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핫플’이 아니라는 부산역 로봇 촬영 스튜디오 (feat. 경험 마케팅 솔루션)
부산역 젠시 스튜디오를 직접 다녀왔습니다
지금 잘 나가는 AI 스타트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냉혹한 시장 검증을 통과했다는 점입니다. 광고 마케팅 업계에서 생성형 AI 기능을 중심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스타트업 또는 팀을 직접 만났습니다.
부산역 2층 대합실. 의문의 스튜디오. 통 유리로 된 문을 지나자 육중한 로봇 팔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대형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벽에선 감각적인 영상이 흘러나옵니다. 이용 방법은 ‘인생네컷’ 비슷합니다. 배경과 스타일을 선택한 후 지정된 위치에 서면 로봇이 자동으로 촬영을 진행합니다.
지난달 초 부산역에 문을 연 ‘젠시 스튜디오(GENCY Studio)’ 이야기입니다. AI 스타일테크 기업 스튜디오랩이 만들었습니다. 컨테이너박스 크기의 이 스튜디오는 ‘AI 촬영 로봇(AI photography robot)’이라는 소개에 걸맞게 로봇이 사진 작가로 열일 중입니다.
촬영 결과물은 영상과 사진 두 가지로 제공됩니다. 영상은 서버를 거쳐 자동 편집돼 QR코드로 변환되고, 이 과정에 15초가 걸립니다. 그 사이 사용자는 사진을 인화할 수 있습니다. 직접 받아본 결과물은요. 세련됐습니다. 등장 인물만 빼면, 인스타그램에서 볼법한 느낌입니다.
이 ‘세련된 느낌’이 젠시 스튜디오의 핵심 무기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이재영 스튜디오랩 이사는 “자동 촬영 스튜디오에선 결과물의 품질이 가장 중요하다”며 “단순히 로봇이 사진을 찍어준다는 신기함만으로는 소비자의 재방문을 유도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사진의 ‘느낌’은 보통 구도와 감도로 결정되는데요. 젠시 스튜디오의 촬영 로봇은 피사체를 빠르게 분석해 최적의 구도와 감도를 판단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제어하는 것이 바로 로봇에 탑재된 뇌, 즉 AI 기술입니다.
AI 스타트업 스튜디오랩의 오프라인 도전
네, 드디어 본제가 나왔습니다. AI입니다. 젠시 스튜디오를 개발한 스튜디오랩은 국내외 시장에서 검증받은 AI 스타일테크 스타트업입니다.
스튜디오랩은 약 2년 전 의류 사진을 넣으면 쇼핑몰 상세페이지를 자동 생성하는 SaaS 서비스 ‘젠시(GENCY, 구 셀러캔버스)’를 출시해 소상공인부터 대형 패션 유통사까지 다양한 고객을 확보한 뒤, 2024년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에서 독일 보쉬와 함께 AI 분야 최고혁신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연관 콘텐츠: 4년차 AI 스타트업이 CES 최고혁신상을 받은 비결은?).
나아가 지난해에는 젠시의 AI 기술력을 그대로 이식한 자동 촬영 로봇(젠시PB)을 출시해 상세페이지 제작에 필요한 전 과정을 자동화했고요. 해당 촬영 로봇으로 2025년 CES 로보틱스 분야에서 또 한번 혁신상을 수상했습니다. 지난달엔 이런 기술력과 시장성을 인정받아 33억 원 규모의 프리A 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성공했고요.
이처럼 온라인 커머스 마케팅 솔루션 사업을 잘 하고 있던 스튜디오랩은 지난달 돌연 부산역에 로봇 스튜디오를 열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홍보에 나섰습니다. 기존 일은 잘 되고 있으니, 인생네컷 같은 사업을 새로 벌여볼 생각이었던 걸까요?
그 이유가 궁금해 직접 부산역을 방문했고요. 이재영 이사의 입에서 흥미로운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재영 이사는 “젠시 스튜디오는 패션 브랜드의 오프라인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는 공간 경험 마케팅 솔루션이 될 것”이라는 구상을 전했습니다.
오프라인 마케팅이라면 팝업스토어나 브랜드 콜라보레이션 행사 등을 말하는데요. 이 로봇 스튜디오를 도입한 브랜드는 고객에게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되고, 결과적으로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입니다.
