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결함에 흔들린 국산 AAA급 게임… 붉은사막으로 증명된 사용성의 무게
게임도 개발 초기부터 UX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

최근 게임 업계에서 또다시 UX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글로벌 게임 시장에 도전장을 던져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던 펄어비스의 AAA급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게임 <붉은사막(Crimson Desert)>이 압도적인 그래픽과 심리스 오픈월드 환경에도 불구하고도 스팀(Steam) 초기 유저 평가가 ‘대체로 부정적’까지 곤두박질치는 등 론칭 초반 참혹한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사용자인 게임 유저들이 분노한 지점이 게임의 뼈대를 이루는 콘텐츠의 밀도, 퀄리티, 비주얼이 아니라는 지점이다. 초기 비판의 화살은 게임의 조작감을 필두로 한 사용자 경험(UX)에 쏠렸다. 수많은 전문 매체 리뷰어들은 게임이 사용자의 편의를 전혀 배려하지 않아 플레이 자체가 피로하고 고통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두고 ‘UX 지옥(UX hell)‘이라는 용어까지 나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붉은사막의 초기 혹평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사용자 경험에 대한 고려 부족, 더 나아가서는 최종 마무리 단계에 이르러서야 UX를 겉치레 정도로 덧씌우는 업계 관행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붉은사막>의 UX 결함은 과연 무엇이었으며, 이 사태가 업계에 던지는 본질적인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번 글에선 UX 관점에서 <붉은사막>의 초반 행보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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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앱 전략이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이유
사용성도 일관성도 붕괴된 조작 체계

전문 매체 리뷰어, 일반 사용자 모두 입을 모아 단점으로 지적하고 있는 요소는 게임 플레이 경험의 근간이 되는 ‘조작 체계’다. 에픽게임즈의 전 UX 디렉터이자, 인지심리학자인 셀리아 호던트(Celia Hodent)가 “게임의 난이도는 목표와 퀘스트에 있어야지, 조작이나 UI에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게임 업계 또한 기본적인 상호작용에 있어서는 ‘인지 부하의 최소화’를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꼽는다. 쉽게 말해 조작을 유저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붉은사막>의 조작 체계는 이런 원칙을 철저히 위반했다. 수십 년간 여러 게임 개발자와 사용자의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조작법들을 대부분 무시하고, 기본적인 조작에 있어서도 사용성 장벽을 형성했다.
일례로 ‘달리기’와 ‘점프’ 키는 수평, 수직 이동이 잦은 오픈월드 게임에서 사용자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조작키이기 때문에 다른 기능 또는 커맨드를 중복 설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붉은사막>의 경우 이 달리기와 점프 키를 동시에 누르면 메다꽂기 공격 커맨드가 발동하게끔 설정해 놓았다. 그 결과 출시 초기 게임 내에선 이동 중 주변 NPC들에게 의도치 않게 공격을 가하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자주 연출된다.

물론 조작키만 세부적으로 설정했다면 사용자의 리얼한 몰입을 위한 의도적인 장치로 해석할 수 있지만, <붉은사막>의 경우 단순히 난해하거나 복잡한 것뿐만 아니라 일관성까지 배제돼 있다. 특히 게임의 상호작용을 담당하는 키 역시 통상적인 오픈월드 게임에선 하나의 키로 통합되지만 <붉은사막>은 상호작용 키를 E, F, R로 파편화했다.
이로 인해 사용자는 인지적 피로를 겪게 되며 더 나아가 다양한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오픈월드 게임 환경과 맞물렸을 때 사용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조작 실수를 유발할 수 있다.
실제 유명 게임 외신 Rockpapershotgun은 “이 게임은 UX 측면에서 악몽과도 같은 면이 있는데, 특히 말에 올라타는 과정이 그렇다. 겨우 말을 따라잡았을 때 나타나는 버튼은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버튼과 같아 말에 올라타는 대신 허리를 굽혀 라벤더를 한 움큼 줍게 된다”며 “붉은사막의 울창한 숲을 질주하는 건 즐겁지만 결국 라벤더를 엄청나게 많이 모으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를 사후 수습식 UX 설계의 폐해로 분석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게임 개발사의 현업 UX 디자이너는 “다 만들어놓고 마지막에 버튼을 맞추는 ‘사후 수습’식 UX 설계는 게임 업계에서 흔하게 나오는 실수”라고 말하면서, “초기 단계부터 ‘이 상황에선 이 버튼이 어떻게 작동해야 할까’를 같이 고민하고 테스트하지 않으면, 결국 붉은사막처럼 나중에 기획을 덜어내지도 못하고 억지로 복잡한 조합 키만 강제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편의성과 멘탈 모델이 배제된 시스템 설계

