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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마케팅

시너지란 이것! 리벤지로 완성하는 마케팅

콜라·스포츠 브랜드에서 배우는 바람직한 라이벌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같이 가면 멀리 간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맹수·해충·사막·날씨 등 아프리카는 생존에 위협적인 요소가 많기에 누군가 동행하는 것이 목표 달성에 도움 된다는 의미다. 물론 그 동행이 서로 위로하는 관계도 있지만, 라이벌 관계일 수도 있다. 라이벌의 역량이 나 성과만큼 큰 동기부여는 없다. 그렇기에 이 관계를 잘 활용하면 발전의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다. 한 쪽이 치고 나가면 다음에는 다른 쪽이 치고 나가며 끊임없이 리벤지(Revenge)를 통해 발전하고 있는 브랜드들이 있다.

디자인. 손찬호 디자이너 bbt0808@ditoday.com

글. 김성지 기자 jerome@ditoday.com

현대판 백년전쟁
코카콜라펩시

1337년 시작된 잉글랜드 왕국과 프랑스 왕국 간 전쟁을 ‘백년전쟁’이라 부른다. 이 전쟁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민족의식을 함양했고 세계를 이끄는 선진국이 됐다. 식음료 업계에서 ‘현대판 백년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코카나무 잎과 콜라나무 열매가 주원료라는 코카콜라(Coka Cola), 소화를 돕는 펩신과 같은 효과를 지녔다는 펩시(Pepsi)의 이야기다. 두 브랜드는 약사에 의해 탄생했다. 1886년에 설립된 코카콜라, 1898년 설립된 펩시의 경쟁은 너무나도 치열해 다른 브랜드는 시장에 진입할 수조차 없다.

콜라는 코카콜라에 의해 세상에 출시된 만큼, 코카콜라의 시장 점유율은 압도적이었다. 1923년과 1931년 파산 위기를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도 업계 2위 브랜드를 유지하던 펩시는 1961년 승부수를 띄웠다.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펩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당시 펩시콜라였던 제품명을 ‘펩시’로 변경했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하며 매섭게 점유율을 올렸다. 1973년, 두려울 것이 없던 코카콜라에게도 비상등이 켜졌다. 펩시는 상표를 가린 후, 코카콜라와 펩시를 시음해 맛있는 쪽을 선택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시장 점유율로 보면 코카콜라가 큰 격차로 승리할 것 같았지만, 참가자 중 52%가 펩시를 선택했다. 펩시는 이 기쁜 소식을 TV광고로 송출하며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코카콜라의 충성고객은 18%에서 12%로, 펩시의 충성고객은 4%에서 11%가 되며 격차를 줄였다.

초조해진 코카콜라는 1985년, 히든카드를 꺼냈다. 20만 회 블라인드를 거쳐 개발한 ‘뉴코크’를 출시했다. 당시 코카콜라 회장은 “지금까지 성공을 확실하게 보장해 줄 만한 신제품은 없었다”며 성공을 확신했다. 하지만 스타벅스·나이키와 더불어 마케팅 교과서라 불리는 코카콜라의 최대 흑역사가 됐다. 소비자 반응이 냉담했다면 다행이었을까? 성난 소비자는 본사로 항의를 했고, 본사에 찾아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코카콜라 직원은 유니폼을 입고 퇴근하지 못할 정도였다. 결국 기존과 동일한 제품인 ‘코크 클래식’을 출시하며 성난 민심을 달랬다.

콜라 시장의 점유율과 총 이익(출처. The Economist)

모두 나열하면 부족할 정도로 끊임없이 경쟁하고 있다. 펩시는 2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장점을 살려 1등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코카콜라도 최고라는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달아나고 있다. 브랜드 가치에서는 코카콜라가 앞서지만, 회사 매출에서는 펩시가 앞선 적도 있을 정도로 두 브랜드는 동반 성장하고 있다. 결국 두 브랜드는 지구상에 다른 콜라는 없을 정도로 ‘콜라 카르텔’을 형성했다.

