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조의 파라다이스엔 핑크 호랑이가 산다
동물과의 공존을 꿈꾸는 오조(OZO) 작가 인터뷰
사랑을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랑은 각기 다른 모양과 빛깔을 갖고 있어 하나로 결론지을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을까? 사랑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3년이라는 속설이 있지만, 오조 작가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동물을 향한 그의 핑크빛 사랑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파라다이스에는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다. 동물들은 파라다이스 안에서 인간의 간섭 없이 자유를 누린다.
글. 이재민 기자 youjam@ditoday.com
사진. 딜리언메타 제공
안녕하세요, 작가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핑크 호랑이 ‘피거’와 핑크 코끼리를 그리는 작가 오조(OZO)입니다.
작가님 성함을 들었을 때 오즈의 마법사가 생각났어요. 오조는 무슨 의미인가요?
제가 한국에서 활동한 기간이 길지 않아요. 계속 외국에서 활동했거든요. 작품 밑에 적는 서명이 원래 ‘ㅇㅈㅇ’이었는데, 제 본명 ‘이주운’에서 자음만 따온 것이었죠. 그런데 외국인들이 영어로 착각해 ‘오조’라고 읽더라고요. 듣자마자 ‘이거다!’ 싶었어요. 사실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려고 했었는데, 빠르게 태세 전환했습니다!
관람객들이 숨을 불어넣은 이름이라니, 더 뜻깊네요.
돌이켜보면 관람객들 덕분에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처음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며 전시하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냥 제 그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페이스북에 계속 그림을 올렸어요. 제 그림을 인상 깊게 보신 어떤 분이 온라인 전시를 제안하셔서 전시를 시작하게 됐어요.
작가로 활동한 지 얼마나 됐나요? 그동안 작가님의 활동이 궁금합니다.
2013년 현대카드 ‘뉴원프로젝트’를 통해 데뷔했으니 벌써 10년 차가 됐네요. 토스, 적십자, 삼성 갤럭시 테마 등과 컬래버레이션했었고, 밴드 엔플라잉의 보컬리스트 유회승과 멜로망스 정동환이 참여한 ‘김형석 with Friends’ 두 번째 앨범자켓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블루캔버스와 함께 빈센트 반 고흐 화가를 오마주하는 작업도 했어요. 영상 제작을 좋아해 전자맨 프로듀서와도 협업했어요. 디지털로 영상만 만들면 지루하던데, 음악이 더해지니까 재미있더라고요.
지난해 국내 최장수 아트페어인 화랑미술제에 참여하셨죠?
네, 관람객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화랑미술제 이후부터는 제 그림의 테마와 분위기를 더 살릴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있어요.
지금은 주로 디지털 아트를 작업하시는데, 아일랜드에서 실내 인테리어를 공부하셨네요?
시작은 디지털 아트였어요. 제가 엄청 아팠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선물 받은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며 힐링했었어요. 태블릿의 진가는 여행 다닐 때 드러났어요. 전에는 그림부터 물감, 붓, 거치대까지 들고 다니기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노트북과 태블릿만 들고 이동하니까 정말 편했어요. 실내 인테리어를 공부한 이유는 유럽에서 다른 분야로 더 활동하고 싶었고, 아트테리어(아트와 인테리어의 합성어)에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작가님의 작품을 보니 동물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동물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예전에 동물원을 갔는데, 동물원에 없는 동물이 있었죠. 사람들이 식용하고 있는 핑크 돼지는 동물원에 없어요. 핑크 돼지가 인간의 삶에서 육식을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은데, 동물원에서 핑크 돼지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구나’라는 생각에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대해 깊이 돌아보게 됐어요. 핑크 돼지 자체가 제게 많은 영감을 줬어요.
처음에는 핑크 돼지의 젖을 먹고 있는 사람들 모습 같은, 좀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그렸어요. 동물과의 공존이라는 개념에 빠져들다 보니 ‘유기농이나 자연친화적 상품들이 동물한테는 친환경적인 게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도달했어요. 그래서 아예 인간의 욕망이 없는, 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파라다이스를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환경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 저 역시 공존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드네요. 작가님이 꿈꾸는 파라다이스는 어떤 모습인가요?
아, 어렵네요(웃음).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친환경적인 파라다이스는 잘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좋아하는 감정을 작품에 반영했어요. 사랑, 평화로움, 안정감, 자유로움처럼 긍정적인 감정들로요. 현재 인간과 동물의 공존은 인간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동물들이 파라다이스에서만큼은 인간이 정한 룰을 벗어나 통제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오조 작가님 하면 핑크 호랑이 ‘피거’를 빼놓을 수 없죠.
피거는 영감을 많이 받은 핑크 돼지에서 시작됐어요. 핑크색은 희생하는 사랑과 모성애를 의미해요. 육식을 주로 먹는 호랑이가 핑크 돼지를 바라보면서 ‘나도 사랑이 넘치고 욕망 없는 동물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점점 핑크색으로 바뀝니다. 이렇게 핑크 호랑이 피거가 탄생했어요. 피거는 욕망이 없기 때문에 송곳니와 발톱이 없고, 제가 키우는 고양이를 닮기도 했답니다.
피거를 포함한 작가님 그림에는 핑크색을 비롯해 빨강, 노랑, 파랑이 많이 보여요.