“최근 오프라인 마케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젠시 스튜디오는 팝업스토어나 브랜드 콜라보 이벤트 등에 어려움을 겪는 브랜드를 위해 기획됐어요. 의류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를 예로 들면요. 마음에 든 옷을 입어 본 고객이 행사장 한편에 설치된 젠시 스튜디오에서 브랜드 콘셉트에 어울리는 촬영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폰으로 촬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제공하며, 자연스레 입소문을 통한 모객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브랜드는 고객 오프라인 접점을 늘릴 수 있겠죠.”
젠시 스튜디오는 처음부터 대여 및 판매가 쉽도록 모듈화된 패키지 형태로 설계됐습니다. 언뜻 일반 시민을 겨냥한 사업처럼 보였지만, 실은 기존 고객(패션 브랜드)이 처한 오프라인 영역의 고민을 해결하는 솔루션이었던 셈인데요. 새로운 비즈니스에 대한 스튜디오랩의 청사진은 과연 무엇일까요. 이재영 스튜디오랩 이사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브랜드 마케팅의 새로운 패러다임, 오프라인
젠시 스튜디오를 ‘공간 경험 마케팅 솔루션’으로 소개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젠시 스튜디오는 크게 두 가지 구역으로 구성된다. 촬영 구역과 팝업스토어 구역이다. 사용자는 자동 촬영을 경험한 뒤 팝업스토어 공간으로 이동해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다. 이를 조립식으로 패키징해 기업이 쉽게 대여 및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도입 편의를 위해 컨테이너 박스 크기로 제작했다.
기존의 젠시 및 젠시PB는 상세페이지 제작 시간을 대폭 줄여 고객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젠시 스튜디오는 고객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젠시 스튜디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브랜드가 다양한 콘셉트의 오프라인 행사를 손쉽게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존에는 플래그십 스토어나 팝업스토어의 콘셉트 변경 시 공간 전체를 리뉴얼해야 했지만, 젠시 스튜디오는 AI로 생성된 배경 영상만 교체하면 된다. 그 덕에 마케팅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
또 하나는 팝업스토어 제작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영상으로 콘셉트를 구현하다 보니 소규모 브랜드도 팝업 행사를 진행할 수 있으며, 여러 브랜드의 콜라보 행사도 용이해진다. 예컨대 3~4개 브랜드를 하나의 로봇 촬영 솔루션 안에 메뉴로 구성하면 소비자가 원하는 브랜드의 느낌으로 바꿔가며 촬영할 수 있다.
왜 브랜드들이 오프라인 경험에 주목하고 있는가?
모든 브랜드 경험이 온라인으로 세팅되다 보니 경쟁력 확보를 위해 오프라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기본적으로 고객 접점을 늘리기 위함이다. 팝업스토어가 대표적이며, 무신사 같은 온라인 기반 플랫폼이 오프라인 매장을 확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젠틀몬스터가 제품과 무관한 조형물로 시선을 사로잡는 것도 오프라인 마케팅의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엔 브랜드 팝업스토어가 점점 거대해지고 있는 추세다. 젠시 스튜디오만으로 이런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대규모 팝업스토어 일부 구역에 설치돼 ‘와우 포인트’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장의 피팅룸과 연계해 방문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도 있다. 이처럼 소비자가 오프라인 공간을 찾을 이유를 하나라도 더 제공하는 것이 젠시 스튜디오의 핵심 가치다.
전문 아티스트 수준의 촬영 품질
촬영 품질이 상당히 좋다.
제대로 봤다. 젠시 스튜디오가 기술적으로 가장 공들인 부분이 결과물의 품질이다. 최적의 감도를 찾는 데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다. 사진은 보자마자 호불호가 갈리는 영역이기 때문에 가장 대중적인 지점을 찾아야 했다. 이를 위해 실제 베테랑 영상 감독을 영입해 AI를 학습시켰고, 약 1년간의 고도화 끝에 대다수 사용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느낌’을 구현했다.
느낌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뭔가?
구도와 감도다. 특히 감도에 공을 들였다. 조도에 따라 조리개를 조정하는 물리적인 기술 개발 자체는 쉬웠지만, 대중적인 적정선을 찾기가 까다로웠다. 많은 사용자의 피드백과 전문가의 조언을 받았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결과물을 보고 ‘느낌 좋다’고 말한다.
왜 이렇게 품질에 집중했나. B2B 비즈니스 목적이라면 ‘비용 절감’에만 신경쓰면 될 것 같은데.
