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님들의 나라
중고시장, 커뮤니티가 되다
중고거래는 이제 확실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제품 구매 시부터 되팔았을 때 받을 금액을 염두에 두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고거래에 대한 이해는 기업 입장에서도 필수적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중고거래는 수단이다. 월간활성이용자(MAU) 1,000만명을 달성해 국민 앱 대열에 합류한 당근마켓 얘기이기도 하다. 이들은 브랜드 정체성을 ‘마켓’보다 ‘당근(당신 근처)’에 찍는다. 천 만이 넘는 ‘당근님’들을 서로 이어주는 커뮤니티를 꿈꾸는 것이다.
중고거래 시장은 전형적인 불황형 산업이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저렴한 가격에 쓸 만한 제품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모일 때 성장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위축된 시기를 타고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추세 또한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당근마켓의 MAU는 올해 1월 480만명에서 6월 890만명으로 폭증했고 지난 10월 1,000만명을 달성하는 데 이르렀다.
하지만 그 원인으로 단순히 ‘불황’만 있는 건 아니다. 모바일에 익숙한 MZ세대는 ‘중고거래’라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소통으로 보기 때문이다. 물건 값 흥정 과정이나 거래 후기를 공유하고 재밌는 에피소드는 밈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오늘도 중고로운 평화나라’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짤방들이 대표적이다. 또 거래할 때 물건만 주고받는 게 아니라 서로 덤을 얹어주곤 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흔하다.
거래 품목도 단순히 물건에 한정되지 않는다. ‘바퀴벌레 잡아주실 분 구합니다’라는 당근마켓 게시물은 SNS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키며 ‘별별 것을 다 파는 당근마켓’이라는 밈을 이끌었다. 일러스트 작업이나 유튜브 썸네일 제작 등 각종 노동력을 거래하기도 한다. 실제로 번개장터에는 판매 카테고리에 ‘재능’ 영역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한정판이나 콜라보레이션 등 새 상품으로도 구하기 어려운 제품을 구입할 때도 중고거래는 유용하게 쓰인다. 특히 이 경우에는 ‘리셀가’가 붙어 원가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일도 많다. ‘헌 상품’이 아니라 ‘한정판 상품’이 유통되는 시장인 셈이다. 예컨대 지난 5월 번개장터가 자사 거래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사해 발표한 ‘브랜드 굿즈 중고 거래 및 검색 트렌드’ 결과를 보면 스타벅스 서머 레디백이 검색량 약 25만 건, 실제 거래 약 2500건을 기록했다. 올해 가장 ‘핫’했던 한정판 상품 중 하나다운 결과다.
실제로 최근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성인남녀 1158명을 대상으로 중고거래 현황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7명이 중고거래를 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중고거래를 하는 이유로는 ▲쓰지 않는 물건을 처리하기 좋아서(59.4%)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어서(38.7%) ▲재테크의 일환으로(28.3%) ▲중고거래 앱 등이 잘 돼 있어서(16.1%) ▲중고거래가 재미있어서(11.3%) 등 다양하다. 중고거래 시장은 지속적으로 규모를 키우고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이제는 그 성격을 다양화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은 기능적인 면이 강조되는 ‘거래 플랫폼’이 아닌 그 안의 사람들이 갖는 관계성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커뮤니티’다. 한 번 형성된 커뮤니티는 잘 없어지지 않는다. 왜?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주기 때문이다. 소속감은 다른 말로 안정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걸 같이 좋아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에피소드를 담은 ‘짤’은 SNS를 통해 지속적으로 유통된다. 크진 않지만 확실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로 나아가는 힌트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