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현실로 들어온 죽음의 앱, ‘기리고’로 본 몰입형 마케팅

시청자 과몰입 유발… 팬덤 구축·자발적 바이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리고> 포스(자료=넷플릭스)

“죽음을 대가로 소원을 이뤄주는 앱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리고>가 흥행가도를 달리며 K-호러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는 가운데 이색적인 마케팅이 함께 주목받고 있습니다. 작품 속 비극의 매개체인 ‘기리고 앱’을 실제 앱스토어에 출시한 건데요. 시청자들은 작품 감상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앱을 이용하며 공포의 여운을 즐기고 있습니다. 내 폰 안으로 들어온 공포, <기리고>가 선보인 몰입형(Immersive) 마케팅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난달 24일 공개된 <기리고>는 소원을 이뤄주는 의문의 앱 ‘기리고’를 다운받은 고등학생들이 소원의 대가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예고받으며 벌어지는 사투를 그린 영어덜트 호러 시리즈입니다. 누구나 쉽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이 주구(저주가 깃든 물건)가 되는 흥미로운 설정의 작품인데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하이틴 감성과 한국형 오컬트를 결합한 장르적 신선함에 국내외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전소영, 백선호, 강미나 등 신인배우들의 열연도 눈길을 사로잡았고요.

<기리고>에 대한 호평은 숫자로도 증명되는데요.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투둠(TUDUM)에 따르면, <기리고>는 공개 이후 2주 만에 글로벌 TOP 10 비영어권 쇼 부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국가별로는 한국, 일본,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 64개국에서 TOP 10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3일까지 시청수(누적 시청 시간을 총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도 750만 회를 기록했고요.

“타이머 안 멈춰”… ‘기리고 앱’ 과몰입한 사용자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등록된 ‘기리고 앱'(자료=구글 플레이스토어)

<기리고>의 섬뜩한 분위기는 스크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시청자가 단순 관람객에 머물지 않고 더 능동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다음 챕터를 마련한 건데요. 바로 작품 속 죽음의 도구 ‘기리고 앱’을 현실세계에 그대로 구현한 것입니다.

실제로 구글 플레이스토어, 애플 앱스토어 등 앱스토어에는 작품과 동일한 ‘기리고 앱’이 등록돼 있습니다. 검은 바탕에 합장한 손이 360도로 돌아가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I)도 똑같고요. 더 놀라운 점은 개발자 정보입니다. ‘Kwonsiwon’. 작품 안에서 기리고 앱을 개발하고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 된 인물 ‘권시원’의 이름이 개발자 명으로 적혀 있습니다. 디테일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구현해 몰입감을 더한 겁니다. “기리고는 당신의 간절한 순간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감성 소원 기록 앱”이라는 소개 문구도 왠지 으스스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사용해봤습니다. 앱을 열면 합장한 손이 돌아가는 초기 화면에서 스산한 BGM이 들리는데요. 화면을 클릭하니 셀프 카메라 모드로 전환됩니다. 여기서 소원을 말하고 녹화할 수 있습니다. 소원이 담긴 영상은 자동으로 휴대폰 갤러리에 저장되고요.

앱 자체의 기능은 단순하죠. 그런데 사용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입니다. 11일 기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카테고리 인기 앱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다운로드 횟수는 100만 회를 돌파했습니다. 등록된 사용자 리뷰는 5000개가 넘습니다. 또 앱스토어 리뷰 창은 과몰입한 사용자들의 ‘놀이터’로 변모했는데요. “앱이 지워지지 않고 눈이 가렵기 시작한다” “24시간 타이머가 멈추지 않는다” 등 작품 속 설정을 현실로 가져와 즐기는 유쾌한 리뷰가 다수입니다.

‘기리고 앱’ 사용자 리뷰(자료=구글 플레이스토어)

콘텐츠 수명 늘리는 ‘몰입형 마케팅’

<기리고> 세계관이 중심 소재이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앱’을 통해 현실로 확장되면서, 시청자들이 작품을 능동적으로 즐기고 재생산하게 된 건데요. 이처럼 콘텐츠의 세계관을 현실로 끌어와 소비자가 직접 체험함으로써 몰입을 유도하는 마케팅 전략을 ‘몰입형 마케팅’이라고 합니다.

몰입형 마케팅의 장점은 콘텐츠 IP의 생명력을 연장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소비자가 세계관을 경험하며 발생하는 유대감으로 팬덤이 강화되고, 이색적인 경험을 SNS나 커뮤니티 등에 공유해 자발적 바이럴이 이뤄지기 때문이죠. 기리고 앱이 콘텐츠 홍보 도구에서 하나의 놀이 문화로 번진 것도 이 맥락입니다.