리텐션 때문이다. 젠시 스튜디오가 소비자의 재방문을 유도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마케팅 솔루션으로서 가치를 지니지 않겠는가. 아마 처음 한 번은 ‘어, 로봇이 사진을 찍어주네?’ 싶어 젠시 스튜디오에 방문할 테지만 막상 결과물이 형편없다면 다시는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신기함을 넘어서는 요소가 필요하고, 그게 바로 전문 아티스트 수준의 촬영 품질이라고 판단했다.
요즘엔 외식업 분야에서 상용 로봇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배달 로봇이나 치킨 튀겨주는 로봇, 로봇 카페 등. 하지만 이들이 모두 뛰어난 품질을 추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영역에 따라 요구되는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상용 로봇 시장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특정 업무를 표준 룰 베이스로 수행하는 로봇이다. 배달 로봇이나 치킨 로봇 등이다. 정해진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게 목표다. 반면 결과물에 대한 호불호가 존재하는 로봇이 있다. 우리 포토봇이 여기에 속한다. 이 경우엔 품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엔 로봇 카페도 이쪽으로 넘어오는 추세다. 많은 매점이 리텐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국내에 포토봇을 만드는 회사가 또 있나?
원격 조종이 가능한 촬영 로봇을 만드는 회사는 몇 군데 있지만, 우리처럼 AI를 탑재한 완전 지능형 촬영 로봇을 비즈니스용으로 구축한 사례는 없다.
부산에서 비즈니스 검증 후 서울로
대부분의 오프라인 마케팅이 서울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왜 젠시 스튜디오는 부산역에 지어졌나?
부산은 서울과 달리 팝업스토어를 위한 공간이 제한적이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산불꽃축제, 지스타 등 국제 규모의 행사가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만큼, 이러한 행사와 연계해 브랜드 콜라보레이션 수요를 흡수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빠르게 검증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이유는 부산역이 지닌 공간적 가치다. 부산의 모든 유동인구는 부산역으로 통한다.
부산에서 목표가 있다면?
우선 젠시 스튜디오를 ‘핫플’로 만들어 볼 계획이다. 소비자가 자주 찾는 공간임을 증명한다면 브랜드 협업도 훨씬 수월해질 테니까. 현재 부산국제영화제나 지스타 등과 협업을 구상 중이며, 다양한 IP 콘텐츠 기업과도 논의 중이다. 올해 3분기까지 다양한 기업과 협업을 진행한 뒤 연말쯤 서울에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
젠시 스튜디오를 오픈한 지 약 3주(취재일 기준) 됐다. 고객 반응이 어떤가?
신기해한다. 대부분 인생네컷 같은 서비스를 생각하고 들어왔다가 AI 로봇이 영상을 찍어준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한다. ‘이런 게 왜 부산에 있느냐’고 되묻는 분도 많다.
지난달 SBI인베스트먼트, 네이버 D2SF, 서울경제진흥원(SBA)이 참여한 프리A 투자에서 33억 원을 유치했다. 스타트업이 투자받기 어려운 시기다. 배경이 궁금하다.
기술 기업이면서도 시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점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까다로운 패션 브랜드들이 고객사로 유지되는 모습을 보고 성장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덜었다는 평가도 기억에 남는다. 한편으로는 한국에서도 제대로 된 SaaS 스타트업이 나와야 한다는 응원과 지지의 마음도 투자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다.
올해 계획이 궁금하다.
지금까지 제품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면, 올해는 모든 자원과 역량을 비즈니스 모델의 확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젠시 스튜디오도 이러한 계획의 일환이다. 또 젠시는 올해 중 아마존 셀러를 겨냥해 미국에 진출할 예정이다. 해외 셀러나 브랜드가 마케팅 영역에서 마주하는 고충도 국내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젠시나 젠시 스튜디오의 해외 수요가 충분하다고 본다.
스튜디오랩이 추구하는 비전은?
스튜디오랩은 처음부터 커머스 기업의 마케팅 밸류체인을 혁신하겠다는 비전으로 설립됐다. 세일즈포스처럼 특정 타깃 고객을 중심으로 다각화된 사업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상세페이지 제작부터 제품 촬영, 오프라인 마케팅까지 왔다. 앞으로도 AI 코어 기술을 기반으로 커머스 마케팅을 종합 지원하는 솔루션을 개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