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든든한 ‘빽’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퍼포먼스 마케팅에 눈뜨다
원만하고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든든한 빽* 하나쯤은 필요하다. 그거 없이 이 험한 정글을 헤쳐 나간다는 건 고행길이 따로 없다. 믿는 구석 하나쯤은 필수다. 나에게도 ‘믿는 구석’이 있다.
(*빽: 뒤에서 받쳐 주는 세력이나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규범 표기는 ‘백’이다.)
몇 해 전 퇴사를 하고 유학 준비를 하다가 꽤 큰돈을 날렸다. 급한 마음에 무리한 투자로 유학 자금의 상당 부분을 산화(…)시켰다. 그러다 보니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인생 경로인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고 말았다. 지금이야 정부에서 지원도 많이 하고, 이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나올 정도지만 그때만 해도 왜 굳이 좋은 회사 나와서 사서 고생을 하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총 직원의 수가 두 자리가 되지 않는 스타트업, 내가 열 번째 직원이었다.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의 마케팅 환경은 경험해 본 이들은 잘 알겠지만 뭐가 없다.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물어볼 이를 기대하는 건 사치다. ‘어떻게’를 고민하기 전에 뭘 해야 할지부터 고민해야 했다. 본인이 찾아서 일을 해야 한다. 회사의 목표는 분명 있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마케팅 지표나 액션플랜들은 직접 만들어내야 한다. 굳이 대기업과 비교하자면 이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 여기에 잘 맞는 이는 엄청난 성장을 할 것이고, 반대로 그렇지 못한 이는 자괴감을 느끼며 방황이 길어질 것이란 뜻이다.
그래도 이런 부분은 빠르게 적응했다. 그러나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오백만 원.
왜 오백만 원이냐고? 이 금액의 정체는 마케팅 예산이다. 하루가 아니라 한 달 동안 써야 하는 예산. 이전 직장에서 내가 집행했던 예산이 백억에서 백오십억 사이였던 것을 감안하면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금액이었다. 내가 황당해 하자 직원 하나가 이 정도면 엄청난 증액이라고 했다. 그렇다 보니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건 페이스북으로 집행하는 앱 설치 광고가 전부였다. 사실 뭐라도 해 보고 싶은 마음에 직접 전단지를 만들어 판교역 앞에서 뿌려보기도 했지만 결국 책상 앞에 앉아서 페이스북에 광고를 태우는 게 가장 좋다는 걸 확인하는 결과만 가져왔다.
의도치 않은 선택과 집중 덕분에 평균 1,800원 수준의 CPI(Cost Per Install)를 보이던 광고 효율을 두 달 만에 평균 800원대로 낮출 수 있었다. 짜릿했다.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첫발을 디딘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주식시장에 빠진 개미마냥 모니터에 표시된 데이터의 등락만 쳐다보고 살았다. 퍼포먼스 마케팅의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된 계기였다. 그러나 그렇게 신나게 내려가던 CPI도 평균 700원대에서 멈추더니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분석했다. 우선 내가 만든 광고물이 딱 그 정도 수준인 것이다. 700원을 써야 한 명이 올까말까 한 수준 말이다. 그 이상으로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에 대한 솔직한 평가였다. 다음으로 뽑은 이유가 바로 예산의 절대적 한계였다. 물론 CPI의 개선으로 마케팅 예산을 증액 받았지만 연내 100만 명의 가입자 수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지금의 효율과 속도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혹자는 어차피 CPI라는 게 비율의 문제니 예산을 증액한다고 해도 그 값은 고정적이지 않은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당시의 페이스북은 네트워크 파워에 최적화된 매체로 투입되는 광고 물량에 따라 그 효율의 기울기는 급속하게 상승할 수 있는 구조였다. 쉽게 말해서 어느 정도까지는 들이부으면 들이부을수록 효율이 좋아진다는 이야기다(궁금한 사람은 멧칼프의 법칙 같은 네트워크 관련 이론들을 살짝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효율의 정체로 고심하던 내게 의문의 제안이 들어왔다. 토스의 마케터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그는 토스와 공동으로 마케팅을 진행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고, 여기는 토스뿐만 아니라 지그재그, 이음, 다이닝코드, 화해, 빙글 등과 같은 스타트업도 함께 참여 중이라고 했다. 그 전화가 내게는 암호문 같았다. 토스부터 시작해 모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제안을 요약하자면 페이스북 앱 설치 광고에 쓰는 예산을 회사마다 분산해서 집행하지 말고 그 예산을 모두 모아 하나의 비즈니스 계정에 ‘집중몰빵’하자는 것이었다. 만약 5개의 회사가 공동으로 광고를 집행하면 단독으로 하는 것보다 예산을 5배로 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효과는 당연히 현재의 CPI 효율보다 좋을 테고 현재 자기들은 이걸로 괜찮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그때 내 머릿속을 가장 빠르게 스치고 간 생각이, ‘그 좋은 걸 왜 나랑 하자고 하지?’였다.
당시에 그와 나는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아니었으며, 한 다리 건너 연락이 와서 예산을 같이 쓰자고 하니 경계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라. TV나 영화에 등장하는 사기꾼 캐릭터의 모습과 닮아 있지 않나? 매체 속의 사기꾼들은 대개 고민에 빠져 있는 주인공에게 다가와 그가 원하던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며, 효과까지 확실히 보장한다고 장담한다. 토스의 제안과 유사하지 않은가? 게다가 퍼포먼스 마케팅으로 첫 걸음마를 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로 뭔가 전문적인 느낌을 확 풍기며 너무 신뢰를 주니까 오히려 그게 더욱 의심스러울 수밖에! (물론 그는 나중에 내가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랍비 같은 존재가 된다.)
