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영원히 떠났던’ 너를 만났다
기술, 기억을 탐구하다
그리운 사람이 있습니다. 한 번쯤 만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렵습니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지만 쉽지 않습니다. 최근 이런 그리움을 IT 기술로 재현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당신이 오래도록 보고 싶어 했던, 영원히 곁을 떠났던 사람이 지금 내 눈 앞에 나타난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신가요? 믿을 수 있을까요?
(왼쪽부터) 지이, 기자, 터틀맨, 금비
글. 김관식 에디터(seoulpol@wirelink.co.kr)
자료협조. 엠넷(Mnet), MBC
12년만에 완전체 된 거북이
거북이, 그러니까 터틀맨(1970~2008, 임성훈)을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1월, 신사동 어느 지하 스튜디오였습니다. 원고 마감을 앞두고 급히 후배의 손을 빌려 마침내 인터뷰가 성사됐지요. 특히 저는 발랄한 멜로디로, 한 번 들으면 귀에 착착 감기는 ‘비행기’를 즐겨 듣던 터였습니다.
거북이 대표곡하면 사계, 왜 이래, 빙고 등이 있지만 저는 ‘파란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가겠죠~ 어려서 꿈꾸었던 비행기 타고~’라는 가사의 ‘비행기’가 좋았습니다. 어렸을 적 내 키작은 머리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올려다보며 한번 타고 싶었던 기억, 누구나 한 번쯤은 있겠지요.
이 노래 후렴 멜로디는 터틀맨이 잠시 몸이 좋지 않아 어느 병실에 입원했을 당시 꿈에서 들었던 멜로디였고, 아침에 잠이 깨자마자 그는 30분 만에 뚝딱 이 곡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3개월여가 흘렀을까요. 한참 마감 중에 믿지 못할 뉴스를 보게 됐습니다. 터틀맨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였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음의 굵은 목소리처럼 그는 인터뷰 내내 건강해 보였고, 대화 중간중간에도 동생들(금비, 지이)을 깍듯이 챙겼던 그가 이렇게 홀연히 세상을 떠나다니요. 그가 남겼던 인터뷰 녹취 파일도 지우지 못한 채 그대로 있고, 그때 함께 찍었던 기념사진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가 이 세상에 없다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 저는 한 번씩 제 페이스북에 그에게 감사해 하며 한 번씩 글을 남기고, 그의 곡을 공유합니다. 그가 떠난 건 슬픈 일인데, 그의 노래를 들으면 하루 종일 무겁고 짜증 났던 일도 잠시 잊은 채 즐겁고 신이 났으니까요.
시간이 흘렀습니다. 거북이, 그리고 터틀맨이 돌아왔답니다. ‘무슨 일이지?’ 생각해 자료를 좀 찾아보니 국내 케이블 음악채널에서 AI(인공지능) 음성 복원기술과 AR(증강현실)로 무대 위 그의 모습을 되살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습니다. 무대가 시작되고 터틀맨이 등장하자 지이와 금비는 눈물을 참는 것이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오빠와 함께 오랜만에 무대 위에 섰는데, 눈물이 앞을 가리도록 할 수는 없었겠지요. 비록 만질 수 없지만 들을 수 있었고, 체온은 느낄 수 없었지만 우리의 눈에는 확연히 보였습니다. 현실이었죠. 무대 앞에 자리한 그의 형과 어머니도 12년이란 시간 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마, 반가움의 눈물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왜 이 프로젝트에 주목한 것일까요?
소중했던 가족, 지인이 세상을 떠나면 우리는 옛 녹화해 뒀던 영상이나 사진을 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나면 이상하리만큼 슬픔이 먼저 앞섭니다. 그리워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 앞에 재생된 거북이 완전체를 보니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앞섭니다.
