었던 기자였기에 29CM가 콘텐츠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식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소설로 카피쓰기
공감은 제품 카피로도 이어졌다. 29CM에 들어서면 많은 브랜드가 모여있음에도 따로 노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디자인으로 톤앤매너를 유지해서이기도 하지만 기자에게 가장 컸던 건 그들의 ‘카피’였다. 브랜드나 제품 설명은 마치, 나에게 말을 거는 듯 공감하게 만들었다.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감정이나 경험을 특정 상황과 함께 묘사하면서 제품의 필요성을 이끌어내는 흐름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공감되는 카피를 쓸 수 있을까. 이유미 29CM 카피라이터가 29CM 매거진에 연재한 ‘소설로 카피쓰기’를 통해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소설로 카피쓰기’는 소설 속 공감되는 문장이나 상황을 카피로 옮기는 과정을 담아낸 연재 글이다. 사실, 우리가 제품이나 브랜드에 관심을 갖게 되는 순간은 그리 대단치 않다. 아주 사소한 불편이나 감정을 알아봐줄 때 마음에 들어온다. 이유미 카피라이터는 아래처럼, 제품을 우리 일상 속 장면과 연결해 공감을 이끌어낸다.
# 소설 속 문장
그녀의 유일한 사치는 좋은 이불과 베개를 사들이는 것이었다. 그녀는 퇴근 후, 뜨거운 물로 씻고 나와 깨끗한 이불을 덮고 누우면 죽어서 천국에 간 기분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이 그녀의 두 가지 소망이었다. 고통 없이 죽는 것과 천국에 가는 것.
– 정한아 ‘애니’ 中, 문학과지성사 2015
# 완성 카피
매일 밤 경험할 수 있는 천국(메인 타이틀)
고단한 하루를 마친 뒤 따뜻한 욕조 물에 몸을 녹입니다
숨이 살아있는 두껍고 포근한 OO 이불에 몸을 묻습니다
당신이 누워있는 그곳이 매일 갈 수 있는 천국입니다(서브 타이틀)
사적인 취미가 업으로, 업이 다시 사적인 프로젝트로
평소 공감되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놓는 습관이 있었던 그는 제품 카피에 문장을 응용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의 사적인 습관은 ‘소설로 카피 쓰기’라는 회사 내 프로젝트로 이어지게 된다.
그는 29CM다움을 글로 전달하는 카피라이터지만 가구디자인 전공에서 편집디자인이라는 다양한 업을 거쳐 오기도 했다. 현재 ‘소설로 카피 쓰기’를 ‘문장 수집 생활’이라는 책으로 발간하기도, 글쓰기 모임을 열기도, 브런치를 통해 글을 연재하기도 한다. 사적인 습관이 업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꾸준히 업으로 쌓은 것들은 다시 그의 사적인 프로젝트로 이어진 것이다. 업으로서의 글과 사적인 글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나다움’을 쌓기까지 그의 생각과 태도가 궁금해졌다.
Mini interview
업으로서의 글과 사적인 글 사이의 균형 맞추기
“본인이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차근차근, 틈틈이 준비해 나가면 언젠가는 꼭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소설로 카피 쓰기’ 콘텐츠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1년 회사 초창기 때는 에디터가 저밖에 없었어요. 사장님을 비롯 여러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며 글에 대한 톤앤매너를 만드는 과정을 거쳤어요. 제가 워낙 책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소설을 좋아해서 공감되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 놓는 습관이 있어요. 우연히 그것을 카피에 응용해 보게 된 거죠.
단어나 문장을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소설에서 나오는 일상에서 공감되는 상황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어 카피를 썼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얼마 후 팀장님과 1년 동안 진행할 프로젝트를 구상하던 중 제가 ‘카피 쓰는 방식을 브런치에 연재하면 어떨까?’하는 의견을 냈고 일주일에 하나씩 ‘소설로 카피 쓰기’를 연재하기 시작했어요.
Q. 그렇게 회사 내 프로젝트로 시작한 ‘소설로 카피 쓰기’를 책 ‘문장 수집 생활’으로 엮으셨어요. 뿐만 아니라, 브런치를 통해 ‘지하철에서 책 읽기’, ‘매일 읽는 여자의 오늘 사는 이야기’를 연재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책잡힌 날’이라는 독서모임과 ‘쓸 수 있는 밤’이란 글쓰기 모임도 진행하고 요. 본업을 사적인 프로젝트로 확장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문장 수집 생활>이 출판된 후 조금 더 다양한 일을 많이 하게 되는 요즘인데요. 그러면 그럴수록 본업에 지장을 주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다행히 제가 하는 사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분들이 직장인들이 대부분이어서 모임이나 강의 시간이 퇴근 후거나 일요일이에요. 그래서 업무에 지장 없이 저 또한 큰 무리 없이 진행하고 있는 듯합니다.
Q. 책 속 구절 중 ‘일과 취미를 병행하고 싶어 찾은 방법이 소설로 카피 쓰기’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었어요. 일과 취미를 병행했을 때 업의 연장선이 된다는 부담은 없었나요?
운이 좋게도 저희 회사의 업무 진행이 자유로운 편이에요. 그리고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 일하다가 책을 들춰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요.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좋아서 책을 읽으면서도 ‘아, 이런 부분은 카피에 응용해 봄직하겠다’ 싶어서 체크를 해놓는 순간 약간 일하는 것 같기도 해서 부담까진 아니지만 책을 제대로 즐기진 못하는 느낌은 들었어요. 물론, 매번 그런 건 아니고요. 모든 책을 읽을 때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에요.
Q. 그렇게 덕업일치를 이루기까지 가구디자인 전공에서 편집디자인이라는 업의 변화를 거쳐오셨어요. 열망했던 글 쓰는 일이 본업이 되기까지 어떤 노력을 해오셨을지 궁금해요.
주변 분들이 저를 보고 ‘성공한 덕후’라고 말해요. 그 이유가 책을 좋아하기 때문인데요. 책을 너무 좋아해서 많이 읽다 보니 덕후가 되었는데 제 책도 내고 이름도 조금 알려지니 성공했다고요. 글을 써야지 하고 노력을 했다기 보다는 책을 워낙 좋아해서 많이 읽다 보니 쓰고 싶어졌던 거죠.
잘 쓴 글, 좋은 글을 보면 질투가 나고 나도 저렇게 쓰고 싶단 욕심이 생기니 그땐 어떻게 하면 저 작가처럼 쓸 수 있을까 고민은 했던 것 같아요. 따라서 어떤 노력을 했다기보단 그저 마음껏 좋아한 것이고 많이 읽고 필사한 게 노력이라면 노력일 듯해요.
Q. 일과 취미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한 카피라이터님의 태도와 생각을 많이 배우게 돼요. 카피라이터님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업을 고민하고 발전시키고 있을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려요.
제가 글쓰기 모임이나 강연 같은 데서 꼭 하는 말이 ‘좋아하는 것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라’는 거예요. 이게 쉽지 않지만 어려우니까 더더욱 우리는 좋아하는 것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오래 유지할 수 있어요. 미술학원 강사도 하고 편집디자인도 했지만 에디터 업무를 가장 오래 할 수 있고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은 건 좋아하는 책과 관련된 업무여서 그런 거니까요.
다양한 일을 거쳐온 시간이 아주 가끔은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돌이켜 보면 제가 글 쓸 때 그때의 경험을 많이 글에 녹이고 있더라고요. 지난 과정이 다 헛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본인이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차근차근, 틈틈이 준비해 나가면 언젠가는 꼭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