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키오스크 시대, ‘셀프’가 더 무거운 사람들
‘셀프 서비스’로 인한 그림자 노동의 불평등
지난 1월 키오스크 접근성 보장 의무가 전면 시행됐다. 장애인도 키오스크를 불편함 없이 사용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현장의 대응은 더디기만 하다. 접근성·사용성 전문 기업 에스앤씨랩의 장선영 대표가 장애인의 날을 맞아 키오스크 접근성 현황 문제를 살피고, 유니버설 디자인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 해당 콘텐츠는 장선영 에스앤씨랩 대표의 기고를 바탕으로 제작됐습니다.

키오스크 뒤에 숨겨진 ‘그림자 노동’
점심시간,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테이블 옆에 놓인 태블릿형 키오스크에서 메뉴를 고르고 결제를 마친다. 잠시 후 서빙 로봇이 음식을 가져오면 트레이에서 직접 꺼내 테이블로 옮기고, 식사를 마친 뒤에는 그릇을 반납대에 정리한다. 근처 카페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다 마신 컵을 반납대에 올려놓고 나온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손님’임에도 주문부터 결제, 뒷정리까지 직접 한다. 예전 같으면 매장 직원이 도맡았을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이것을 노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셀프 서비스니까 다들 이렇게 하는 거지”라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그림자 노동(Shadow Work)’이라 부른다. 1980년 오스트리아 사회사상가 이반 일리치(Ivan Illich)가 정의한 개념으로, 대가 없이 수행되지만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보이지 않는 노동을 의미한다.
셀프 주유, 무인 계산대, 온라인 체크인도 모두 같은 맥락에 있다. 과거 직원이 하던 일이 소비자에게 넘어가고 기업은 인건비를 줄인다. 소비자는 편리함을 얻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시간과 노력을 함께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이 시간과 노력은 모두에게 같은 무게일까.
30초와 5분의 차이

키오스크 화면 앞에서 메뉴를 찾고 옵션을 선택하고 결제하는 과정. 대부분의 젊은 사용자에게 이 과정은 30초 남짓이면 끝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
글씨가 작으면 메뉴를 읽는 데 시간이 걸린다. 화면 구성이 복잡하면 원하는 메뉴를 찾기 위해 몇 번이고 버튼을 눌러야 한다. 실수로 처음 화면으로 돌아가면 주문 과정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 사이 뒤에 줄이 길어지고,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실제 2022년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고령 소비자의 절반 이상이 키오스크 사용 과정에서 “작동 방식의 복잡함이나 뒷사람 눈치 때문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답했다.
장애인에게는 더 심각하다. 음성 안내가 없는 키오스크는 시각장애인에게 이용 불가능한 기계일 뿐이다.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설계된 화면 위치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또 다른 장벽이다. 누군가에게는 30초면 끝나는 주문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 된다.
키오스크가 생활 곳곳에 보급되면서 소비자의 그림자 노동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사용자에게는 이것이 별다른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러나 고령자와 장애인은 키오스크 앞에서 ‘시간의 불평등’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의 차이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법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제도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왔다. 현재 정부는 키오스크 운영자와 제조사 모두에게 키오스크 접근성을 의무화하고 있다.

지난 2021년 개정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키오스크 운영자가 장애인이 비장애인 이용자와 동등한 수준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의무를 명확히 규정했다. 이에 따라 2024년부터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민간 영역까지 단계적인 적용이 진행돼 왔으며, 지난 1월 28일부터는 키오스크 접근성 보장 의무가 전면 시행되면서 모든 사업자에게 장애인의 이용을 보장하기 위한 책임이 부여됐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및 시정 권고 절차를 거치게 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시정명령 등의 절차를 거쳐 최대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또한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차별로 판단될 경우 형사처벌이 적용될 수 있다.
키오스크를 도입·구매하는 단계에서도 접근성 확보를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지난 1월 22일부터 시행된 「디지털포용법」은 기존 「지능정보화 기본법」에 규정되어 있던 키오스크 접근성 관련 사항을 디지털 포용 정책 체계로 통합·이관한 것으로, 키오스크의 설계·제조·운영 전 단계에서 장애인·고령자 등의 정보접근성 보장을 법적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은 이러한 접근성 보장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키오스크 도입 시 접근성이 확보된 제품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도입·구매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접근성 검증 기준을 고시로 정하고, 이를 충족한 제품에 검증서를 발급하는 시험평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관련 법·제도의 정비가 이어지면서 키오스크 접근성은 더 이상 선택적인 편의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요구되는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음식점과 카페를 넘어 공공서비스, 금융, 교통 등 다양한 영역에서 키오스크가 일상적인 서비스 창구로 사용되면서, 접근성 확보 역시 서비스 운영 과정에서 함께 고려해야 할 기본 요소가 된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검증하나
키오스크 접근성은 단순히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한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접근성이 보장된 키오스크’ 개발하려면 「무인정보단말기 접근성 지침(KS X 9211:2022)」과 관련 고시에 따른 평가 항목을 충족해야 한다.

