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광고 대행사’, TBWA\하쿠호도의 마사토시 우사미 디렉터를 만나다
TBWA\하쿠호도, 그들이 광고가 아닌 제품까지 만드는 이유
광고 회사가 왜 제품을 만들었나요?
지난 8월, 부산국제마케팅광고제(MAD STARS)가 한창인 벡스코에서 막 강연을 끝내고 연단을 내려온 ‘마사토시 우사미(Masatoshi Usami)’ TBWA\하쿠호도(TBWA\HAKUHODO) 시니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건넨 질문이다.
전 세계 광고·마케팅 권위자와 전문인이 모여 우수한 작품에 대한 수상과 광고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인사이트를 나누는 자리에 쉽게 볼 수 있는 광고 캠페인이 아닌 ‘흰 헬멧’을 품에 든 그에게 호기심이 생긴 탓이다.
우사미 디렉터가 품에 든 헬멧은 그의 강연의 주요한 주제였던 ‘쉘멧(Shellmet)’ 프로젝트의 실제 생산품이다. 버려지는 가리비 껍데기를 활용해 지속 가능한 제품 개발에 성공한 쉘멧은 부산국제마케팅광고제를 비롯해 스파이크스 아시아(Spikes Asia) 등 여러 국제 광고제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한 프로젝트다. 광고의 완성도는 물론, 제품에 녹아 든 아이디어의 크리에이티브 모두 국제적으로 인정 받은 사례다.
광고 회사가 실제 제품을 제작하는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필자에게 우사미 디렉터는 쉘멧 이전 이미 복수의 제품 제작에 참여한 바가 있음을 밝혔다. 그는 “크리에이티브는 영역에 국한된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광고 회사 또한 다양한 영역에서 크리에이티브를 전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곧바로 귀국을 앞둔 빠듯한 일정 탓에 우사미 디렉터와 자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지만, 그는 흔쾌히 일본으로 돌아간 뒤 서면으로 못 다한 이야기를 마저 나누기로 약속했다. 덕분에 쉘멧 프로젝트를 비롯, 그가 생각하는 크리에이티브에 대해 자세히 들어볼 수 있었다.
크리에이티브,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돼 반갑습니다. 다시 한 번 정식으로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TBWA\하쿠호도의 시니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사토시 우사미입니다. 2009년 HAKUHODO에 입사한 후 2018년 지금의 TBWA\하쿠호도에 합류했습니다.
TBWA는 광고 회사로 알고 있는데, TBWA\하쿠호도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건가요?
광고 제작을 통해 다져진 크리에이티브를 바탕으로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어요.
전에 행사장에서 이야기를 나눴을 때도 쉘멧 프로젝트가 처음 실제 유형의 무언가를 만들었던 경험은 아니었다고 했어요. 다양한 사례가 있을 것 같은데요?
청각 장애인이 라이브 음악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사운드 프리 콘서트(Sounds Free Concert)’, 사람들이 공중 화장실에서 접촉을 꺼려 한다는 연구에 따른 변기, 세면대 등에 직접적인 접촉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하이 토일렛(Hi Toilet)’ 등 다양한 사례가 있어요. 팬데믹 기간 진행했던 ‘포켓 소프(POCKET SOAP)’ 프로젝트도 재밌는 프로젝트였고요.
모두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인데요. 포켓 소프 프로젝트는 어떤 프로젝트죠?
포켓 소프는 팬데믹 기간에 아이가 있는 가정을 위해 진행했던 프로젝트예요. 어린 아이가 있는 부모가 팬데믹 기간에 크게 애를 먹었던 일이 뭔지 아세요?
글쎄요, 외출할 때 마스크를 씌우는 일?
그것도 좋은 답변이지만, 정답은 손 씻기예요. 생각보다 손 씻는 걸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거든요. 실제 80%에 달하는 아이들이 손을 제대로 씻고 있지 않아요. 그런데 부모는 팬데믹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의 손을 씻겨야 하니, 손 씻기 싫어 우는 아이를 달래는 일이 고역이었겠죠.
포켓 소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손 씻기를 하나의 놀이로 만든 프로젝트입니다. 다양한 바이러스 모양을 한 비누는 30초가량 물에 비비면 녹아 사라져요. 이를 통해 아이들이 손 씻기를 ’30초 안에 바이러스를 무찌르는 놀이’로 인식할 수 있도록 유도한 거죠.
재밌는 발상이네요. 반응은 어땠나요?
성공적이었어요. 별다른 광고 없이 입소문만으로 13만 박스에 달하는 물량이 모두 품절됐으니까요. 스파이크스 아시아, 칸 라이온(Cannes Lions) 등 여러 광고제에서 수상하기도 했고요.
버려진 껍데기, 생명을 지키는 아이디어가 되다
다양한 사례를 들으니, 쉘멧 프로젝트가 우연히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쉘멧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한국에서도 가리비를 많이 먹을 것 같은데, 일본은 가리비를 정말 많이 먹어요. 일본 시장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조개거든요. 이는 결국 가리비 껍데기가 일본에서 가장 많이 버려지는 조개 껍데기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많이 소비할 수록 처리해야 하는 쓰레기가 많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네요
그렇죠. 일본의 사루후츠 마을은 가리비로 가장 유명한 지역이에요. 가리비 어업은 오랫동안 마을을 지탱하는 주요 산업이기도 했죠. 그런데 2021년부터 마을 사람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가리비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어요.
