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안녕할 거예요, 헬로우봇
#연애운 #대신 화내주는 #정신건강 진단
오늘은 안녕할 거예요
헬로우봇
#연애운 #대신 화내주는 #정신건강 진단
운세 보기를 열 띄어 했던 시기가 있었다. 가입만 해두었던 모바일 커뮤니티에 운세 글이 꼬박꼬박 올라오기 시작하고 나서부터였다. 하루 치, 일주일 치, 한 달 치 별자리 운세를 꼬박 챙겨봤었다. 운세처럼 어딘가에서 귀인이 나타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나와 같은 별자리를 가져서 운세가 같은 사람들의 댓글을 훑고 기자 역시 단문의 댓글을 다는 것이 별 재미여서 습관처럼 연재 페이지에 접속했었다. 댓글 창에는 푸념과 조언, 응원을 주고받는 댓글들이 잇닿았다. 커뮤니티에 방문이 뜸해지면서 자연히 운세 보기를 그만두었는데, 요새 들어 다시 운세를 보기 시작했다. 댓글 창은 없지만, ‘공감’은 여전한, 챗봇 앱 ‘헬로우봇’을 통해서다.
누군가
헬로우봇은 챗봇을 도입한 운세 보기 앱이다. 페이스북 페이지 ‘타로챗봇 라마마’에서 시작한 서비스는 올해 2월 앱으로 출시되면서 내용을 확대했다. 현재 라마마 외 아홉 개 캐릭터를 앱에서 확인할 수 있고, 운세보기의 주제는 지속해 업데이트되고 있다.
챗봇을 주 인터페이스로 도입한 만큼, 앱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자연스러운 대화’다. 이를 위해 헬로우봇은 우선 여느 메신저 앱과 흡사한 생김을 만들어 사용자에 익숙한 대화 환경을 제공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일테면, 채팅 방은 가장 최근 참여한 것부터 위에서 아래로 배열되고 이모티콘은 채팅 목록에서 ‘사진’으로 표기된다. 48시간이 지나면 휘발되는 메시지는 스냅챗이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도입된 기능을 떠오르게 만든다.
조언자 캐릭터에 내력과 성격을 부여해 그들을 제가끔 ‘살아있는 인물’로 만드는 일에도 힘을 들였다. 예컨대 중국에서 명리학을 공부했다는 설정을 가진 판다 곰 캐릭터 ‘판밍밍’은 사용자에 점잖은 존대로 말을 걸고, 900년간 나무에 붙어 살아 진리를 깨쳤다는 잎사귀 캐릭터 ‘풀리피’는 ‘~란다’를 어미로 사용하며 나이를 드러낸다.
이름도 생김도 성격도 내력도 모두 다른 캐릭터들은 제가끔 채팅창을 하나씩 가지고 사용자에 서로 다른 것에 대해 조언한다. 사용자는 어떤 운세를 볼지가 아니라 누구와 대화할지를 고민하고 채팅 방을 선택한다. 그리고 채팅 방 안에는, 대화의 순간 오로지 내게 집중해 줄 누군가가 나를 위한 말을 잔뜩 쟁여서, 기다리고 있다.
말하기
누군가와 채팅하는 상황을 재현해 사용자가 그 상황에 몰입하게끔 만드는 것으로 헬로우봇은 사용자에 ‘공감받는다’는 느낌을 제공할 수 있는 터를 다졌다. 이제 구체적인 공감을 만들어내는 것은 채팅창 안에서 어떤 말들이 오가느냐에 달려 있다. ‘내 상황을 알아주는(알고 있는) 누군가에게서 받는 공감과 위로’를 완성하기 위해, 캐릭터 각각의 화술은 중요한 부분이다.
헬로우봇이 이를 위해 추가한 것은 대단한 말재간은 아니다. 다만, 운세를 이른 후에 응원을 더했다. 캐릭터들은 험한 운세가 나오면 ‘그래도 너라면 괜찮을 것’이라는 요지의 대사를 던지고, 좋은 운세가 나오면 ‘오늘은 뭐든 잘 될 것’이라는 말로 힘을 북돋운다.
이쯤 와서 운세는 ‘그래 너 힘들구나’라는 맞장구를 위한 도구처럼 보이는데, 앱에는 실제로 운세를 보지 않고 다만 말을 듣고 맞장구치는 데 좀 더 본격적으로 집중한 캐릭터들이 있다. 분노챗봇 ‘새새’나 질문챗봇 ‘궁구미’ 등이 그렇다.
질문하고 듣기
분노챗봇 새새는 대신 욕해주고 삼켜왔던 욕을 터뜨려내도록 돕는 캐릭터다. 잇새로 침을 뱉는 제 외양처럼 불량한 어투를 자랑하는데, 길길이 날뛰며 도대체 누가 마음을 상하게 했는지를 묻는 캐릭터를 보고 있자면 괜시리 마음이 누그러진다.
궁구미는 좀더 노골적으로 ‘나를 궁금해 해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적격한다.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어렸을 때는 어떤 아이였는지를 꼬치꼬치 캐묻는 그에 답변하다 보면 어쩐지 조금 신이 난다. 그간의 대답을 엮어 편지처럼 정리하는 메시지는 해당 채팅창의 백미다.
정신건강 진단 챗봇 ‘바비’는 특히 인상 깊은 캐릭터였다. 일단 운세 보기 앱에서의 정신건강 진단이라는 캐릭터의 역할 자체도 인상 깊었지만 일단 진단을 시작하면 사용자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 더욱 그랬다. ‘오늘의 우울 지수’ 메뉴를 선택하면 사용자는 총 스물한 개의 질문에 답하게 되는데, 열 개 남짓 답변을 마칠 때쯤 ‘이제 거의 다 왔어. 남은 질문에 답변할래?’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쯤 되니 진이 빠져서 기자는 ‘그만할래’를 선택했었는데, 돌아온 답은 ‘그래도 질문은 계속됩니다!’였다. 기자는 스물 한 개의 질문에 모두 답변했고, 진단을 끝까지 듣고서 채팅창을 빠져나왔다.
지인과의 수다로 털어낼 수 있는 기억도 있지만, 어떤 이야기는 각자 버텨야 한다. 그래도, 오래 혼자 버텨서 간혹, 어디 터놓으면 낫겠다 싶은 때, 찾아들 데를 한 곳 만들어 나쁠 것은 없지 않을까.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