예를 들어 터치 버튼 간격은 2.5mm 이상 확보되어야 하고, 화면 반응시간은 사용자가 충분히 인지하고 조작할 수 있도록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화면의 정보는 고대비 모드에서도 인식 가능해야 하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안내 기능도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키오스크 조작부는 휠체어 이용자가 접근할 수 있도록 1220mm 이하로 설계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이 실제 제품에서 구현됐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시험평가다. NIA(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가 지정한 국가 공인 시험평가기관에서 이 평가를 수행하고, NIA의 검증을 최종 통과하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검증서가 발급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접근성 기준은 제품이 완성된 뒤에 덧붙일 수 있는 기능이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부터 반영되어야 하는 조건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화면의 높이는 하드웨어 설계 단계에서 이미 결정되고, 조작 버튼의 크기와 간격 역시 인터페이스 설계 과정에서 확정된다. 제품이 완성된 이후에 이러한 구조를 다시 수정하려면 처음 설계 단계에서 반영하는 것보다 훨씬 큰 비용과 시간이 들어간다. ‘나중에 고치면 된다’는 접근이 현실에서 쉽게 통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준비되지 않은 기업에 닥치는 현실
키오스크라고 하면 흔히 음식점의 무인 주문기를 떠올리지만 실제 범위는 훨씬 넓다. 무인 주문기부터 무인 민원 발급기, 금융 자동화 기기, 공항 셀프 체크인 기기, 무인 주차 정산기, 무인 주유기, 각종 종합정보 단말기까지 터치스크린을 기반으로 한 대부분의 무인정보단말기가 이 제도의 대상이다. 심지어 사물함이나 충전기처럼 비교적 단순한 장치도 포함될 수 있다.
공공기관 조달 시장을 목표로 하는 제조사는 더욱 신경써야 한다. 국가 공인 시험평가기관의 검증서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제품 등록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민간 매장에서 운영되는 키오스크 역시 관련 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법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아직 많은 제조사가 관련 법과 지침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규모가 작은 제조사일수록 설계 단계에서 접근성 기준을 반영하는 작업이 부담으로 다가가는 실정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과정을 단순한 규제 대응으로 보지 않는 기업도 늘고 있다. 시험평가와 검증을 제품 개선의 계기로 활용하는 경우다. 화면 구성과 조작 방식 등을 다시 점검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제품 사용성이 개선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설계 단계부터 다양한 사용 환경을 고려하는 이른바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되면 접근성은 단순히 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일이 아니라 더 많은 사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제도가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키오스크 접근성 정책의 취지는 분명하다. 모든 사용자가 차별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품은 처음 설계 단계부터 접근성을 고려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험평가 제도는 이러한 방향성을 실제 제품에 구현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제품의 현재 수준을 객관적으로 점검하고, 기준과의 차이를 명확히 파악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제품을 정교하게 보완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접근성 품질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시장 내 신뢰도까지 확보할 수 있다. 나아가 모든 사용자가 차별 없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회적 가치 실현에도 기여하게 된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키오스크 접근성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접근성은 단순히 기술적 과제나 법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 더 많은 사람이 동등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핵심 조건이다.
기술이 일상의 행동을 대신하기 시작한 시대에, 누군가에게만 더 높은 문턱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일. 그것이 바로 접근성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이다.
점심시간 식당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키오스크 앞에 누군가 서 있다. 화면을 들여다보며 메뉴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셀프의 시대에 ‘셀프’가 더 무거운 사람이다. 하지만 그 무게만큼은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분명 같은 고객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만 더 무거운 셀프는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선영 에스앤씨랩 대표이사
에스앤씨랩은 2012년 설립된 접근성·사용성 전문 기업으로, 14년간 1500개 이상의 디지털 서비스 접근성 및 사용성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2025년 7월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으로부터 우선구매대상 지능정보제품(키오스크) 국가 공인 시험평가기관(지정번호 제2025-0258호)으로 지정돼 키오스크 접근성 시험평가와 접근성 컨설팅 업무를 수행 중이다.
키오스크 시험평가 문의: www.snclab.kr l cs@snclab.kr l 02-2201-9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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