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업들이 웹사이트를 리뉴얼하는 진짜 이유
잘 만든 웹사이트는 글로벌 비즈니스에 도움이 된다
웹사이트가 이게 뭡니까. 이 참에 완전히 바꿉시다.
얼마 전 만난 한 디지털 에이전시 임원이 최근 진행한 기업 웹사이트 리뉴얼 프로젝트의 배경을 소개하며 전해준 이야기입니다. 불호령의 주인공은 대기업 A사의 회장님인데요. 해외 출장을 다녀온 회장님이 임직원들을 불러 모아 “우리 웹사이트 너무 엉망인 것 아니냐”고 호통을 쳤고, 그 즉시 리뉴얼 프로젝트 팀과 예산이 꾸려졌다는 후문입니다.
조금 더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 보면 이렇습니다. A사 회장님이 작년 초 비즈니스 목적으로 해외를 방문했습니다. 글로벌 기업의 수장들과 모여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서 회사를 소개할 기회가 생겼는데요. 요즘은 회사 소개를 스마트폰을 켜 웹사이트를 보여주는 식으로 한다더군요. 그런데 다른 회사들과 달리 A사 웹사이트의 디자인은 세련되지 않았고, 오히려 글자만 빼곡했습니다. 심지어 모바일에선 영문 버전이 제공되지도 않았죠. 경쟁사와 잠재 고객사 앞에서 뻘쭘함을 겪은 회장님은 귀국하자마자 ‘웹사이트 리뉴얼’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웹사이트는 그 회사의 얼굴과 같습니다. 당시 A사 웹사이트는 구축된 지 10년이 지난 상황이었는데요. 디자인이 유려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 노후화된 웹사이트 구조에 수많은 콘텐츠가 중구난방으로 축적돼 있어 정보 전달이라는 기본적인 역할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만큼 무겁고 복잡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해외 기업들에도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죠. 결국 A사 웹사이트는 지난해 비주얼 요소를 전면에 내세운 웹사이트로 리뉴얼됐습니다.
기업 웹사이트, 옛날보다 중요합니다
이는 기업 웹사이트 스타일이 변하는 최근의 추세를 잘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디지털 에이전시 업계에 따르면, 지난 몇 년 새 웹사이트를 리뉴얼한 기업의 공통된 요구사항은 ‘UI·UX’ ‘직관성’ ‘스토리텔링’ ‘브랜딩’ 등으로 요약됩니다. 과거 회사 소개 PDF 파일을 그대로 옮긴 듯한 ‘문서형 웹사이트’에서 비전과 가치를 비주얼로 보여주는 ‘브랜딩형 웹사이트’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여기에는 조금 더 근본적인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단순히 디자인 유행을 좇느라 혹은 브랜드 리뉴얼 주기가 도래한 데 따른 결과가 아니라는 이야기인데요. 그 까닭은 기업 웹사이트의 역할 변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엔 우리가 어떤 회사인지 소개하는 정도로 충분했지만요. 이제 기업 웹사이트는 글로벌 사용자에게도 통하는 강력한 브랜딩 수단이자 콘텐츠 허브로 거듭나는 중입니다.
이는 바꿔 말해 웹사이트가 비즈니스에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력이 높아졌다는 뜻이고요. 때문에 웹사이트 리뉴얼에 적극적인 투자를 감행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에이전시 업계의 전언입니다.
이처럼 기업 웹사이트의 역할이 바뀐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우선 기술 발전을 꼽을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웹 상에서 더 다양한 콘텐츠를 많이, 빠르게 제공할 수 있게 됐고, 이에 따라 웹사이트는 기업이 운영하는 다양한 채널(유튜브, 소셜미디어 등)과 콘텐츠(뉴스, 정보성 콘텐츠 등)를 한 데 모아주는 ‘콘텐츠 허브’ 역할을 수행하는 중입니다.
비즈니스에서 브랜딩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배경입니다. 구구절절 텍스트로 설명된 웹사이트보다는 이미지나 영상 중심의 웹사이트가 고객의 기억에 더 오래 남겠죠. 이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해외 고객을 대상으로 특히 더 유용합니다. 물론 브랜딩이라는 게 웹사이트만으로 완성되는 건 아니지만, 한 회사의 ‘첫인상’부터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를 갖춘다는 건 큰 의미가 있으니까요.
