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자·구매자·덕후, 굿즈는 취향의 삼위일체다

굿즈 만드는 사람들, 딴짓의 세상 · 개식이

“사랑도 자아도 불안정하니 안정돼 보이는 데에 새기는 거죠.” 이토록 문학적인 표현으로 여행지에 낙서하는 연인들의 심리를 풀어낸 사람은 김영하 작가다. 그런데 이는 굿즈 산업이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어떤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마음, 실체가 없는 취향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게 굿즈이기 때문. 그러니까 굿즈는 취향으로 사는 게 아니라 취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취향의 확장, 굿즈의 다양화

취향은 문화 산업 전반을 아우른다. 향유할 수 있다면 모두가 취향의 대상이다.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스포츠, 브랜드, 심지어 도시나 역사까지. 뿐만 아니다. 대중문화 스타를 일컫던 셀럽이라는 표현은 이제 인간을 넘어 동물이나 캐릭터에 이르르는 등 그 반지름의 범위를 넓혀가는 중이다. 취향의 확장이라는 현상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 흐름을 타고 굿즈 또한 그 대상과 형태를 다양하게 확장시켜왔다. 굿즈는 이제 단순히 마케팅 전략에 좌우되는 상품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을 다양한 형태로 소유하고 드러내는 수단이 됐다. 특히 최근에는 정치·사회적 지향이나 관심사를 나타내는 표식으로서 사회적인 소통·참여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매체가 메시지라고 했던가. 굿즈 역시 그 자체로 메시지다.

가치와 만족감을 소비하다

취향과 굿즈의 세계가 넓어지는 중심에 ‘가치 소비’가 있다. 자신이 가치를 부여하거나 본인의 만족도가 높은 상품을 과감히 소비하는 행태다. 실용적이고 자기만족적이지만 무조건 저렴한 상품을 고르는 게 아니라 지향하는 가치의 수준을 그대로 둔 채 다른 요소를 꼼꼼히 따진다.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을 중시하는 ‘가심비’라는 소비 트렌드를 이끈 요소이기도 하다.

가심비와 가성비의 황금비율

부작용도 있다. 굿즈 자체가 실용성보다는 그것의 맥락이나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굿즈 판매자가 이익 추구에 몰두하면 소비자는 일방적으로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가심비에 치우치다 보니 가성비를 놓칠 위험에 놓인다. 둘 사이의 균형이 무너진다면 굿즈 산업은 지속될 수 없다. 적절한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모두가 애써야 한다.

굿즈는 세 가지 취향을 하나로 이어준다. 판매자, 구매자, 덕후. 그야말로 취향의 삼위일체. 그렇다면 굿즈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세상에 나올까. 취향에 구체적인 모습을 부여하는 이들은 어떤 형태의 노동을 할까. 단순히 손재주가 좋다고 훌륭한 굿즈 제작자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취향을 소재로 삼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일반 창작자와 구분되는 특징은 없을까. 여러가지 궁금증을 안고 굿즈 제작자를 만나봤다. 영화 관련 1인 스튜디오 ‘딴짓의 세상’과 역사 디자이너 ‘개식이’다.


관객이 품고 나올 하나의 장면
딴짓의 세상 오세범 대표

‘딴짓의 세상’은 주로 영화와 관련된 작업을 하는 1인 디자인·출판 스튜디오다. 임프린트(Imprint) 형태로 운영하는 ‘frame/page’는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거나 영화에 영향을 준 책을 중점적으로 내는 브랜드다. 취미로 즐기던 영화가 업이 되는 과정에서 결정적 순간이라고 콕 집을 만한 일은 딱히 없었다. 어떻게 보면 늘 손닿는 거리에 영화를 두고 가까이 했던 오세범 대표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취미가 일이 되기까지

이미 오랜 전부터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고 만들기를 좋아했다. 디자인을 공부하고 독립출판을 접하면서 영화를 소재로 작업을 시작했다. ‘THE SUMMER’는 매 호마다 한 편의 성장영화를 다루는 팬진인데, 이를 눈여겨봤던 영화사가 굿즈 제작을 제안했다. “주체적인 디자인·독립출판 작업을 하면서 기획과 디자인, 제작의 전반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이것이 영화사에 저를 알리는 일종의 포트폴리오가 된 것 같다”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제작 과정

딴짓의 세상의 굿즈 제작은 주로 영화사나 홍보사의 제안에서 시작된다. 일정이 가능한지, 영화가 스튜디오의 성격과 맞는지 등의 요소들을 고려해 진행한다. 제작이 결정되면 스크리너(내부 관계자가 미리 볼 수 있게 공유되는 영화)를 감상한 뒤 굿즈의 품목과 디자인을 제안한다. 이후 예산, 제작 가능성, 기간 등을 협의하고 그에 따라 굿즈를 제작한다.

