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크리에이티브를 만든다. 이노레드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은 문화에 있다고 설명하는 이노레드. 이노레드의 일상에 담긴 문화를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사진. 이노레드 제공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은 문화에 있다고 설명하는 이노레드. 박현우 이노레드 대표는 인터뷰 내내 문화의 중요성을 반복 강조했다. 하지만 이노레드가 말하는 문화란, 그럴싸해 보이는 복지 제도 혹은 사내 이벤트 등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보다는 10년이 넘는 기간 꾸준히 혁신해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화시킨 그들의 일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노레드의 일상에 담긴 문화를 정리해봤다.
이노레드엔 없다
#1. 야근과 밤샘으로 얻은 다크써클
많은 사람이 이노레드를 말할 때 가장 먼저 꺼내 드는 키워드가 ‘경쟁 PT 없는 회사’, ‘야근 없는 회사’다. ‘이노레드에는 단 한 건의 경쟁 PT도, 단 한 번의 야근도 없다’라는 말이 물론 적절하지는 않다. 다만, 매년 진행하는 약 50건의 전체 프로젝트 중 경쟁 PT 참여 건은 두 건 정도로 비율상 5%가 채 되지 않고, 지난해 기준 평균 퇴근시간이 오후 5시 50분(8:10~17:00 근무)을 기록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경쟁 PT로 인한 야근을 줄이기 위해 구조적 혁신을 이뤄냈고, 실제 그로 인한 성과들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야근이 줄어들자 직원들은 퇴근 후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졌고, 기존에 데스크 리서치를 통해서만 얻던 소비자 인사이트를 각자의 삶 속 라이프 리서치를 통해 얻을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업무 집중과 직결되는 체력 역시 증진돼 실제 프로젝트 진행 시 나오는 크리에이티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노레드의 ‘Less work, More creativity!’ 실천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2. “저…대표님, 드릴 말씀이…”
사무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기억 중 하나는 대표의 별도 공간, 흔히 말하는 대표실이 없다는 것이다. 회의실 옆 어느 부서의 책상 위에 붙어있는 ‘애런’이라는 이름표를 보고 나서야 ‘여기가 대표님 자리구나’ 알 수 있었다.
이노레드에서는 직급이나 직책이 아닌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고, 여기에 대표 혹은 임원이라고 예외는 없다. 그래서 이노레드에서는 “대표님”이라는 말을 쉬이 들을 수 없다고.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됨을 알고 있는 것처럼, 호칭 하나에도 서로를 향한 존중이 묻어 있었다.
혹자는 영어 이름 하나 부르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 할지도 모르겠으나 사실 이는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동력이 될 것이다. 최소한 눈치 보며 겨우 내뱉는 “저…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라는 말 대신, “애런, 이거 어떻게 생각하세요?”가 훨씬 자연스러운 이곳에서는 말이다.
#3. ‘내가 제일 잘 나가’ 개인 플레이
팀플레이는 박현우 대표가 꼽은 이노레드의 핵심 키워드이기도 하다. 물론 이노레드 내에도 소위 말하는 스타 플레이어가 존재한다. 하지만 돋보이는 개인보다는 서로를 섬기는 팀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 설사 부족함이 있더라도 상대가 이야기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내어주고, 그것을 잘 엮어내 하나의 더 좋은 아이디어로 발전시키는 것이야 말로 이노레드 정신! 이는 이노레드가 국내외 유수 어워드에 출품하는 독특한 방식에서도 드러나는데, 모든 작품 크레딧에는 CD 누구, 카피라이터 누구, 아트디렉터 누구라는 표기 대신 ‘ALL INNORED ASSOCIATES’가 기재된다. 이노레드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탄생된 크리에이티브는 몇몇 개인의 것도, 대표의 것도 아닌 이노레드 전체 식구들의 것이라는 철학이다. 연말이 되면 내부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시상하는 영역 또한 업무 성취나 성과가 아닌 ‘베스트 팀플레이어’ 상이다.
이노레드엔 있다
#1. 데스밸리를 건너갈 체력
데스밸리(Death Valley)란 신생 기업이 R&D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금 부족 등으로 사업화에 실패하는 등 고난을 겪는 기간을 뜻하는 용어다. 박현우 대표는 회사의 문화에도 데스밸리 구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노레드만의 여러 문화도 도입 초기 이후 정착까지 일정 적응 기간이 필요했는데, 앞서 살펴본 영어 이름 사용만해도 전 직원이 익숙해지기까지 꼬박 2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이 시기에 “이거 꼭 해야 되나요?”, “성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죠?” 등의 말이 꼬리처럼 따라붙었는데, 적극적인 리스크 테이킹으로 이를 극복하고 나니 이후에는 효과가 마치 복리처럼 계속 상승 곡선을 그렸고 마침내 완전한 체질 개선을 이룰 수 있었다.