이처럼 가장 많은 지적을 받은 것은 전투와 이동을 아우르는 ‘조작 체계’였지만, <붉은사막>의 UX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붉은사막>은 UI를 비롯한 시스템 구조 전반에 걸쳐 사용자가 경험을 통해 학습·예측하고 있는 ‘멘탈 모델(Mental Model)’을 훼손하고 사용자 편의성을 고려하지 않은 결함들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는 스킬 UI 화면 설계다. <붉은사막>의 스킬 화면은 얼핏 선행 스킬 및 연결된 스킬들을 배워야만 다음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스킬 트리’ 구조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채택했다. 하지만 실제 게임은 스킬 화면의 디자인과는 관계없는 선행 조건을 요구한다. 시각적인 단서만으로도 현재 상황과 결과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UX 디자인의 기본 원칙을 어긴 채 유저의 기존 멘탈 모델을 배신하며 플레이 과정에 혼란을 야기한 것이다.

접근성과 직관성 측면에서도 <붉은사막>의 설계 구조는 낙제점에 가까웠다. 게임 내 가장 많이 보게 되는 미니맵은 북쪽/남쪽의 방향이 고정되지 않아 플레이어가 자신이 맵의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혼란을 겪는다.
거의 모든 게임에 존재하는 인벤토리 가방, 스킬 화면 등의 단축키 역시 <붉은사막>에선 제대로 지원되지 않았다. 기본적인 게임 종료 역시 ‘메뉴 열기 – 기타 선택 – 옵션 선택 – 타이틀 화면 클릭 – 확인 버튼 유지 – 시작 화면 대기 – 종료 버튼 클릭’이라는 길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게임 내 기본적인 기능에 대한 온보딩 역시 마찬가지다. 초반 튜토리얼 및 첫 스킬 사용 등의 특정 상황에 직접 화면에 별도 설명창을 제공하는 일반적인 게임과 다르게 <붉은사막>은 핵심 시스템을 체계적인 UI 튜토리얼로 안내하는 대신 무작위 NPC의 쪽지로 대체해버리는 불친절함을 보였다.
결국 이런 문제는 직접적인 평가 점수로 이어져 출시 초기 참혹한 평가의 주원인이 됐다. 전문 매체들은 <붉은사막> UX 결함을 직접 지적했다. 해외 게임 전문 매체 VG247은 “붉은사막은 이해하기 힘든 UI 디자인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인벤토리 시스템은 마치 비닐봉지 값을 아껴서 음식을 집까지 손으로 들고 가려는 경험을 시뮬레이션 하려는 듯하다”며 혹평했다. 국내 매체들 또한 붉은사막의 난해한 조작과 편의성이 배제된 설계를 비판했다.
이런 UX의 결함으로 인한 혹평들은 결국 수치화된 성적으로 이어졌다. 출시 초기 <붉은사막>의 메타크리틱(Metacritic) 점수는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78점에 그쳤으며, 스팀 유저 평가는 한때 ‘대체로 부정적’까지 추락하며 참혹한 데뷔전을 치렀다.