이 때문에 몰입형 마케팅 시장 규모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데요. 포화된 미디어 환경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소비자의 관심을 더 효과적으로 사로잡기 위한 선택입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인 데이터브릿지 마켓 리서치(Data Bridge Market Research)의 ‘글로벌 몰입형 마케팅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몰입형 마케팅 시장은 지난해 72억 달러 규모에서 2032년 528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평균 28.3%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요.

특히 보고서는 “오늘날 소비자들은 단순히 시청하는 것을 넘어 더 심도 있고 상호작용적인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한다”고 짚었는데요. 또 “몰입형 마케팅은 소비자를 더 가까이 끌어들여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하고,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한 이벤트로 지속적인 참여를 유도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가상-현실 경계 허무는 흥행공식

사실 ‘기리고 앱’과 같은 몰입형 마케팅 전략은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흥행 공식으로 검증돼 왔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 세계에서 1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기록한 메가 흥행작 <다크나이트(2008)>의 ‘Why So Serious?’ 캠페인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다크나이트> 하비 덴트 선거 홈페이지(자료=ibelieveinharveydent.com 갈무리)
하비 덴트 웹사이트가 조커의 공격으로 오염된 모습(자료=whysoseriousredux.com 갈무리)

제작진은 개봉 15개월 전 고담시 지방검사 후보인 하비 덴트의 선거 홈페이지를 개설해 실제 유권자 운동을 재현하는 한편, 전국의 실제 만화가게에 하비 덴트 웹사이트 주소가 적힌 ‘조커 카드’를 숨겨둬 대중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단서를 추적하도록 유도했습니다. 대중은 가상의 악당이 자신의 일상 공간에 다녀갔다는 충격을 받으며, 조커의 테러 위협을 받는 고담 시민으로 완벽히 동화됐죠.

이후 조커가 하비 덴트 웹사이트를 해킹하고, 영화의 예고편을 공개하는 과정 등도 유저들의 참여로 전개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스크린 밖에서 시작된 조커의 이야기에 70여 개 국가서 1100만명 이상이 참여하며, <다크나이트>의 글로벌 흥행과 과몰입을 이끄는 동력으로 작동했죠. 이 마케팅은 세계적인 광고제 ‘칸 라이언즈’에서 사이버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지금까지도 최고의 영화 마케팅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해리포터> 테마파크 방문객이 마법지팡이를 고르고 있다(사진=유니버셜 스튜디오 재팬 홈페이지 갈무리)

유니버셜 스튜디오 인기 상품인 <해리포터> 테마파크(The Wizarding World of Harry Potter)의 ‘마법지팡이’ 역시 가상의 세계관을 현실과 결합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기념품 수준을 넘어 방문객을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만드는 마케팅의 핵심 도구로 기능하는데요.

지팡이를 구매하는 과정부터 몰입도를 끌어올립니다. ‘올리벤더스의 가게’에서 지팡이가 마법사를 선택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한 거죠. 이후 방문객들은 지팡이 끝의 센서와 테마파크 곳곳에 설치된 적외선 카메라 시스템을 활용해 직접 주문을 외우며 물건을 움직이거나 물을 뿜게 하는 경험을 합니다. 방문객들에게 ‘지팡이’를 매개로 호그와트 마법사라는 정체성을 부여해, 그들로 하여금 <해리포터> 세계관에 더 깊숙이 참여하며 소비할 수 있도록 이끌어낸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리고>를 비롯해 <다크나이트>와 <해리포터> 테마파크 등 여러 콘텐츠의 몰입형 마케팅 사례를 살펴봤는데요. 모두 가상의 세계관을 현실과 이어 소비자들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이뤄냈습니다. 앱, 조커 카드, 마법지팡이까지 그 매개체는 전부 달랐지만요. 결과적으로 세계관을 직접 경험한 소비자들이 콘텐츠와 유대감을 형성해 고정 팬덤을 구축하고, 나아가 일상 곳곳에 자발적으로 바이럴하는 개인 마케터 역할을 수행하도록 이끄는 고도의 전략이었습니다.

이 사례들이 시장에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콘텐츠가 쏟아지는 미디어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주목받기 위해선 소비자를 소파에서 일으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을 스크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구성원으로 끌어들일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마케팅 전략은 원천 콘텐츠의 완성도와 화제성이 높을수록 더 효과를 발휘합니다. 흥미진진한 꿈일수록 깨기 싫은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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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최석영 (csyeong720@di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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