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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다시 꺼내는 기획자 무용론

유독 우리나라에만 웹 기획자가 필요한 이유에 대한 의문이 여러 지점에서 복기되어왔다.

  1. 주저하는 당신에게
  2. 다시 꺼내는 기획자 무용론
  3. 커뮤니케이션의 정치
  4. 프로젝트는 왜 성공하는가?
  5. 비틀어보는 리더십과 팔로워십

논란이 되던 소문이 있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에는 웹 기획자가 없다는 소문은 그들의 창업부터 지금까지 들려왔고 확인되어 왔다. 그럼에도 유독 우리나라에만 웹 기획자가 필요한 이유에 대한 의문이 여러 지점에서 복기되어 왔는데 그럼에도 20년 넘게 웹 기획자는 업무의 요로에서 활약하고 있다.

글로벌 영역에 웹 기획자가 없다는 주장은 다소 무지가 반영된 주장이다. 그렇다. 웹 기획자라는 Job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타이틀이 웹 기획일 뿐 아마존, 구글 같은 서비스 베이스 기업에도, FI나 퍼스트본 같은 에이전시 기업에도 프로듀서라는 이름으로 같은 역할의 Job이 있다. 프로듀서의 역할은 고객의 니즈에 전략을 세우고 UI·UX 설계를 총괄하며 팀 빌딩을 통해 이해관계자들이 유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적어도 지역적인 측면에서 웹 기획자가 무용한 지점은 없다.

어느 산업에나 있던 기획이란 업무가 ‘기획자’라는 직업으로 구축된 건 웹의 출현으로 가능했다. 닷컴, 웹 2.0, 모바일, 소셜미디어 등으로 이어지는 웹서비스의 전환 과정에서 원래 하나였던 기획자의 기능과 역할은 크게 두 덩어리로 나누어졌다.

기획이란 업무는 크든 작든 누구나 하는 업무로 기획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원하는 무엇’은 언제나 기획의 시작점이며 탐구의 호기심이다. 이것을 찾는 역할에 있어서 누구나 기획자다. 그 역할이 웹의 영역에서 두 덩어리로 분리된 건 원하는 무엇 앞에 붙는 ‘고객’의 성격이 다르고 그에 복무하는 시나리오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획자가 기획의 산출물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모종의 질서가 수립되었다.

고객을 공급자 측면과 소비자 측면으로 체제를 나누어 보면 기획자건, 디자이너건, 개발자건 간에 자신이 시스템의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시장에서 공급자인 고객과 소비자인 고객을 대하는 기획자는 대응과 연구라는 스탠스를 각각 작동시킨다.

이러한 태도는 섞이긴 하지만 고유의 퍼센티지를 유지하는 것이 미덕이라 여겨진지 오래다. 이상한 점은 연구의 포지션이 적은 공급자 고객을 대하는 기획자의 도태가 예상됐던 10년 전에 비해 그 역할이 점점 더 공고해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시나리오 중 하나는 제품이 최종 인수되기 전까지 웹 기획자가 고객의 요구를 일정 부분 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능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해관계자에게 기획자의 필요성이 효과적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이 믿음이 구축되지 못했을 땐 기획자가 고객에게 책임을 회피하듯 커뮤니케이션의 피곤함을 감당하는데 소극적이던 디자이너, 개발자도 기획자에게 무엇이던 전가하는 적극성을 띠게 된다.

가끔은 이것이 좋은 대응 스탠스로 작용할 때도 있지만 올바른 것은 아니다. 더 위험천만한 장면은 기획자 스스로 대응 전략에만 몰입한 나머지 요구를 대리 해 프로듀싱해야 할 역할을 회의적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모두에서 말했듯 기획자가 무용하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가 원하는 무엇을 찾는 과정은 기획자의 몫이라며 암묵적 또는 비즈니스로 한정했고, 이로 인해 협력적 이해관계자들마저 기획으로의 확장을 거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제품을 생산하는 좀 더 강한 기반의 세력 내에서 개혁의 스파크가 일어난다면 가치의 팽창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판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이러한 문제 인식에서 기획자가 가진 툴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인문이 기술을 만나는 것과 기술이 인문을 만나는 것, 어느 쪽이 좀 더 매력적인 내러티브가 될지 상상해보면 된다. 이제 외국에는 기획자가 없다, 기획자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이해관계자들의 의문은 충분히 탄핵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작금의 온난한 환경이 조성된 데 있어서 기획자가 기여한 부분이 얼마나 있는지 꺼내 봐야 할 때다.

애초에 기획자는 없으면 안 되는 포지션이었다. 하지만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이 비닐하우스에서 남의 기획에 그림을 덧대어 쌓은 레퍼런스가 지속적으로 기획자의 무용론을 부추길 것이 분명하다.

기획자가 왜 필요한지 의아해하는 주변 환경은 그동안 사유하지 않고 대응의 대응이었던 다수의 기획자가 만든 분위기다.

스스로 그림이라 폄훼하는 설계는 원하는 무엇의 완전체가 아니지만 그것이 무 엇인지 이룩해가는 맥락에서 가장 먼저 빛나는 순간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그동안 기획자들이 어떻게 기회와 재능을 포기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아직은 의미심장하지 않지만 기술이 인문을 만나는 날이 올 것이며, 그때는 무슨 증언을 해도 기각의 결말을 맞게 될 것이다. 기획자가 시스템 언어를, 포토샵을 알아야 한다는 문제는 부차적이며 지엽적인 부분이다.

기술자가 기획을 한다고 해서 바로 프로젝트에 오너십이 생기고 복잡한 디지털 제품의 비전이 실행되는 것은 아니다. 업무와 사람의 간격에 요구가 당위로 각색되어 빈틈없이 흐르게 할 때 원하는 무엇은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다.

프로젝트의 최악은 언제나 갱신된다. 그때마다 작동되어야 하는 당위는 기획자가 그동안 데이터와 고객을 통해 이해한 통찰의 함량에 따라 결정된다. 모두가 허우적거리는 조난 신호를 접수하고 우악스러운 공포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도 그 통찰에서 나온다. 바로 그때 무용론은 눈부시게 무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