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렌즈는 곧 스포트라이트, 알버트 왓슨이 포착한 피사체
전시회 덕후 기자의 <알버트 왓슨 사진전> 감상기
2011년 10월 5일, 애플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아이폰 성공 신화를 일군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부고를 냈다. 마지막을 알린 그의 사진에는 냉철한 눈빛과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고스란히 담겼다. 그야말로 잡스의 생을 한 큐에 보는 듯했다. 이 사진은 두 전설의 만남으로 더 유명해졌다. 생전 잡스가 유일하게 마음에 들어 했던 사진을 남긴 그는 패션 사진계의 마에스트로 ‘알버트 왓슨’이었다.
보그의 전설이자
사진작가의 우상
알버트 왓슨은 1942년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출신으로, 던디대학교와 런던 왕립예술대학에서 각각 그래픽디자인과 영화를 전공했다. 그는 1970년 가족과 함께 런던에서 미국 LA로 이주한 후 취미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화장품 브랜드 ‘맥스 팩터’와 진행한 첫 테스트 촬영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본격적으로 사진 촬영에 뛰어들었다. 이후 1973년 <하퍼스 바자> 크리스마스 호의 표지 모델인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촬영을 계기로, 패션 사진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1977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패션 매거진 <보그> 표지를 100회 넘게 촬영했고, 보그와 가장 오랫동안 협력한 사진작가가 됐다.
왓슨은 패션 사진계에서 화려한 업적을 남기며 정점에 올랐지만, 유명인과 컬래버레이션 하는 사진작가로만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선천적으로 보이지 않던 한쪽 눈 대신 카메라 렌즈를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을 전달했다. 패션과 예술 사이의 상업 사진뿐 아니라 중국·모로코·LA 등에서 고향인 스코틀랜드의 스카이섬으로 이어지는 풍경도 담았다. 피사체를 투과한 빛의 양과 온도를 이용해 담백하게 표현하며,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그의 작품을 패션 매거진이 아닌 세계 여러 갤러리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유다.
이번 사진전에는 알버트 왓슨의 사진 세계를 총망라한 작품 125점이 전시됐다. 빛·그림자·그래픽을 활용한 스타일과 독특한 접근법은 단연 눈에 띄었다. 작품 곳곳에는 그의 샘솟는 창의력과 피사체를 향한 애정이 느껴졌다. 80세를 넘긴 그는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며 끊임없는 모험과 영감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LA로 간 스코틀랜드인
A SCOTSMAN IN LA
이 섹션은 왓슨이 학업을 마친 1960년대 후반부터 패션 사진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전인 1970년대 초반까지 제작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에게 이 시기는 자신의 취향을 알아가는 시간이자, 다양한 사진 표현을 연구하며 추후 고유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준비 기간이었다. 극명한 그림자 대비와 프레임 속 미니멀한 피사체는 조형성을 강조하고, 작품에 잠재한 내러티브를 발현했다. 그의 미학은 예술·그래픽 디자인·영화 즉, 학교에서의 경험과 학업으로부터 비롯됐다.
오른쪽. <파나마 모자를 쓴 루디 일라이어스, 로스앤젤레스>, 1972
히치콕
HITCHCOCK
왓슨이 찍은 첫 번째 유명인은 영화계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다. 히치콕은 1973년 <하퍼스 바자> 크리스마스 호의 표지 모델로 선정됐다. 기존 촬영 콘셉트는 거위 요리가 담긴 접시를 들고 있는 것이었으나, 왓슨은 히치콕과 더 어울리는 촬영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 결과 털이 뽑힌 채 크리스마스 장식 리본을 단 거위의 목을 쥐고, 뚱한 표정을 짓는 히치콕의 모습이 세상에 발표됐다. 이 촬영을 통해 왓슨은 커리어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고, 그 경험은 미니멀하고 강렬한 인물 사진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왓슨 연대기
ALL ABOUT WATSON
왓슨은 히치콕 감독과의 촬영 이후 LA와 뉴욕을 오가며 본격적인 패션 사진작가의 길을 걸었다. <보그> 첫 표지 촬영을 시작으로 프라다·아르마니·리바이스 등의 주요 광고 사진을 찍으면서 그의 커리어는 정점을 향했다. 하지만 상업 사진 활동에만 몰두하지 않고, 틈틈이 여행하며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번 섹션은 인물·풍경·정물·실험적 사진 등 왓슨이 평생에 걸쳐 연구하고 실험한 여러 주제의 사진 영역을 다뤘다. 특정 장르와 장소에 연연하지 않은 그의 열정 어린 작품들을 연대기 순으로 보여줬다.
오른쪽. <어린이 발레학교, 베이징>, 1979
오른쪽. <요지 야마모토 의상을 입은 레슬리 와이너, 런던>, 1989
오른쪽. <안개 낀 나무, 페어리 글랜, 스카이섬, 스코틀랜드>, 2013
비하인드 더 씬
BEHIND THE SCENES
이 섹션에서는 왓슨의 가장 아이코닉한 여덟 가지 작품이 등장했다. 작품 제작 배경과 촬영 과정뿐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공개됐다.
왓슨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찍는 매거진 촬영을 위해 스티브 잡스를 만났다. 주어진 시간은 1시간이었지만, 그는 20분 만에 촬영을 끝냈다. 언제나 그랬듯이 여권 사진 같은 콘셉트로 피사체에 단순하게 접근했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잡스를 보자마자, 왓슨은 그의 천재성과 지성 그리고 자신감을 봤다. 훗날 이 사진은 잡스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됐다.
왓슨은 <롤링 스톤>의 ‘히어로즈 오브 로큰롤’ 시리즈를 위해 믹 재거와 표범을 촬영하던 중, 둘을 이중노출로 합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하지만 당시 포토샵을 활용하던 시기가 아니었기에, 오직 카메라를 사용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했다. 그는 우선 표범의 모습을 찍고, 하셀블라드 카메라 뷰 파인더에 마커로 표범의 눈을 그대로 따서 그렸다. 이후 필름을 되감고 믹 재거의 모습을 뷰 파인더에 있는 표범의 눈에 맞춰 촬영한 결과, 둘이 완벽히 일치한 결과물을 얻었다.
오른쪽. <케이트 모스, 마라케시>, 1993
1993년 1월 16일 모로코 마라케시, 왓슨은 모델계 유망주였던 ‘케이티 모스’를 하루 동안 촬영하면서 그의 아이코닉한 모습을 담았다.
왓슨은 LA를 촬영 장소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사막 한가운데 펼쳐진 초현실적 공간이라는 특별함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국 루이지애나주 동남쪽 미시시피강을 끼고 있는 앙골라 교도소는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보안이 철저한 교도소다. 1880년에 만들어진 이곳은 루이지애나로 끌려온 많은 노예의 고향이던 앙골라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1952년 수감자 31명은 시위를 벌였다는 이유로 발뒤꿈치 힘줄이 절단되는 처벌을 받았고, 1970년대 초에는 수감자끼리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살인·자살·탈출 등으로 얼룩진 이곳에 존 휘틀러가 새로운 소장으로 온 뒤로 수감자의 처우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알버트 왓슨 사진전> 전시회 정보
기간: 2022. 12. 8 ~ 2023. 3. 30
시간: 10:00 ~ 19:00
장소: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한가람미술관 2층
공동 주최: 한겨레신문, 예술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