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수진님의 아티클 더 보기

마케팅

네이버를 떠난 이유(1)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담보로 대출했다

한때 오늘을 담보 삼아 막연히 내일에 있을(수도 있는) 행복을 대출해 살았던 적이 있다. 당시 행복은 항상 ‘내일’에 머물러 있었고 ‘오늘’은 늘 찬밥신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부터 집이나 학교에서 하라는 것만 열심히 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배웠기에, 그리고 그들(나를 키워주고 가르쳐주는 분들)이 나를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기에 진심을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했다. 크게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그들이 제시하는 미션을 충실하게 수행하며 성장했다. 그렇게 최선의 결과는 아니었지만 썩 나쁘지 않은 결과를 매번 달성했다. 그들은 흡족하게 만족하진 않았지만 아쉬움을 애써 감추며 다음에는 더 잘하기를 기대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한 오늘담보대출

그렇게 묵묵히 살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 또는 하면 행복한 것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것 중에서 그나마 택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 나만 이랬겠는가? 친구들이 그랬고, 지금도 많은 학생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해서 혼나지 않을 정도로 했고, 좋은 대학을 가라고 해서 적당히 욕먹지 않을 정도로 갔다. 좋은 직장에 가라고 해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회사에 입사도 했다. 원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노랫말을 쓰고 싶었다. 대학은 미대를 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선택지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들이 제시한 범위 안에 없었다. 그래도 ‘오늘을 열심히 살면 내일 있을 행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가르침에 따라 제법 성실하게 수행했고, 그 결과도 꽤 나쁘지 않다고 자위했다.

결국, 다시 또

결과적으로 연속된 선택들은 미치거나 미친 척하지 못한 나의 우유부단함이 가져온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서른이 가까워졌을 때 그 우유부단함을 극복한 ‘철저히 이기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 다시 말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시작했다(처음만 힘들지, 한번 하니까 그 이기적인 선택을 계속하게 되더라).

첫 번째 선택은 바로 대학원이다. 2010년 겨울이었다. 방송국 입사에 실패하고 방황을 하다가 우연히 작은 광고대행사에서 인턴을 하게 됐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채 애송이는 일을 잘하지 못했다. 같이 들어온 동기들은 광고에 대한 열정이나 직업으로서의 방향성이 명확한데 비해 나는 그저 쥐뿔 없는 애송이였다. 그러다 옆자리 동기 녀석이 대학원 원서를 쓰고 있는 걸 봤다. 솔직히 도망가고 싶었고 충동적으로 팔자에도 없었던 대학원 원서를 이틀 만에 접수했다.

그런데 덜컥 합격했다. 하늘이 봐도 내겐 광고장이로서 영 아니었나 보다. 그리고 어머니께 부탁을 빙자한 통보를 했다. 학비가 부족했으니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주위를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그렇게 2년을 다니다보니 다시 디자인 공부를 하고 싶었다. 허나 애석하게도 당시는 공부를 더 이어갈 수 없는 환경이었다. 가장이 되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대단한 결기가 있는 캐릭터는 아니어서 다시 또 ‘그들이 원하는 것 중에서 그나마 내가 택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결국 내 선택은 다시 취직이었다.

내가 가장 다니고 싶은 회사

막상 취직을 준비해 보니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가방끈만 길어진 백수였다. 그때부터는 내가 가장 가고 싶은 회사는 그냥, 단지, 저스트… ‘가장 먼저 뽑아주는 회사’였다. 그게 편찮으신 아버지와 고생해 온 어머니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사실 이런 결정에 이미 익숙한 나였기에 늘 그랬던 것처럼 디자인 공부는 포기했다. 그때부터 토익, 오픽, 자격증 등등 취업 준비를 위해 남들이 하는 건 다했다.

다행히 오래 걸리지 않아 취직할 수 있었고, 그곳이 바로 네이버였다. 그때부터 홍보실 막내 생활이 시작됐다. 나름 전공을 살린 일이긴 했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알아버린 터라 처음에는 마음을 잡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 입사하니 쏟아지는 일에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러야 했고 가족이라곤 이제 어머니뿐이었기에 어머니에 대한 책임감에 더 열심히 일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사치’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쓰다 보니 이거 너무 신파 같지만) 내 삶의 장르는 코믹활극이다. 괜히 코 찡해지지 않아도 된다. 

솔직히 입사 초반에는 좋았다. 생각해 보라. 당신이 아무리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입사한 회사가 ‘대학생이 취직하고 싶은 회사’에 항상 손꼽히는 곳이라면? 일단 주위에서 ‘우와~’해 주는 회사인데다가, 누구보다 어머니가 신이 나신 모습에 흐뭇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아들 잘 키웠다는 이야길 한다며 내 칭찬을 들을 때마다 전화를 주셨다. ‘이런 게 효도구나’ 싶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창피하지만, 당시엔 그 시선이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즐기기까지 했다.

게다가 당시 나는 오랜만에 들어온 신입이었기에 내 능력에 비해 선배들에게 예쁨을 많이 받았다. 특히 내게 엉덩이의 힘을 알려준 현 네이버 CCO인 채선주 부사장님은 이모처럼(?) 나를 챙겨줬다(덕분에 나는 망둥이처럼 뛰어다녔다). 인정받고 싶은 욕심에 더 미친 듯이 일했다. 또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도 ‘처음이라 그런 거겠지’하며 넘겼다. 군대처럼 버티다 보니 새로운 경험과 시야를 갖게 됐고, 게다가 업계에서 일 잘하는 선배들이 모여 있는 덕분에 일도 빨리 배울 수 있었다. 

셀프 믹서 덕분이었을까? 연봉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빨리 올랐고 꿈에 그리던 드림카도 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승진도 빨랐다. 과분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였을 텐데, 그땐 그런 걸 눈치챌 짬밥도 없었기에 마냥 신났었다. 가고자 했던 길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뿌듯했기에 오늘을 조금만 더 희생하면 내일엔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달콤한 현실적 조건들과 타인의 부러워하는 시선을 받으며 이렇게 살면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 누구나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갈증 하나쯤은 담고 산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믿었다. 그렇게 현재를 포기하고 내일의 행복을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주위에서 원하는 것 중에서 그나마 내가 택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직장생활을 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살거야…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 드림카, 괜찮은 연봉… 이런 것들이 행복이라고 여겼는데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바닥으로 끌고 갔다. 갈증이 나날이 심해져 갔다. 행복해지려고 선택했던 삶에 정작 행복은 없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희미해져 갔으며 아예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원래 직장생활이 다 그런 거지… 남들도 다 이렇게 살 거야… 원래 다 그래…’

그러던 어느 날, 삶의 궤적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계속)


그놈의 마케팅
저는 가장 세속적인 일을 하는 마케터입니다

저자. 신영웅
출판사. 넥서스BIZ

구매링크(클릭하시면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예스24.
교보문고.
인터파크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