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를 많이 쓴다고 좋은 광고가 될까?
광고의 본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지난 23일 마케팅 업계의 거장이라 불리는 ‘페르난도 마차도(Fernando Machado)’가 부산국제마케팅광고제(MAD STARS)에 연사로 참여하기 위해 부산을 찾았다.
마차도의 세션 주제가 ‘인공지능(AI)과 창의성이 혁신을 촉진하는 방법’이었던 만큼, 세계적 거장인 마차도가 과업에 AI를 활용하는 노하우를 접하기 위해 장내에 많은 청중이 모였다.
그러나 아이디어 도출, 광고 제작 등 과업 전반을 AI로 풀이하는 해법을 기대한 청중이라면 마차도의 강연은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중이 적지 않았지만, 마차도에게 AI는 성공적인 브랜딩을 위한 전략의 일부에 그쳤기 때문이다.
AI를 활용한 뛰어난 제품 개발
식물성 원료로 대체 식품을 개발하는 ‘낫코(NOTCO)’는 마차도가 과거 CMO로 재직했으며, 현재 어드바이저로 있는 기업이다. 강연에서 마차도가 강조한 낫코의 성공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존 식품과 동일하거나 더욱 뛰어난 맛’이고, 다른 하나는 ‘낫코의 장점과 색깔을 효과적으로 홍보한 마케팅 전략’이다.
대체 식품의 핵심 과제인 ‘대체 재료로 기존 식품의 재형과 맛을 내는 것’에 마차도는 AI를 적극 활용했다. 낫코가 개발한 AI인 ‘주세페(Giuseppe)’는 수 천, 수 억 개의 원료 성분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다양한 조합을 실험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학습된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주세페는 더욱 빠른 시간에 효과적인 조합을 완성 시킨다. 낫코의 대표 제품인 대체 마요네즈 ‘낫 마요(Not Mayo)’, 대체 우유 ‘낫 밀크(Not Milk)’ 등이 모두 개발 과정에서 주세페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마차도가 소개한 AI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다.
왜 마차도는 AI를 더욱 적극적으로 쓰지 않을까?
마차도는 AI를 제품 개발에만 국한해 활용했다. 광고, 마케팅을 위한 아이디어 도출이나 광고 제작 등에는 AI를 전혀 활용하지 않았다.
당장 국내만 하더라도 많은 기업과 광고 제작사가 단순 이미지는 물론 광고 영상 제작에 이르기까지 AI를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왜 마차도는 이처럼 더 많은 과업에 AI를 활용하지 않는 걸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마차도에게 AI는 ‘역할이 분명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좋은 품질의 대체 식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AI는 인간이 할 수 없는 방대한 분석과 조합을 빠른 시간 안에 해낼 수 있다. AI의 강점인 거대한 데이터에 대한 학습과 빠른 처리 속도를 적극 살린 활용법이다.
그러나 그동안 수없이 많은 글로벌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온 거장의 입장에서 식품 개발 이외의 과업에 AI의 도움은 필요성이 떨어진다. 아이디어 도출을 위해 수고를 들여 AI에 마차도의 작업을 학습 시켜 봤자 마차도의 복사본이 완성될 뿐이며, 과업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해도 그렇게 만든 크리에이티브가 진정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던 셈이다.
광고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
MAD STARS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매트 맥도날드(Matt Macdonald) BBDO CCO는 행사장에서 ‘광고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광고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야기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로 정의된다.
이번 MAD STARS에서 심사위원단이 제시한 핵심 평가 지표 또한 ‘독창성(Originality)’ ‘인간성(Humanity)’ ‘전략적인 사고(Strategic Thinking)’ ‘문화적 인사이트(Cultural Insight)’ 등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광고를 판별하는 데 무게를 뒀다.
마요 헤이터즈 등 마차도의 캠페인은 사람의 심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재미는 물론 “대체 식품은 기존 식품과 달리 맛이 없다”는 사람들의 편견을 효과적으로 분쇄했다. 이처럼 사람들의 편견을 부수고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건 AI 보다 사람이 훨씬 잘 하는 분야라는 게 마차도의 판단이다.
마차도의 입장에서 AI는 이미 필요한 부분에 충분히 활용됐다. 그 이상 AI를 활용하는 건 톱이 해야 하는 일까지 망치로 하려 드는 셈이다.
해외에서 마차도처럼 AI를 도구로써 필요한 영역에만 활용한 예는 적지 않다. 광고 회사 VML 태국은 태국에서 집을 리모델링할 때 보통 최고 연장자의 뜻대로 인테리어를 결정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VML 태국은 문 크기의 포스터를 제작, 가족들이 다양한 인테리어 디자인을 함께 보며 대화할 수 있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해당 캠페인에서 빠르게 여러 인테리어 포스터를 제작하는 데 생성형 AI가 활용됐지만, 그 외의 영역에서는 AI가 사용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시 이미지 및 광고 영상 제작 등 캠페인 전반에 AI를 적극 활용한 국내 사례를 되돌아보자.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무엇일까? 비용이 다소 절감됐을 수 있다. 그러나 브랜드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에 있어 이러한 방식이 과연 얼마나 효용을 봤을까. 고민해볼 일이다.
AI를 쓴다고 좋은 광고가 되는 건 아니다
이번 MAD STARS의 수상작 중 AI로 제작되거나 제작 전반에 AI가 적극적으로 활용된 광고는 없다. 오히려 가리비 껍데기를 통해 문제에 대한 지속가능한 해답을 제시한 TBWA/HAKUHODO의 ‘쉘멧(Shellmet)’ 프로젝트의 경우 AI가 전혀 사용되지 않았음에도 MAD STARS는 물론 칸 국제 광고제 등 전 세계 광고제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AI가 확산되던 시기에는 ‘AI로 무엇인가를 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 크리에이티브한 모습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MAD STARS를 통해 해외 기업이 보여준 건 AI를 단순히 비주얼적인 측면에만 사용하는 것을 넘어,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등 적재적소에만 활용하는 것이 광고 업계의 진정한 ‘AI 활용법’이라는 메시지다.
AI의 활용은 여전히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마차도는 “AI를 통해 계속 성장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고, MAD STARS의 또다른 심사위원인 수자나 아펠바움(Suzana Apelbaum) 구글 크리에이티브 및 혁신 책임자는 AI가 정치, 사회에 미칠 수 있는 변화를 조명하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 AI를 통해 장애를 넘어 본인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등 인간성 증대에 무게를 둔 캠페인을 인상적인 사례로 소개하기도 했다.
앞서 매트 CCO가 언급했듯 광고의 본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있다. 과연 우리는 본연에 충실한 좋은 광고를 만들기 위해 AI를 사용하고 있을까? 혹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혹은 단순히 새롭고 신기한 기술이기 때문에 AI를 활용하고자 하는 건 아닐까.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탐구하는 자세는 경쟁력을 키우고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바람직한 태도다. 그러나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그 광고가 약속처럼 좋은 광고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곱씹어봐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