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타입_그 안의 멋
‘두성종이 인더페이퍼 갤러리’에서 진행한 ‘디스플레이타입_그 안의 멋’ 전시회에 다녀왔다.
활자 디자인, 0.005mm의 세계에서
글자는 공기와 닮았다. 공기 속에 산소가 녹아있듯 글자 속엔 정보가 담겨있다. 공기는 우리를 살게 하고 글자는 우리가 소통하게 한다. 둘을 구별하는 건 멋을 부리는지 여부다. 멋진 숨쉬기에 관해 들어본 적은 없다. 그러나 글자는 멋을 부린다. 문서 작성 프로그램을 열면 수많은 글자체가 쏟아진다. 원래 멋쟁이의 드레스룸은 옷으로 쌓아올린 미로다. 다양한 글자체는 글자의 멋에 관한 높은 관심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두자면 글자의 본질은 기능이다. 멋에 치중하면 정보 전달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소홀해질 수도 있다. 따라서 멋과 기능 사이의 균형은 글자가 타고난 숙명이다. 종이에 관해 이야기하는 ‘두성종이 인더페이퍼 갤러리’에서 진행한 ‘디스플레이타입_그 안의 멋’ 전시회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 균형이다. 섬세하게 달라지는 글자의 형태 뿐만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정한 모습으로 디자인된 글자를 활자라고 한다. 글자의 멋에 가치를 두는 표현이다. 이번 전시의 소개글을 쓴 이용제 디자이너는 “활자에서 ‘새로운 멋’이란 기존의 활자와 다르게 보이려는 목적이 아닌 ‘고유한 멋’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5밀리미터를 1,000등분으로 쪼개는 세계에서는 아무리 작은 차이라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소인 만큼 모든 것들이 고유한 멋을 불어넣는 시도가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본문과 함께 쓰는 제목용 활자가 아닌, 그 자체로 주인공 역할을 하게 될 활자를 표현하는 과정을 선보였다. 명조체(바탕체), 고딕체(돋움체) 등 우리에게 익숙한 글자체가 형성되는 요소적 특징을 살피는 것은 물론 그 안에서 7명의 디자이너가 각각의 감수성을 입혀 해석하고 나름의 멋을 부여하는 시도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소개글에서는 이번 전시에 관해 “한글 활자체의 새로운 부흥기를 맞는 이 시기에 한글 활자의 디자인 방향을 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전시가 진행 중인 두성종이 인더페이퍼 갤러리에 들어서니 한쪽 벽면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글자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전시 공간을 압도하는 거대한 크기는 해당 활자의 세부 요소를 요목조목 따져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같은 활자라도 크기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여기서 ‘달라지는 느낌’이란 활자의 용도와 연결된다.
전시는 그러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여러 활자를 다양한 크기로 보여주기 위해서 각각의 사례에 맞는 형태의 오브제들이 공간을 구성했다. 벽면을 채운 글자 왼편으로는 탁상 달력 크기의 판에 적은 글자들을 볼 수 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디자이너의 활자로 적은 문장을 액자에 넣어 배치해뒀다. 실제로 읽었을 때, 담고 있는 정보의 전달에 있어서 특정 활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느껴보는 것이다.
바닥 한 켠에는 이지혜 작가의 ‘단향’으로 쓴 글이 비스듬하게 전시돼 있었다. 단향은 서간체 양식의 활자다. 글자의 높낮이에 큰 차이를 주고 무게중심을 오른쪽에 둔 것으로 세로쓰기에 활용된다. 정자체이면서도 부분적으로 흘림체에서 나타나는 표현을 반영했다는 설명을 읽으니 문장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워졌다. 이처럼 활자의 고유한 특징을 알고 각각의 디자이너들이 어떤 부분을 재해석했는지 인식한 채로 글자를 읽으면 좀 더 풍성한 관람이 가능하다.
결과물로서의 활자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들이 활자 제작 과정에서 고심한 흔적까지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전시는 더욱 꼼꼼하고 빈틈없이 채워진다. 활자의 구석구석을 미세하게 조정하며 고민하고 기록한 중간 작업물들을 보고 있으면 작품과 디자이너 사이에 들어가 앉은 듯한 느낌이 든다. 종이를 이용한 놀이공간이자 여러 생각과 이야기가 오가는 복합문화·소통의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인더페이퍼 갤러리의 목적이 잘 반영된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