맞아요. 저는 감정을 색으로 담아내고, 숨겨진 포인트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 그림에는 물방울 같은 나무나 불처럼 빨간 해초 등 숨겨진 포인트들이 있어요. 우뚝 솟은 나무를 보면 든든하고 주위를 지켜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 신뢰를 상징하는 파란색으로 표현했어요. 나무는 파라다이스를 지켜주는 역할을 해요.
빨간색은요?
빨간색은 정열과 살아있음을 뜻해요. 해초는 그리운 무언가를 만난다는 의미를 갖고요. 파라다이스에서 그리워하던 무언가를 만나 펼쳐지는 불타는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 빨간색을 사용했어요.
핑크 코끼리 또한 의미가 있어요. 코끼리는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이로운 동물이에요. 코끼리는 마른 강바닥을 파서 지표수가 나오도록 하는데, 이 물을 다른 동물도 마시고 살아요. 이런 점이 생명을 북돋아 주는 느낌이 들어, 희생하는 사랑과 모성애를 뜻하는 핑크색으로 표현했어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작가님이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는 ‘어른가시’ 웹툰 에세이가 생각나요. 어른가시는 감정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현실적인 내용이라 공감됐어요.
웹툰 에세이 ‘어른가시’는 2015년부터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연재했어요. 어른가시는 선인장을 보고 영감을 얻었어요.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사람 내면에는 각자 여러 가시가 있고, 가시들이 무뎌져 굳은살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여리고 상처가 있는 사람이 선인장과 닮은 것 같아요.
웹툰 에세이를 보면 사랑에 대한 내용도 많아요. 제가 내면에 사랑이 넘치거든요. 그런데 미친 듯이 뜨겁거나 차갑게 식어 버리는 사랑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요. 끓기 전의 온도로 잔잔히 오래가는 사랑을 좋아해요.
작가님의 활동을 보면 몸이 2개라도 모자랄 것 같아요. 딜리언메타가 진행하는 엔돌핀 팩토리 PFP NFT 프로젝트에도 참여하시더라고요.
예전에 전시를 같이 했던 HPP 작가님 소개로 참여하게 됐어요. 엔돌핀 팩토리 PFP NFT 프로젝트는 예술 고유의 가치를 담아내는 동시에, NFT가 가진 특성과 장점을 결합해 새로운 스타일의 PFP 작품을 창작해요. 엔돌핀 팩토리의 모든 NFT는 각각의 스토리와 작품 가치를 높이는 다양한 유틸리티를 갖고 있어요. 도파민최 작가님을 비롯해 20명의 팝아트 작가님과 함께 하고 있고, 10월 중 NFT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디지털 아트 시장에서 NFT가 굉장히 각광받고 있어요. 작가님이 아티스트로서 느끼는 NFT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제 그림은 판매되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요. 그림을 산 분이 다시 팔 수도 있고, 어디에 걸려 있다가 잊혀지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NFT는 트랙이 계속 남으니 어디에 있고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언제 어디서든지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작업한 유니크 엔드로퍼 모두 개성이 넘쳐요. 캐릭터마다 역할이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우선 핑크 돼지는 엄마이자 여왕 역할이라 여왕 옷을 입었어요. 핑크 돼지는 모든 엔드로퍼를 돌보고 포용해요. 핑크 코끼리는 폐공장처럼 생긴 엔돌핀 팩토리를 살리기 위해 초대받은 캐릭터라고 생각해, 히어로 같은 의상을 입혔어요. 물이나 생명을 찾는 역할을 한답니다. 핑크 호랑이는 생명과 죽음을 관리하고, 죽음을 맞이한 존재를 무지개에 띄워 보내요.
말티즈 엔드로퍼는 굉장히 신나 보여요.
그렇죠, 말티즈는 행복한 감정을 참지 않아요. 엔돌핀 팩토리에서 다른 엔드로퍼에게 행복한 기분을 참지 않도록 훈련시켜요. 복장이 훈련 조교 같아 보이지 않나요? 마지막으로 까마귀는 좋은 소식을 메가폰으로 전하는 소식통이에요. 사실 비둘기인데 까마귀인 척하고 있어요.
말티즈와 까마귀는 분홍색이 아니네요?
제가 말티즈를 키우고 있어 말티즈는 참지 않는다는 걸 아주 잘 알아요(웃음). 핑크 말티즈가 되면 순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대로 표현했어요. 까마귀는 우리나라에서 불길한 존재지만, 지능이 높고 까마귀를 길조로 여기는 문화도 있더라고요. 까마귀의 영리함을 보여주기엔 핑크색보다 검정색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어느덧 마지막 질문입니다. 향후 작가님의 목표나 계획은 무엇인가요?
요즘 입체 조형물에 관심이 생겨 제 생각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보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언젠가 전시회의 한 공간에 제가 만든 입체 조형물을 두고 싶어요. 그리고 아티스트는 정년퇴직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계속 비슷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작품을 만들어 다양한 성격과 페르소나를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러가 되고 싶어요.
전시는 꾸준히 진행하고 있어요. 10월에는 성수동, 11월에는 옥션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에요. 내년에도 관람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끝낸 후 지난 5월 말에 종영한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떠올랐다. 마지막회 엔딩 장면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마음에 사랑밖에 없어. 그래서 느낄 게 사랑밖에 없어”
오조 작가는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다. 그의 내면에는 앞으로 표현할 사랑이 더 많다. 그래서 관람객들이 오조 작가 작품을 감상할 땐 ‘참지 않았으면’ 한다. 작품에 담긴 사랑뿐 아니라 풍부한 감정을 느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