딴짓의 세상이 굿즈 소재를 선택하는 기준은 상대적이다. 중요한 장면이지만 영화 개봉보다 먼저 공개되는 굿즈의 특성상 스포일링 우려가 있는 것은 피하고 마케팅 측면에서 적절한지도 고려해야 한다. 오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영화를 보는 관객이 마음에 품고 나올 한 장면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이다. 이처럼 개인적으로 와 닿았던 부분과 영화의 대표적인 장면, 영화사 또는 홍보사가 강조하고 싶은 내용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다.

책, 굿즈가 되다

글과 이미지는 이제 디지털 매체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때문에 책을 만들거나 사는 행위는 그 자체로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소유 자체가 책을 사는 이유가 된다. 일종의 굿즈인 셈이다. ‘THE SUMMER’부터 꾸준히 책을 내온 입장에서 오 대표의 생각은 어떨까.

“내용과 디자인이 탄탄하면서도 서로를 허물어뜨리지 않으면
자가 어떤 이유로 책을 구매하든 좋다”

이는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역할에서 비롯된 태도다. 그는 “특정한 기획 아래에서 어떤 디자인으로 이야기를 전달할까 고민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했다. 번역이나 교정 등은 전문가와 협업하되 그러한 내용이 대중에게 접근하는 방법에 집중한다. 결국 좋은 이야기를 잘 이야기하면 그 가치는 받아들이는 사람이 알아준다는 말이 아닐까.


역사를 일상 속으로
개식이 성범경 디자이너

개식이는 ‘개념과 의식 있는 이들’의 준말이다. 일종의 디자인 스튜디오로, 역사를 강의하는 곽주현 대표와 교재를 디자인하는 성범경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한다. 그러니 역사를 주제로 잡은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올해 초 “역사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소유하자”라는 모토를 걸고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 등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굿즈 제작에 나섰다.

무조건 ‘예쁘고 쓸 만할 것’

개식이가 중시하는 원칙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원칙은 ‘일상에서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역사를 직접 드러내는 방식을 피했다. 예컨대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 훈민정음 해례본을 직접 가져다 쓰는 디자인은 상징적이긴 하지만 일상에서 쓰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여겼다. 제품이 본래 용도로 쓰일 때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갖추도록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처럼 역사적 의미를 담되, 그 의미가 아니더라도 디자인 자체가 예쁘고 쓸 만한 제품으로 만들었다.

마케팅은 멀리, 역사는 가까이

두 번째 원칙은 ‘마케팅에 거리 두기’다. 물론 기업인 만큼 수익성을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를 알리는 데에 일차적인 목표가 있고, 그렇게 얻은 수익은 결국 우리 사회에 진 빚이나 다름없다는 게 개식이의 생각이다. 직접적인 홍보를 조심스러워 하는 태도나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는 것도 모두 그러한 마음에서 비롯됐다. ‘대한독립 굿즈’와 ‘독도 굿즈’ 제작에 협업한 CU와 의견을 같이 한 것도 이 부분이다. 실제로 기업 로고는 물론 브랜드 컬러 역시 최소한으로 했다.

지금 얘기할 수 있는 역사를 다룬다

개식이가 굿즈를 만들 때 고려하는 기준은 ‘시기’다. 역사라는 소재의 영향이 크다. CU와 협업한 대한독립 굿즈와 오늘, 독도 굿즈를 각각 광복절과 독도의 날을 맞아 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혹은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됐거나 평소 관심있던 사례 또는 알렸으면 좋겠다 싶은 소재들을 놓고 굿즈에 스토리를 풍성하게 담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회의하는 과정을 통해 결정한다. 무엇이 됐든 지금 여기서 누구보다 잘 얘기할 수 있는 역사를 다루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 과정에서 유적지나 박물관 탐방도 한다. 최근에는 5월의 동학농민혁명을 디자인하기 위해 정읍에 다녀오기도 했다.

역사 디자인은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개식이의 다음 프로젝트는 ‘지역사’다. 국가와 민족의 역사가 아닌 특정 지역의 역사를 알리는 것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알리고 싶은 역사’를 소재로 삼겠다는 목표와도 통한다. 통영 나전칠기의 역사를 다룰 예정인데, 실제로 통영에서 나전칠기 공예를 하는 카페와 협업을 하기로 했다. 나전칠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카드 지갑이나 가방 등 가죽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널리 알려지는 시기가 조금 늦어지더라도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있어야 진짜 좋은 역사 디자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역사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그에 대한 답변에서 이제 막 2년차에 접어드는 개식이의 지향점을 엿볼 수 있었다.

Credit
에디터
사진 딴짓의 세상 · 개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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