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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거울

글. 김관식 편집장 seoulpol@wirelink.co.kr

어느 날 두 아이가 굴뚝을 청소했습니다. 한 아이의 얼굴은 새카맣고 다른 한 아이는 그을음이 묻지 않았습니다. 어느 쪽 아이가 얼굴을 씻을까요?

바로 얼굴이 새하얀 아이입니다. 얼굴이 새카만 아이는 깨끗한 아이를 보고 내 얼굴에 아무 것도 묻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반대로 깨끗한 아이는 얼굴이 새카만 아이를 보고 ‘내 얼굴도 저럴 것’이라는 생각에 얼른 세수를 하러 화장실로 뛰어가겠죠. 서로 상대의 얼굴을 거울 삼아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봤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소설가 조세희 씨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맨 첫 장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입니다. 우리는 종종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을 비춰봅니다. 내가 맞게 가고 있나, 맞게 하고 있나, 옆 사람은 잘 하고 있나 하고 말이죠.

옛사람들은 구리거울과 역사거울, 그리고 사람거울을 ‘삼경(三鏡)’이라 했답니다. 구리거울로는 자신의 의관을, 역사거울로는 천하의 흥망을 깨치고, 사람거울로는 자신의 길을 바로 잡아 나간다는 것이지요. 사람이 곧 환경인 셈입니다.

흔히 환경은 사람을 바꾼다고 하죠. 그럼 사람은? 환경을 만들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환경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수동태에 더 가깝다고 봅니다. 그것을 우리는 환경을 만들어간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외려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환경을 이길 수 있고, 환경은 적응하는 것이라고.

주어진 환경을 살아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일종의 ‘존버(존나게 버틴다는 뜻의 속어)’나 ‘개무시(철저히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내 갈 길 간다는 속어)’도 방법이라면 방법이겠죠. 저는 이 모든 것이 나름의 방어기제라고 생각합니다.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라는 주어가 하나의 객체가 된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영향을 주고 받는 백혈구이자 적혈구가 돼야 합니다. 힘낼 수 있도록 산소를 부지런히 퍼 나르고 나쁜 바이러스는 싸워 이겨내야 합니다. 유리창으로 보면 남의 일이겠지만 거울로 보면 우리 일이 되겠지요. 그리고 내가 보입니다.

그들을 보면, 제가 보입니다. 그들이 아프면 저도 아픕니다. 그들이 기뻐하면 저도 기쁩니다. 그들에게 산소를 퍼 나르고 그들도 제게 퍼줍니다. 서로의 백혈구가 되기도 합니다. 거울은 환경을 만드는 플랫폼입니다.

마찬가지로 독자를 보면 저희가 보입니다. 그 메시지를 독자 여러분께 전달하려고 장황한 글을 썼습니다. 사살, 이 글을 쓰는 제가 블록현상이 왔거든요. 정말 힘들게 한땀 한땀 썼지만 저도 이겨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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