관련해 지난해 웹사이트를 리뉴얼한 한 에너지 관련 기업의 실무자는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할 순 없지만 바뀐 웹사이트가 해외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요즘 해외에선 웹사이트가 명함처럼 쓰여요. 특히 외국 기업의 의사결정권자들은 나이가 많지 않아서 웹사이트나 SNS, 유튜브 채널로 상대 회사를 파악하는 데 익숙해요. 예전에는 웹사이트 하면 회사 소개와 이력, 건물 사진과 회장님 인사말 정도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그래선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리뉴얼된 웹사이트에는 텍스트를 최소화하고 다양한 비주얼 요소를 활용해 사용자가 우리 회사의 브랜드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비주얼로 승부하는 B2B 기업 웹사이트
이처럼 브랜딩형 웹사이트를 도입하는 변화는 주로 글로벌 B2B 기업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애플이나 테슬라 같은 기업의 경우 대표 웹사이트를 커머스나 서비스 제공 목적으로 활용하곤 하지만, 웹에서 뭔가를 팔 수 없는 B2B 기업은 인지도를 높이는 데 무게를 싣는 추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유럽 최대 에너지 기업 RWE가 있습니다. 1898년 독일에서 설립된 RWE는 화석연료부터 풍력, 수력, 태양열 등 다양한 발전사업을 영위하는데요. 독일의 국가 발전과 궤를 함께 한 만큼 웹사이트 전반에서 기업의 역사와 헤리티지, 신뢰를 강조합니다. 특히 기업 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페이지를 별도로 구축해 주요 발전상을 영상 콘텐츠를 전달하고 있는데요. 이는 오랜 시간 축적된 기술력을 통해 기업의 신뢰도를 높이는 전략입니다.
마찬가지로 독일에 있는 국제 에너지 기업 이온(E.ON)도 살펴볼 만한 기업입니다. E.ON은 정보 전달에 충실한 웹사이트로, 디자인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콘텐츠를 다루는 방식에서 참고할 점이 많습니다. 이 웹사이트의 디자인 콘셉트는 명확함과 간결함입니다. 사용자 편의를 위해 기업의 주요 정보와 사업영역을 한 페이지에서 제공하며, 가독성을 위해 다양한 레이아웃과 UI를 활용합니다. 또 회사의 활동을 텍스트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인터뷰 등 다양한 영상 콘텐츠로 공유하며 사용자의 이해를 돕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빌게이츠가 설립한 원자력 발전 회사 테라파워(TerraPower)는 웹 기술을 활용한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웹사이트입니다. 소형모듈원자로(SMR)를 개발해 탄소 없는 세상을 실현한다는 비전을 지닌 테라파워는 기술력과 비전, 사업 영역을 메인페이지에 쭉 늘어 놓고 스크롤을 내려 확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기에는 패럴랙스 스크롤링이라고 불리는 기술이 사용됩니다. 스크롤을 내릴 때 전경과 배경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여 원근감과 생동감을 주는 기술로, 사용자는 스크롤을 내리는 것만으로 테라파워가 어떤 회사인지 마치 3D 영상을 보듯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술의 장점은 직관성에 있습니다. 사용자가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몰입감 있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사례는 국내에도 있는데요. 지난해 리뉴얼된 한화그룹 국문 웹사이트가 그 예입니다.
우주항공-방위산업, 에너지, 금융, 서비스 4개의 주요 산업 부문에서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한화그룹은 각 계열사를 통합해 일관된 톤 앤 매너로 소개한다는 목표로 리뉴얼을 진행했는데요. 웹사이트 첫 화면에는 한화그룹의 사업을 소개하는 영상이 흘러나오고요. 웹사이트 전반에 패럴랙스 스크롤링 기술을 적용해 사용자가 한화그룹이라는 기업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신경 썼죠. 그 결과 사용자수는 약 60%, 트래픽은 약 75%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웹사이트가 처음부터 글로벌 세일즈 목적을 갖고 개발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새롭게 오픈한 HD현대 EP사업부 웹사이트가 대표적인데요. EP사업부는 친환경 선박 추진 솔루션을 개발하는 신사업 부문으로 기술력에 비해 인지도가 부족했습니다. 특히 자체 웹사이트가 없어 카탈로그나 박람회, 링크드인 등으로 영업을 하곤 했는데 세일즈 포인트를 충분히 전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요.
때문에 새로 오픈한 EP사업부 웹사이트에는 고객이 ‘맞춤형 선박’을 직접 조립할 수 있는 디테일한 실시간 3D 서비스가 제공됩니다. 자동차 회사의 차량 커스터마이즈 서비스와 유사한데요. WebGL 기술이 활용됐고요. 웹사이트라는 특성을 고려해 그 무엇보다 작동 속도에 집중했다는 것이 당시 프로젝트를 담당한 개발진의 이야기입니다.
이밖에 웹과 모바일, 태블릿 등 다양한 기기에 최적화되는 점, 영문 버전이 제공된다는 점도 공통점입니다. 지금까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웹사이트 목적에 따라 전략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무작정 화려한 디자인이나 최신 기술이 능사는 아니라는 뜻인데요.
즉, RWE나 이온처럼 정보 전달이 목적이라면 디자인은 간결하되 콘텐츠를 가독성있게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을 테고요. 반대로 브랜딩에 초점을 맞춘 웹사이트라면 테라파워나 한화그룹처럼 인터랙티브한 비주얼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HD현대 EP사업부처럼 작정하고 세일즈 목적으로 개발됐다면 그에 맞는 서비스와 기술이 투입돼야 하겠죠.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최근 대기업 웹사이트가 리뉴얼되는 까닭은 잘 만든 웹사이트가 글로벌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효과를 구체적인 숫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정성적 가치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고요. 또 요즘 웹사이트 트렌드를 관통하는 두 키워드는 콘텐츠와 브랜딩입니다. 특히 비주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텍스트는 적재적소에 제한적으로 투입돼 임팩트를 높이는 것이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효과적인 전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