제작진은 12년 만에 이뤄진 거북이 무대를 위해 AI 음성 복원기술을 적용했다고 합니다. 이 작업도 상당한 기술과 시간이 소요되는 부분입니다. 터틀맨의 목소리를 충분히 분석하고 그 데이터로 AI 훈련 과정을 거친 후 마지막으로 새로운 노래 반주음원(MR)에 AI 음원을 입히는 식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페이스 에디팅 기술로 터틀맨의 모습까지 AR로 완벽히 재현했습니다. 그의 과거 사진과 영상을 토대로 얼굴을 AI로 최적화한 것이죠. 많이 잊혀진 것이 아니라 그만큼 더 그리한 것이고, 오히려 이제야 그리움을 조금 내려 놓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터틀맨은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로했습니다.
“그냥 저희 노래를 듣고, 여러분이 즐겁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하늘의 별이 된 딸을 만나다
실은 얼마 전에도 하나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적이 있습니다. 제 딸아이 유튜브를 보고 나서 어느 알고리즘에 시선을 빼앗겼지요. 한 어린아이의 3D 그래픽과 실제 사진이 좌우로 배치된 썸네일의 영상이었습니다. ‘뭐지?’하며 영상을 시청했지요.
“준비된 것 같으세요?”(제작진)
“네…”(나연이 엄마)
영상 속 나연이 엄마는 이렇게 대답하자마자 위아래 입술을 질끈 오므렸습니다. 곧 검정색의 무거운 HMD(VR 디스플레이)를 머리에 낀 채 적막한 스튜디오를 두리번두리번거렸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나연이가 “엄마”하며 나타나자, 나연이 엄마는 참았던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렇게 꿈에서라도, 단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던 딸아이였으니까요. 커다란 HMD 사이로 눈물이 거침없이 새어 나왔습니다. 나연이 엄마는 잡히지도 않는 딸을 안으려고 애썼고, 아이는 그 나이 대의 아이답게 천친난만하게 엄마에게 이런 저런 질문도 하며 감정에 복받쳐 잠시 망설이던 엄마의 마음을 풀어줍니다.
내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이렇게 해서라도 영원히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딸아이를 한 번이라도 만나고 싶지 않았을까? 마지막 인사라도 제대로 하고 보내면 마음이라도 조금 더 편하지 않을까?
나연이와 만남 후 그는 “잠시였지만 나를 웃으면서 ‘엄마’라고 불러주는 나연이와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늘 꿈만 꾸던 것을 이룬 것 같다”며 “나연이를 그리워하며 마음 아파하기보다 이제는 힘 내서 살아갈게”라며 웃어보였습니다.
제작진에 따르면 나연이와 엄마의 만남은 ‘기술적인 도전’ 동시에 ‘기억’ 대한 탐구였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져만 가는 나연이를 떠올리기 위해 그때마다 사진과 영상을 들여다보는 그를 위해 그 기억을 불러내 가상현실 속에서 반영하기로 했지요. 누군가, 그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기록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사소하고도 따뜻한 기술의 오늘을 되짚어보며 우리의 인생과 기억, 추억, 가족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영상을 시청한 후 이런 생각이 강하게 뇌리에 박혔습니다. 빅데이터, AI, 증강현실, 가상현실 등 신기술은 이런 곳에도 비중 있게 쓰여야 한다고요. 기술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과 결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놀랐고, 어떻게 보면 더 아플 수 있던 기억을 끄집어내 아름답게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았으니까요.
그리움은 살아 있는 자의 몫이라고 합니다. 기술은 그 그리움의 응어리를 차분히 정리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럼으로써 그 상실과 부재의 공간을 우리 스스로 다시 딛고 일어서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살아 있는 몫이라는 것을 귀띔합니다. VR이 나연이 엄마와 가족에게 새로운 추억을 심어 주었듯이 말입니다. 기술에 감성을 덧씌우니 감동이 됐고, 기적이 됐습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기회로 기술일지라도 얼마든지 사람 마음에 녹아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제게는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기술로 작은 위로를 받습니다. 좋은 꿈을 꾼 듯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