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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시를 그리고 시인은 그림을 쓰네

▲브로슈어 이미지. MMCA 공식 웹사이트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을까. 일제강점기는 많은 아픔을 남겼지만, 반대로 아픔 속에서 피어난 예술이라는 꽃이 있었던 것 같다. 암흑과도 같은 시기 속에서 서로 연대하고 응원하며 ‘시대의 전위’를 꿈꿨던 문인과 화가의 이야기,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다.

글·사진. 김수진 기자 soo@ditoday.com

2021. 02. 04 ~ 2021. 05. 30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제 1전시실 전위와 융합

▲구본웅, 여인

제 1전시실부터 제 4전시실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1910년 국권 강탈 이후 1940년대까지, 아픈 시기 속 문인이자 화가였던 문예인들의 교류와 연대를 보여준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작가는 우리나라 대표 근대 작가인 이상과 서양화가 구본웅이다. 구본웅은 이상과 동네에서 같이 나고 자란, 막역한 친구였다. 그는 ‘한국 최초 야수파 화가’로 불기리도 했는데, ‘여인’이라는 작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강렬한 색채와 거친 붓질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전시실 한 켠엔 삽화가 이승만이 그린 ‘이상과 구본웅’이 있다. ‘흰 얼굴, 까치집 머리, 털북숭이 수염에 흰 구두를 신은 이상과 작은 키에 질질 끌리는 인버네스 외투를 입은 구본웅의 기묘한 조화가 곡마단 행차에 비유된 삽화’라는 설명이 하단에 위치해있다. 또 그의 작품 ‘친구의 초상’은 이상을 그린 것이라 한다. 얼굴에 사용한 붉은 색, 담배를 물고 어딘가 노려보는 듯한 눈빛이 시대의 분위기를 전하는 것 같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주인공이 유명한 문학인들이 매일 밤 모였던 장소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문학의 황금기로 불리는 1920년대로 떠나 관람객들은 ‘유명한 문인들이 살아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이상이 1933년에 종로에 차린 제비다방 역시 이와 비슷한 공간이다. 만약 제비다방으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 상상하며 제 1전시실을 빠져나왔다.

제 2전시실 지상의 미술관

도서관처럼 꾸며놓은 제 2전시실은 1920~40년대 인쇄 미술의 성과를 여실히 보여준다. 당대 신문과 잡지가 가장 인기있던 매체라는 것을 증명하듯 신문에 실린 다양한 삽화와 뉴스, 칼럼을 볼 수 있다. 섹션별로 각기 다른 작가에 대한 설명을 읽고, 그때 당시 신문엔 어떤 글이 실렸는지 볼 수 있다. 또한 이상의 책 기상도와 김영랑의 영랑시집, 길진섭의 백록담 등 수많은 근대기 시집의 원본을 감상할 수 있다. 한 켠에는 이들의 시를 몇 가지 들을 수 있는 곳도 마련돼 있다. 삽화와 함께 시를 감상해보자.

제 3전시실 이인행각

제 3전시실은 문인과 화가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정지용과 장발, 김기림과 이여성, 이태준과 김용준 등 문예계를 대표하는 그들의 관계를 보는 재미가 있다. 시인 백석과 화가 정현웅의 만남이 특히 인상 깊었는데, 그들은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들은 조선일보사의 잡지 <여성>의 편집자로 일했는데, 당시 이 잡지는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이 잡지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실렸는데, 정현웅의 그림과 함께 보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제 4전시실 화가의 글 그림

제 4전시실에서는 일반적으로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문학적 재능도 남달랐던 예술가의 글과 그림을 함께 볼 수 있다. 먼저, <<근원수필>>의 저자 김용준을 만날 수 있다. 한 쪽에는 앉아서 작가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도 있는데, 수필집 말고도 그가 그린 ‘다알리아와 백일홍’도 감상하면 좋다. 또한 화가 장욱진, 박고석, 천경자, 김환기의 작품 및 서적도 감상할 수 있다.

2021년 새해 첫 기획전으로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미술과 문학이 만났을 때’ 전시는 회화 140여 점과 희귀 자료 20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1시간이 금방 지나가다 못해 부족할 정도로 작품도 많고 느낀 점도 많았다. 시대의 전위를 외치던 시기에 그들이 보여준 연대는 앞으로 어떤 이들과 관계를 맺고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기회를 준다. 얽혀있는 이들을 보며 지루하게 느껴지는 우리 삶의 전위를 향해 열심히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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