사용성 개선이 불러온 지표 역주행

이처럼 <붉은사막>의 초기 혹평의 주된 원인이 된 것은 UX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위기에 빠진 게임을 구원한 것 역시 UX였다. 쏟아진 혹평 이후 펄어비스 개발진은 공식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사용자 피드백을 수용하며 고개를 숙였다.
특히 이들은 “특히 조작과 관련해 많은 분들이 느끼셨을 불편함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며, 현재 이를 개선하기 위한 패치를 준비 중이다. 아울러 키보드/마우스로 플레이하시는 분들께도 만족스러운 플레이 경험을 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린다”며 조작 체계의 결함을 인정하고 즉각적이고 집중적인 개편을 약속했다.
실제 이런 뼈아픈 인정과 함께 펄어비스는 발 빠르게 UX 개선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달 23일부터 여러 차례 대규모 패치를 진행해 기본적인 이동에도 불편함과 피로를 가중시키던 달리기 버튼 연타 조작을 버튼 유지나 1회 클릭만으로도 유지되도록 완화했으며, 미니맵에 북쪽 고정 옵션을 추가해 미니맵의 직관성과 가시성을 개선했고, 각종 단축키 추가 등 사용자들의 페인 포인트를 집중적으로 덜어냈다.

이런 UX 개선의 효과는 극적이었다. 사용자의 과업 수행을 방해하던 인지적·물리적 UX 마찰이 줄어들자 사용자들의 몰입이 복구되기 시작했고, 이런 몰입을 기반으로 사용자가 초반 구간을 넘어 더 많은 콘텐츠들에 접근하고 탐색한 결과 게임에 대한 평가를 바꾸게 돼 스팀 유저 평가는 우상향 곡선을 그려 3일 기준 ‘대체로 긍정적’까지 도달했다. 현재는 즐길거리가 많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스팀 플랫폼 기준 동시 접속자 숫자는 27만명을 돌파하고, 판매량 역시 400만 장을 기록하는 등 흥행 가도에 다시 불을 지폈다.
이에 대해 허진영 펄어비스 CEO는 지난달 27일 주주총회에서 “유저들에게 불필요하게 시간을 소요시키는 부분은 제거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유저 편의성 개선을 개발팀 내에서 최우선 과제로 다루고 있다”며 “핵심 코어 유저뿐 아니라 더 많은 유저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판매 성과도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출시 초기 이어진 대규모 패치 방향성을 설명했다.
기술력만큼 중요한 사용성

이처럼 붉은사막이 정식 출시 직후 겪은 혹평과 UX 개선 이후 이어진 지표 상승의 롤러코스터 현상은 게임 업계 전체에 UX와 사용자 중심 설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최신 사례가 됐다. 그래픽 비주얼이나 콘텐츠의 양, 오픈월드 환경의 구성 이전에 가장 근본적인 사용성을 간과하면 게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프로젝트 초기 단계부터 사용자 경험과 사용성을 고려한 개발 구조 및 검토 프로세스를 확립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여러 게임과 블록체인 프로젝트에서 플레이어의 행동과 심리 분석을 진행해온 UX 리서처 오스틴 발디(Austin Baldi)는 이번 사태를 두고 “직관적이지 않은 조작과 불합리한 시스템들은 QA 과정에서 놓친 ‘버그’가 아니라, 전체 개발 과정을 통과해 수백만 명에게 출시된 후 일주일 만에 철회된 ‘의도된 디자인 결정’이었다”고 지적하며, “이는 단순히 성공적인 패치가 아니라 아주 값비싼 대가를 치른 플레이 테스트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한 그는 이번 펄어비스의 <붉은사막> 출시 사례를 예시로 들며 “초기 단계의 꼼꼼한 플레이 테스트와 UX 리서치를 생략한 대가로, 기업은 주가가 폭락하고 유저의 신뢰를 잃는 등 훨씬 더 거대한 비용을 치르게 됐다”며 최근 업계에 자리 잡은 ‘사용성 같은 건 출시 후 고치면 된다’는 식의 안일한 전략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가 <붉은사막>의 사례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명확하다. 아무리 작은 시스템과 버튼, UI를 설계할 때조차 “사용성에 부합하는가?”를 끊임없이 묻고 테스트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발이 끝난 뒤에 껍데기만 덧씌우는 사후 수습 방식에서 벗어나, 초기 뼈대를 세우는 단계부터 플레이어의 인지적 한계와 편의성을 정밀하게 고려하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야말로 대작 게임이 갖춰야 할 최우선의 경쟁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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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김동욱 (jkkims@di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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