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느낌 나는 광고 모델이요? 5초만에 합성해 드릴게요”
정훈진 플립션 대표 인터뷰
‘인간 카누=공유’ ‘인간 샤넬=제니’ 등. 광고 모델이 곧 브랜드의 ‘얼굴’이 된 사례다. 이처럼 소비자는 광고 모델을 통해 브랜드를 기억하기 때문에 모델의 이미지는 인기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다.
일반적으로 브랜드가 광고 모델을 섭외할 때는 모델 에이전시를 거친다. 희망하는 모델의 이미지를 에이전시에 전달해 추천 리스트를 받은 뒤 이 중 3~4명과 리허설 촬영을 진행해 최종 결정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쳐도 마음에 꼭 드는 모델과 계약하기란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스케줄이다. 워낙 바쁜 모델이 많아 광고 촬영 일정을 맞추기 어렵다는 것. 어쩔 수 없이 2, 3순위 모델과 계약하는 게 다반사다. 브랜드 입장에선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플립션(Fliption)의 공략 지점이 바로 여기다. 플립션은 버추얼 모델을 활용한 마케팅 솔루션 스타트업으로, 기업이 원하는 이미지의 얼굴을 컴퓨터로 구현해 실제 모델 몸에 합성한 ‘마케팅용 가상 모델’을 제공한다. 사진뿐 아니라 영상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스케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모델과 계약했다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이런 브랜드들이 가상 모델을 활용한다면 더 이상 일정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되죠. 비용도 아낄 수 있고, 광고 효과도 충분히 얻을 수 있고요” 정훈진 플립션 대표의 설명이다.
‘찰떡 모델’에 마케팅 효과 상승
요약하면 이렇다. 광고 모델을 섭외 중인 브랜드가 모델 에이전시를 방문하는 대신 플립션에 의뢰를 한다. “귀엽고 상큼한 이미지의 모델이 필요합니다” 플립션은 자체 보유한 가상 모델 데이터 중 적합한 얼굴을 찾아 브랜드가 제공한 실제 촬영 컷에 합성한다.
“쇼핑몰을 예로 들어 보죠. 당장 스케줄이 되는 모델을 섭외해 옷을 입혀 촬영을 하고요. 그 다음에 저희 기술로 모델의 얼굴만 바꾸면 돼요. 간단하죠”
실제로 지난해 5월 서울시의 의뢰를 받아 버추얼 엠버서더 ‘서하이’를 제작할 당시 패션 트렌드를 참고해 가상 얼굴을 만들었다. 서하이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하이서울쇼룸’과 ‘서울패션위크’의 홍보 모델로 활용됐다.
올해 1분기에는 프리미엄 유가공 브랜드 ‘덴마크’의 버추얼 모델을 제작했다. 4인 가족 콘셉트의 가상 인플루언서 ‘신선 패밀리’가 주인공으로, 브랜드 특성에 맞춰 산뜻하고 발랄한 이미지를 살렸다. 이들은 현재 덴마크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활동 중이다.
광고 모델이 가상 인물이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을까? 실제로 지난해 마케팅·광고 업계의 화제였던 버추얼 휴먼 열풍은 올해 들어 잠잠해진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정 대표는 “많은 기업이 버추얼 휴먼을 외면한 데는 실제 모델료에 버금가는 높은 구축 비용이 한몫했다”며 “비용만 적절하게 설정한다면 브랜드나 소비자의 거부감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중요한 것은 ‘모델이 실제냐 아니냐’가 아닌 ‘해당 얼굴이 주는 이미지'”라고 덧붙였다.
“사실 이미 많은 브랜드가 인스타그램이나 모델 에이전시를 통해 ‘특정 연예인을 닮은 모델’을 찾고 있어요. 결국 중요한 건 얼굴에서 풍기는 이미지라는 겁니다. 따라서 가상 모델도 충분한 마케팅 효과를 줄 수 있어요”
실제로 플립션의 가상 모델은 버추얼 세계관에 익숙한 MZ세대를 중심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덴마크에 따르면, 신선 패밀리 도입 후 콘텐츠 ‘좋아요’ 수가 기존 대비 4~8배, ‘신선희(딸)’의 일상을 소개하는 이벤트 게시글은 ‘좋아요’ 수가 10배 이상 증가했다. 동원F&B는 향후 인스타그램, 틱톡 등 다양한 숏폼 콘텐츠와 팝업 스토어 등 온·오프라인 마케팅을 추진할 계획이다.
사진 1장과 10초면 충분
가상 모델 제작 과정은 간단하다. 플립션이 보유한 ‘페이스 스왑(Face-Swap, 얼굴 변환)’ 기술은 10초만에 사진 속 모델의 얼굴을 다른 얼굴로 바꾼다. 학습에 필요한 사진도 1장이면 충분하다. 얼굴형은 유지한 채 이목구비만 바꾸는 방식이다.
반면 경쟁 업체의 기술은 대상의 얼굴을 20분간 촬영한 뒤 3~7일간 학습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만큼 높은 사실성을 자랑하지만 비용 대비 효율과 속도가 중요한 마케팅 업계에는 적합하지는 않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엔터테인먼트나 영화 산업에 활용되는 기술과 달리 광고나 홍보 영상에 사용되는 페이스 스왑은 완벽한 퀄리티를 필요로 하지 않아요. 어느 정도의 자연스러움만 갖춘다면 모델이 지닌 이미지가 더 중요한 시장이죠.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빠르게 합성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이 같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지난 2021년 카이스트 통합 기술 창업경진대회에서 1위를 수상, 지난해에는 와이어스파크 청년창업 아이디어 공모전 대상을 탔다. 지난해 4월에는 KT가 주관하는 글로벌 스케일업 프로그램에서 최종 선발의 영예를 안았다.
최근에는 기술 고도화에 주력하고 있다. 합성 시간을 절반(5초)으로 줄이고, 좌우 45도씩 90도로 한정됐던 가상 모델의 얼굴 각도를 150도로 늘려 더 다양한 광고 영상에 적용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가상 모델의 얼굴은 실제 인물과 더 닮아지고, 포즈의 제한도 줄어들 예정이다. 예컨대 특정 연예인을 더욱 닮게 합성한다거나, 얼굴의 일부를 가린 상태에서도 제대로 된 페이스 스왑이 가능해지는 식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모델의 얼굴을 학습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개인 브랜드 위한 마케팅 솔루션 목표
정 대표는 카이스트에서 휴먼컴퓨터인터페이스(HCI)로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의 꿈은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과 같은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것. 구체적으로는 집을 디바이스 삼아, 각자의 집에서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기술을 만드는 게 최종 목표다. 플립션은 이 꿈을 위한 첫 단추다.
“가상현실은 크게 인물과 배경으로 구성됩니다. 인물이 3명만 모여도 콘텐츠가 되잖아요. 그래서 우선 인물에 집중하기로 했고요. 또 그 중에서도 시선이 가장 많이 닿는 얼굴을 사업 분야로 선택했어요”
현재는 B2B 시장에 주력하지만 수년 내 B2C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술의 완전 자동화를 실현해 단가를 낮춰 개인 사업자 공략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개인이 페이스 스왑을 체험해볼 수 있는 웹사이트를 론칭했다. 또 브랜드에 어울리는 가상 모델을 추천하는 기능과 표정 및 배경을 수정할 수 있는 툴 등 서비스 고도화도 준비 중이다.
“개인 브랜딩이 점점 중요해지는 시대입니다. 그렇지만 항상 좋은 모델을 섭외할 수 있는 건 아니죠. 플립션을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마케팅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