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도 아름다울 수 있다” 유병욱 TBWA코리아 ECD 인터뷰
‘아름다운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오래도록 생각나는 광고를 만들다

당신의 일은 매력적인가요?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분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 “일은 일일 뿐이지”라고 생각하는 분도 많을 것이고요. 그러나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단언하는 이가 있습니다.

올해로 23년.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어느덧 CD(Creative Director)로 10년 넘게 일한 그는 현재 TBWA코리아에서 ECD(Executive Creative Director)로 근무하고 있는 유병욱 디렉터입니다. 도서 ‘생각의 기쁨’의 저자, 작가 유병욱으로 친숙한 분도 있을 겁니다.

최근 국내 야구팬의 마음을 울린 ‘컴투스 프로야구 2024’ 광고가 바로 유 디렉터의 손을 거친 작품인데요. 1분 남짓 한 영상 속 “세상에 재밌는 게 더 많아졌다 해도 야구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없어”라는 한 줄 카피는 수많은 야구팬의 야구에 대한 애정을 자극해 공감과 감동을 일으켰습니다. 한 야구팬은 댓글로 “단순한 게임 광고가 아니라 야구에 울고 웃는 팬을 위한 헌사에 가깝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죠.
컴투스 프로야구 외에도 유 디렉터의 손을 거친 작품은 많습니다. 아시아나항공, 우리금융그룹, 시디즈 등 그와 함께한 기업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죠. 그만큼 바쁘기도 합니다. 7월 어느 날 TBWA코리아 사옥에서 만났을 때도 유 디렉터는 “방금 회의 하나를 끝내고 왔는데, 인터뷰가 끝나는 대로 또 다른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20년을 넘게 바쁘게 일해도 유 디렉터에게 광고란 언제나 매력적인 일인데요. 오랜 시간을 마주해도 광고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 그가 이야기하는 광고란 무엇인가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가장 강력한 대중 문화
유 디렉터는 광고를 “대중 문화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정의합니다. 광고만큼 오랜 시간 동안 대중과 높은 접점을 유지하며 활약한 미디어는 많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다만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고는 곧잘 시시한 것으로 치부되고는 합니다. 광고의 내용에 몰입하기 보다는 광고가 송출되는 30초, 1분 남짓한 시간을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빨리 넘기고 싶은 시간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죠.
유 디렉터가 가장 지양하는 건 이처럼 ‘무의미한 시간으로 소비되는 광고’입니다. 그는 “광고는 분명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훌륭한 콘텐츠로 작용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좋은 광고를 만들기만 한다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직관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장 강력한 대중 문화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그에게 좋은 광고란
그렇다면 좋은 광고란 무엇일까요? 유 디렉터는 이를 한 문장으로 정의합니다.
좋은 광고라는 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광고라고 생각해요
유 디렉터가 설명하는 좋은 광고란 목표로 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콘텐츠입니다.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길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좋은 광고의 조건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광고의 최상위 목표는 목적에 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습니다. 광고의 목적이 브랜드에 대한 오해를 해결하는 거라면 광고를 통해 소비자가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재고했다면 성공한 것이고, 100개의 물건을 파는 게 목표라면 광고를 통해 100개가 넘는 물건이 팔렸다면 성공이라는 것이죠.
유 디렉터는 이를 위해 필요한 건 ‘능동적인 태도’라고 강조합니다. 그가 늘 문제 해결이라는 핵심에 다가가기 위해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는 까닭이죠.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마냥 수동적으로 읊지 않아요. 더 좋은 방향성이 떠오르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죠

한 사람의 인생 속에 아시아나항공의 연혁을 녹여낸 ‘누군가의 세상이 타고 있다’가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해당 콘텐츠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짧은 시간 안에 인생의 흐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팀원 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고, “우리의 인생이 끊기지 않는 것처럼 광고 속 36년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광고 감독의 해석에 착안해 ‘원테이크’로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30초 안팎의 해당 장면을 얻기 위해 세팅에만 꼬박 하루가 걸렸고, 촬영에도 4시간 가량이 소요됐습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유 디렉터는 “그럴만한 보람이 있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실제 원테이크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카메라워크를 따라 사람들은 한 사람의 인생과 아시아나항공의 연대기를 스펀지처럼 흡수할 수 있었고, “눈물이 났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습니다. 1분 가량의 영상을 보며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한 사람이 영상의 주체인 브랜드에 대해 얼마나 좋은 인식을 가지게 될지는 따로 부연할 필요가 없겠죠.
아름다운 문제 해결

앞서 아시아나항공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작업에 대한 유 디렉터의 능동적인 태도는 광고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과 탐구로 이어집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아름다운 문제 해결’이라 명명하는데요. 요컨대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그 과정 안에 콘텐츠로써의 깊이와 가치를 함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디테일의 시대가 종말한다는 말을 거부합니다. 과잉의 시대일 수록 오히려 작은 디테일이 무게를 가진다고 생각하니까요
이는 그가 그 동안 무수한 광고를 제작하며 밀도와 디테일이라는 키워드를 한 순간도 놓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러 편 제작된 아시아나항공의 광고에서도 영상 속의 오브제, 색감, 나아가 음악까지도 공들이지 않은 게 없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날도 있겠지. 하지만 그 어떤 하늘도 너를 더 크고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 거야’라는 카피 또한 유학의 좌절, 프로젝트 성공, 아이와 함께하는 행복 등 인생의 굴곡을 항공사와 연결되는 키워드인 ‘하늘’과 결부한 그의 고민이 녹아든 요소입니다.
핵심을 문제 해결에 놓되 방식에 있어 다양한 방법을 추구한다면, 아름다움은 어디에서든 나타날 수 있는 거예요