농구황제로 엇갈린 운명
나이키아디다스

세계 스포츠 웨어를 양분하고 있는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얼핏 보면 철천지원수일 것 같지만, 두 브랜드만큼 바람직한 관계도 없다. 프로 스포츠에서 선수 연봉은 어떻게 측정될까?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치겠지만, 가장 중요한 척도는 해당 종목이 지닌 ‘인기’다. 대중의 관심이 많을수록 해당 종목의 규모가 커지고, 그에 비례해 연봉이 상승한다. 좋은 실력을 지닌 선수라도 관중을 동원하지 못한다면 실력만큼 대우를 받지 못한다. 그렇기에 스포츠 마케팅에서는 라이벌 구도를 강조한다.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대결

축구팀이지만 스페인 역사에서 시작된 엘클라시코 더비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수식어가 필요 없는 ‘메시와 호날두’ 밤비노의 저주로 생성된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즈’ 등 인기 스포츠는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지닌 라이벌 관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관계 뒤에는 항상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함께 한다. 바르셀로나 유니폼은 나이키이며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은 아디다스다. 하지만 두 팀의 간판스타였던 두 선수는 소속팀과 운명을 달리했다. 바르셀로나 소속인 메시의 스폰서는 아디다스, 호날두의 스폰서는 나이키다.

두 브랜드는 이렇듯 치열한 관계지만, 1985년 이전에는 경쟁 관계가 아니었다. 나이키보다 먼저 출발했던 아디다스가 압도적으로 스포츠 시장을 점령했었다. 그러던 중 1985년, 아디다스에겐 천추의 한이 될만한 선택을 하게 된다. 농구는 몰라도 ‘조던’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 그 마이클 조던으로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희비는 엇갈린다. 마이클 조던은 어린 시절부터 아디다스 광이었고, NBA 입성 전까지 항상 아디다스 농구화를 신었다. NBA 선수가 된 조던은 아디다스와 계약하길 간절히 원했지만 아디다스의 관심은 축구나 테니스에 있었다. 하지만 나이키는 조던의 잠재력을 알아챘고, 신인에 불과하던 그에게 5년간 250만달러(약 31억원) 상당의 계약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조던은 애타게 아디다스를 기다렸지만 응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나이키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조던의 가치를 높게 책정한 나이키는 5년간 300만달러 수입을 창출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 예측은 엄청난 수준으로 빗나갔다.

마이클 조던과 에어 조던 1

나이키와 조던의 동행으로 특정 선수 이름이 들어간 첫 제품이 출시됐다. 조던이 ‘에어 조던1’을 신고 NBA에 데뷔하며 전설을 썼다. 나이키는 1년 만에 1억 2,600만달러의 수익을 창출했다. 에어 조던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고, 결국 나이키 산하 별도 브랜드로 독립했다. 조던은 은퇴했지만, 에어조던은 지금도 신제품이 나오고 있다. 조던으로 인해 우리가 아는 ‘스포츠 브랜드 1위 = 나이키’가 됐다. 이때부터 달아나는 나이키, 좇아가는 아디다스 관계가 성립됐다. 조던으로 상황을 반전시켰듯, 아디다스에게도 기회는 언제나 열려있다

라이벌, 또 다른 선생님

경쟁자가 없다면 어떨까? 평생을 경쟁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부러워할 수도 있지만, 경쟁자가 없다면 많은 어려움이 발생한다. 의식하는 존재로 인해 우리는 자신을 통제하며 승부욕·열등감·우월감 등 여러 이유를 바탕으로 동기부여를 한다. 때로는 경쟁자의 존재 자체로 위로받기도 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계 이상을 노력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데, 혼자라는 생각이 들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일지라도, 다른 누군가도 같은 상황이라고 한다면 견딜 수 있다. 더욱이 그가 내가 넘고 싶은 대상이라면, 주저 않는 것이 아닌 달리게 만든다. 이처럼 서로 발전하는 관계를 라이벌(Rival)이라 한다. 당신의 라이벌은 누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