곰곰이 따져보니, 주위의 우려에도 경쟁 PT를 없애고 야근을 줄일 수 있었던 것과 그것이 다시 크리에이티브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이 선순환 시스템 역시도 어쩌면 그 데스밸리를 극복하고 건널 수 있는 이노레드만의 체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2. 직원들의 웃음
그렇다면 이노레드의 이러한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인터뷰를 위해 방문했던 사무실의 분위기에서 그 답을 얻었는데, 바로 직원들의 웃음이다. 철저한 집중 근무제를 시행해 자신의 크리에이티브 과제를 해결해야하는 오전과 달리, 오후에는 직원들 간의 스몰토크가 아주 활발하게 일어나며, 즐거운 분위기 아래 업무가 진행되고 있었다.
실제로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회의실 바깥으로부터 끊임없이 웃음소리가 들려왔는데, 첫 방문이라 그런지 자유로운 분위기에 조금은 놀라 “평상시에도 정말 이런 거죠?”라고 묻자, 박현우 대표는 웃으며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어떻게 집중해서 일만 할 수 있겠어요. 메인 아이디어와 핵심 업무는 오전 두세 시간 안에 마치고, 졸리고 지겨운 오후엔 좀 더 자유롭게 일하는 거죠.”라며 이노레드의 오후 풍경을 설명했다.
#3. 결국, 문화가 만든 크리에이티브
이노레드의 일상 속 문화들은 한 데 모여 다시 하나의 크리에이티브로 발현되고 있으며, 이러한 결실은 국내외 유수 광고제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사무실 곳곳에서 지금까지 수상했던 트로피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대한민국광고대상 8년 연속 본상 수상 외에도 칸 라이언즈, 뉴욕 페스티벌, 클리오 어워드, 애드페스트 등 해외 주요 광고제에서 매년 빠짐없이 수상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5년도에는 칸 라이언즈 현지 초대를 받아 이노레드 단독 포럼도 진행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에는 영국 캠페인(campaign)지에서 창간 50주년 특별 에디션으로 발간한 ‘50 ASIAN STORIES’에 ‘INNORED REDEFINES CLIENT-AGENCY RELATIONSHIP’이라는 제목으로 단일 광고 에이전시로는 유일하게 이노레드의 기사가 실려 회사의 크리에이티브와 문화가 전세계에 소개되기도 했다. 묵묵히 자신들의 문화를 구축해온 이노레드의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지금까지 이노레드의 문화를 살펴봤다. 기업 리뷰 사이트 사내 문화 평가 5위, 10% 미만의 낮은 이직률, 평균 퇴근 초과 시간 50분, 높은 비즈니스 리오더 레이트. 처음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성과의 비결이 궁금했더랬다. 하지만 그 비결은 대단하고 거창한 그 무언가가 아니라 오늘도 이노레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주 작고 소소한 일상에 있음을 배웠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끝으로 박현우 대표에게 마지막 인사말을 청했다.
MINI INTERVIEW
박현우 이노레드 대표
Contribution, 우리말로 공헌이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공헌을 할 것인가, 잠시 멈춰 함께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강원도 산불 사고가 났을 때 성금 후원은 물론 아주 기민하게 대응한 브랜드들이 있죠. 우리 클라이언트 중 쏘카는 강원도민들이 무료로 차량을 이용하도록 지원했고 동서식품과 매일유업, 빙그레는 이재민 대피소에 자사 음료 제품을 후원했습니다. 또 에어비앤비는 피해 호스트와 침체된 강원도 관광업을 위해 강원도 관광 홍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노레드의 구성원 혹은 광고업계의 전문가, 앞으로 광고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가 몸담고 있는 커뮤니티를 위해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 노력에는 좋은 클라이언트 찾는 것도 포함될 것입니다. 내 가족에게 추천할 수 있는 브랜드를 선택하고, 그 유용함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에 대한 공헌 의식,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회사 내에서도 마찬가지겠죠.
회사의 문화 역시 개개인의 공헌이 모여 함께 만들어집니다. 오늘의 이노레드가 저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공헌 덕분에 만들어졌듯이 말입니다. 그것이 사회이든 혹은 회사이든, 앞으로 어떤 광고를 통해 무슨 공헌을 할 것인지 함께 고민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