유 디렉터는 공들인 디테일이 모여 형성된 밀도가 사람들로 하여금 광고를 시시한 것이 아닌 시간이 아깝지 않은, ‘가치를 지닌 콘텐츠’로 느끼게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나 하나 개별적인 디테일은 미처 모를 수 있어도 디테일이 모여 만들어진 밀도와 색깔 등 콘텐츠의 특징은 분명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카피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그의 지론 또한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소설과 시를 좋아하는 것처럼 “잘 쓴 카피 또한 그 문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광고 속 카피에 반했다면 그 광고가 좋은 콘텐츠로 느껴지는 건 당연하고요.
만연한 자극 사이, 밀도가 가지는 힘
그렇다고 유 디렉터가 숏폼 등 재미에 중점을 둔 소위 ‘스낵형 콘텐츠’를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스낵형 콘텐츠에 대한 시장의 선호도 또한 분명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다양한 콘텐츠 형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유 디렉터는 “밀도 있는 콘텐츠를 스낵형 콘텐츠가 이길 수는 없다”고 강조합니다. 요컨대 단기적인 매출 등 짧은 기간 내 스낵형 콘텐츠의 효과는 분명하지만, 브랜딩 등 장기적으로 기업 및 브랜드의 톤앤매너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는 밀도 있는 콘텐츠가 분명한 강점을 가진다는 겁니다.
숏폼 등 스낵형 콘텐츠는 메가 히트가 아니면 기억하지 못해요. 짧다고 마냥 쉬운 것도 아니고요. 일부러 재미를 만든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아울러 스낵형 콘텐츠처럼 짧고 재미 위주의 콘텐츠라고해서 만들기 쉽다는 것 또한 흔한 오해라고 지적합니다. 단순히 하기 쉬워서 스낵형 콘텐츠를 하기보다는 스낵형 콘텐츠를 진행하더라도 명확한 목표를 두고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죠. 유 디렉터가 권장하는 방향성 도 스낵형 콘텐츠와 밀도 있는 콘텐츠 사이에 ‘밸런스’를 유지하는 겁니다.

예로 앞서 살펴본 컴투스 프로야구 2024 콘텐츠 또한 밀도 있는 콘텐츠를 중심에 두고 있지만, 각 구단의 팬들을 위한 재밌고 가벼운 콘텐츠도 어느 정도 비중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시장의 변화’ 또한 단순히 스낵형 콘텐츠의 인기에 올라타 효과를 보고자 하는 관점을 재고할 이유입니다. 현 시장에서 스낵형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지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점차 휘발되는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피로감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죠.
재밌지만 기억에는 남지 않고, 어느새 휘발되는 무수한 콘텐츠를 겪으며 점차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사라져버리는 광고가 아닌, 뒤돌면 생각나 광고를 시청한 시간이 의미를 가지는 정성 들인 콘텐츠로 다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극적인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매일 먹으면 어느 날 집 밥이 먹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밀도 있는 콘텐츠는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분명 다시 생각나고,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 겁니다
더욱 많은 재능이 광고 업계에 찾아오길
“오히려 시장에 밀도 있는 콘텐츠가 줄어 우리 콘텐츠가 가진 경쟁력이 올라가는 것 같기도 하다. 경쟁해야 할 콘텐츠가 줄어드는 것 아닌가?”라며 웃는 유 디렉터는 단순히 빨리 지나가고 싶은 것이 아닌, 콘텐츠로써 의미를 가진 광고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펜을 잡고 작업합니다.

광고 산업의 엔진은 사람이에요. 재능 있는 후배들이 더 많이 이 필드를 찾아올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은 바람입니다
한 사람의 능력을 ‘재능 곱하기 시간의 제곱’이라 정의하는 유 디렉터는 끊임없이 탐구하고, 작업합니다. ‘아름다운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 또한 밀도 있는 콘텐츠가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나아가 묵묵히 만들어간 정성들인 작업이 더욱 많은 재능을 광고 산업으로 이끄는 마중물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 또한 확고합니다.
인터뷰 말미에 유 디렉터는 처음 자신이 참여했던 광고가 미디어에 송출되던 때를 회고했습니다. 그때의 기쁨을 전하며 그는 “더 많은 후배가 이런 기쁨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마지막으로 빼곡한 메모가 적힌 수첩을 들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서두에 던진 “당신은 매력적인 일을 하고 있나요?”라는 물음을 기억하나요? 유 디렉터의 답은 “그렇다”였습니다. 많은 서술이 있었지만 사실 그가 계속 좋은 광고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이 짧은 문답 안에 이미 모두 담겨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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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이민호 (treewords@ditoday.com)
- 섬네일손 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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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지금 직업이 매력적이라는 유 ECD님 말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기자님,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이번 인터뷰가 제 일을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가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기사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