초반의 오해를 극복(?)하고 우리는 꽤 긴 시간 동안 ‘연합광고’라는 이름으로 공동 마케팅을 진행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대여섯 개의 스타트업이 모여 각자 카드뉴스 형태의 광고물을 만든다. 당신이 페북에서 보던 리스티클 광고가 바로 그것이다. 자사의 광고만이 아니라 서로의 서비스가 모두 포함된 ‘시리즈 형식’의 광고물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각자 만든 광고를 검수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완성한다. 이후 미리 준비해둔 페이스북 페이지에 업로드 후 광고를 태우는 것이다. 당시는 핵꿀팁 페이지가 가장 열일했다. 최소 15개에서 20개 정도의 콘텐츠를 매주 만들고 거기에 소액으로 광고를 집행한다. 그렇게 24시간 정도 지켜보다가 효율이 좋은 콘텐츠가 눈에 띄면 해당 콘텐츠에 예산을 집중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평소 오백만 원 정도 집행하던 것을 삼천만 원까지 늘리니 (회사마다 효율은 차이가 났지만) 전체적으로 모든 회사의 CPI에 긍정적인 성과를 안겨줬다.
처음 만났을 때 토스에서 장담한 대로 광고 효율은 기존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어느 정도였냐고? 깨질 것 같지 않던 700원대의 CPI가 하루아침에 100원 미만으로 떨어지더니 계속 두 자릿수의 효율을 보여줬다. 가장 좋을 때는 30원까지 낮아진 적도 있었다. 말 그대로 미친 활약이었다. 예산을 몰빵했을 때 나타나는 효과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이 아니라 십시천반(十匙千飯)과 같았다. 한 사람이 아닌 우리 모두를 살린 것이다.
스타트업 연합광고는 말 그대로 미친 활약을 했다. 효과가 워낙 극적이기도 했지만 일하다 보니 다양한 스타트업에서 모인 마케터들끼리 같이 일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타트업은 규모 특성상 자신의 업무에 공감할 수 있는 이를 찾기가 어렵다. 게다가 같은 회사 직원에게 차마 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렇기에 연합광고로 모인 마케터들은 서로에게 좋은 대나무숲이자 과외선생이었다. 심지어 우리끼리 마케팅 대행사를 차리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팀워크(?)가 좋았다. 우리끼리 회사 차리면 놀다가 망할 거란 한 마케터의 의견에 다들 공감했는지 이 이야기는 두 번 다시 언급되지 않았다.
5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처럼 함께 광고를 집행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본인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COO가 되기도 했고, 어떤 이는 스톡을 잘 챙겨서 이직을 해서 새로운 도전을 진행하고 있다. 다른 이는 커리어를 잘 쌓아서 ‘큰물’에서 놀고 있다. 직접 창업을 한 이도 있고, 육아를 하며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하는 이도 있다. 각자 자신의 욕망과 성향에 맞게 잘 성장해 가고 있다.
이제는 함께 일하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마님들’이라는 대화방은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여전히 마케터들만의 경험을 공유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대화의 빈도는 줄었지만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는 여전히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종종 모여서 한 잔씩 걸치기도 한다.
한 번은 새벽 1시에 카페로 불려 나가서 보도자료 첨삭을 하거나 부정 이슈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을 함께 논의한 적도 있다. 새로 창업한 그 친구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기에. 또 우리는 서로의 회사로 이직을 하거나 이직 정보를 물어다 주기도 한다. A와 B가 동료였다가 B와 C가 동료가 되기도 하는 등 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공적인 부분을 떠나서 서로의 결혼식이나 집들이에 초대하기도 하는 등 우리는 직장 동료는 아니지만 ‘회사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며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그렇다. 내게 든든한 빽이자 믿는 구석은 바로 이 ‘마님들’이다. 다니던 곳을 나와 호기롭게 창업을 준비할 때에 창업 선배이자 망한 CEO 선배 정훈이형을 찾아가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그 누구보다 나를 열심히 말려줬다. 그러나 나는 그 충고를 듣지 않았더랬다.) 마케터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이 들 때 울컥하던 나를 5분 만에 정신 차리게 해 준 슬기, 커리어가 꼬였다고 징징대면 창업하기 좋은 커리어라며 위로해준 성진이, 자기랑은 안 맞는다며 떽떽거리면서도 내 원고를 꼼꼼히 읽어주며 피드백해준 민영이, 늘 귀찮다고 하면서도 끝까지 다 알려주는 지은이까지 모두 고맙고 든든한 나의 동료들이다. 그 밖에도 다들 자기 분야에서는 한 가닥씩 하는 실명을 밝히기 꺼려하는 마님들이 있다.
그렇게 우리는 광고 예산을 모으기 위해 모였지만, 어느새 우리는 서로에게 든든한 ‘빽’이 되어 있었다.
나는 네트워크 모임을 따로 만들거나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인맥보다는 인연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네트워크를 만드는 모임에는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다. 관계의 시작은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한 인연을 어떻게 하면 이용할까 보다 내가 먼저 그들에게 나눌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한다. 되도록 Taker가 아닌 Giver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부족한 게 많은 캐릭터라 불쌍해 보이는지 자꾸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고 산다. 늘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