2021년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전까지는 수출업자를 통해 버려진 가리비 껍데기를 해외로 운송해 처리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2021년 수출업자들이 시장에서 철수하며 약 4만 톤에 달하는 껍데기가 마을 해변에 방치돼버렸어요. 환경 오염을 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가 돼 버린 것이죠. 이 현상을 보고 저희는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쉘멧의 시작이었군요
사회적 문제가 된 폐 가리비 껍데기를 새로운 자원으로 전환하고 싶었어요. 가장 먼저 주의 깊게 살펴본 건 가리비 껍데기의 성분과 구조였습니다. 사실 가리비가 굉장히 단단하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글쎄요, 단단하기야 하겠지만, 크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가리비의 주 성분은 탄산칼슘이에요. 탄산칼슘은 산업 제품의 내구성을 강화하는 데 주로 사용되는 성분이죠. 아울러 껍데기의 구조 또한 자연 환경의 여러 요소에도 가리비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만큼 견고한 구조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이러한 가리비의 자연적인 특성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런데 왜 하필 헬멧이었나요?
가리비 어업이 생계의 주축인 마을 주민들의 삶부터 바라본 결과에요. 가리비 어부는 작업 중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헬멧을 착용해야 하거든요. 더욱 확장해보면 지진과 같은 재난이 빈번한 일본의 거의 모든 작업장이나 공공장소에 필수적인 안전장비이기도 하고요. 자신의 보호하기 위해 자연이 디자인한 껍데기가 이제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는 장비로 변환되는 콘셉트인 것입니다.
산업과 자연을 순환하는 지속 가능성
헬멧의 외관이 가리비 껍데기를 닮은 것도 그런 콘셉트를 드러내기 위함인가요?
콘셉트를 드러내는 동시에, 실용적인 이유이기도 해요. 자연에는 수백만 년 동안 최적화된 구조가 존재해요. ‘생체 모방’은 이처럼 자연이 만든 디자인을 기술 개발에 적용하는 걸 의미하죠. 쉘멧도 생체 모방의 예시예요.
쉘멧은 가리비 껍데기의 구조를 모방한 특수한 구조를 디자인에 적용했고, 그 결과 외부 압력에 대한 저항력을 테스트하는 ‘폰 미제스 응력(Von Mises Stress)’ 테스트에서 일반적인 구조의 헬멧과 대비해 133% 더 높은 내구성을 구현했어요. 껍데기의 형태를 딴 디자인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기능적인 디자인인 것이죠.
그래도 헬멧인 이상 결국 부서지는 순간이 올 텐데, 그럼 다시 쓰레기가 발생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요. 사실 이 부분 또한 쉘멧 프로젝트에서 크게 신경 쓴 부분인데요. 쉘멧은 단순히 버려진 껍데기를 재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아요. 쉘멧은 생산될수록 껍데기는 물론 전체적인 폐기물 오염이 줄어들 수 있도록 설계됐어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건가요?
쉘멧은 분쇄된 폐 껍데기와 100% 재활용된 플라스틱을 혼합해 만들어져요. 따라서 새로운 플라스틱으로 제품을 만드는 것에 비해 36%가량 CO2 배출량을 줄일 수 있었고, 수명이 다해 부서진 쉘멧은 다시 건축 자제나 새로운 쉘멧 제작에 재활용 될 수 있어요. 진정한 지속 가능성을 가진 제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쉘멧의 순환 구조를 통해 우리는 사회에 쉘멧이 공헌할 수 있는 바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스토리 PR에 있어 중점을 둔 부분이기도 하고요. 단순히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아이디어를 통해 개인과 기업, 사회에 영감을 주고자 했습니다.
‘하고 싶다’는 마음이 좋은 아이디어를 만든다
무엇보다 쉘멧이 가진 지속 가능성이 가장 인상 깊어요. 쓸수록 환경 오염을 줄일 수 있는 매력적인 제품 같달까요?
과정이 쉽지는 않았아요. 지속 가능성은 종종 장기적인 시각으로 연결돼 인내심을 요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연결될 때도 있어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성과 함께 매력적인 스토리를 만드는 게 중요했어요.
쉘멧의 경우 순환에 대한 스토리가 있었죠
맞아요. ‘스스로를 보호했던 껍데기가 이제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스토리가 있었죠. 순환에 대한 스토리와 함께 제품 생산이 실제 환경 오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친환경적인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지속 가능성을 가진 제품이 될 것이라 판단했어요.
폐 가리비 껍데기를 소재로 그런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중요한 것 같네요
좋은 아이디어를 위해서는 창의력과 실행력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도 전문적인 기술이지만, 그걸 실현하는 것도 전문적인 기술이거든요.
창의력과 실행력을 기르는 노하우 같은 게 있을까요?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숙제 같은 매일의 일이 주는 ‘해야 한다’는 압박에 압도되기 쉽지만, 하고 싶다는 에너지가 있어야 이를 바탕으로 더 큰 도전에 임할 수 있고, 그 가운데 좋은 아이디어가 지속적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어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광고의 창의적인 힘
소비자가 1명에서 1만명으로 늘어나면, 이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했다고 할 수 있어요.
독특한 아이디어로 연신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우사미 디렉터는 광고의 본질이 ‘문제 해결’에 있다고 설명한다. 종종 클라이언트의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클라이언트의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직업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일’로 설명한다.
우사미 디렉터의 목표 또한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기억되는 일이다. 이를 위해 그는 광고 산업을 창의 산업으로 확장하겠다는 포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광고의 창의적인 힘은 마케팅 문제뿐 아니라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인터뷰를 마치면서도 우사미 디렉터는 “자신처럼 광고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클라이언트의 의견이나 기회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테슬라, 애플, 아마존과 같은 주요 산업에서 혁신이 나타났던 것처럼, 광고를 만드는 광고 대행사도 훌륭한 혁신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며 세상을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아이디어를 위해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하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