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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성 매디브 대표는 욕심쟁이 후후훗! “고객의 고객도 내 고객”

홍합밸리. 홍대와 합정 지역 인근을 뜻하는 말로 혁신적인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콘텐츠로 승화시키는 메카로 불렀던 IT 밸리다. 지금도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 법한 스타트업이 여전히 상주, 그곳의 터줏대감이 된 지도 오래다. 그들이 그곳을 떠나지 못한 것이 아니다. 홍합밸리의 클러스터 안에서 그들은 틈틈이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사이 하나의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거나 인재를 기업과 연결하기도 한다. 개방적 창업문화를 위해 저마다 빗장을 풀고 누구나 아이디어를 내놓는 문화 생태계가 이곳에 형성돼 있다. 그런 생태계가 하나하나 모여 또 하나의 의미 있는 플랫폼이 돼 스타트업과 개발자, 그리고 디자이너 간의 삼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매개체도 된다. 그 안에 디지털 에이전시 ‘매디브’도 공존한다.

인터뷰어. 김관식 기자 seoulpol@wirelink.co.kr
포토그래퍼. 이재은 작가 jaeunlee@me.com

“인터뷰가 처음이에요.(웃음)”

그는 코웃음치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런 천혜성 대표는 추석 연휴에도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고 했다. 그의 시선은 요즘 해외를 향해 있다. 꾸준히 해외 시장에 문을 두드렸다. 하반기에 큰 프로젝트도 연이어 잡혔다. 갈수록 문의도, 협상도 이어가느라 분주하다.

매디브는 과연 어떤 회사일까? 천혜성 대표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추구할까. 물론, 요즘 같은 시기에 기업 경영하기가 녹록치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내심 코로나19라는 상황 속에서 기업들이 버티고 있는 DNA가 무엇인지,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던 터였다. 그렇게 첫 수화기를 들어 그와 인터뷰 날짜를 잡고 마주했다.

검정색 정장에 하얀 와이셔츠를 새신랑처럼 차려입은 그가 기자 일행을 맞았다. 환히 웃으며 기자를 방으로 안내한 그는 옷깃을 추스르고 너털웃음을 보이며 내뱉은 첫 마디가 인터뷰가 처음이라니. 무엇보다 긴장을 누그러뜨려야 했다.

“글은 제 몫이니 지금처럼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의 옷깃에 마이크를 달았다. 녹취하기 전이라 담소를 잠깐 나눴다. 이제 갓 8개월 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이 있다는 것과 생각지 못한 의외의 경력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제 입도 풀었겠다, 그에게 녹취에 대해 잠깐 설명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세계 시장에 시선을 돌렸다면, 실질적으로 이곳저곳 오퍼(offer)를 넣기도 하고, 바쁘시겠습니다. 하나하나 기업마다 대응하며 그 사이 글로벌 경쟁력도 키우고 내비쳐야 하니, 억겁으로 어려울 수 있겠지만 한편으론 그 시간만큼 내부 역량도 빠르게 내공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을 듯합니다만.”(기자)

“네. 요즘 저희는 올해 남은 시간만큼은 해외 기업과 시장을 더욱 공략하는 데 무게를 두려 합니다. 그래서 요즘도 여기저기 제안도 하고 그 사이 내부 역량을 결집해 어떻게 시너지를 낼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늘 사람도 필요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것도 공백이 느껴지지 않도록 대안도 찾고 있고요.”(천혜성 대표)

최근 개발자, 기획자, 마케터의 씨가 말랐다고 한다. 극단적인 표현일 수 있겠으나 그만큼 중소기업은 애가 탄다는 얘기가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때를 기다릴 수는 없기에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숙명이지만 그는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생각이 없다. 천혜성 대표는 “지금 형편에서도 내부 직원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그들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성할 수 있는 환경은 무엇인지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그가 뒤이어 테이블 위로 꺼내 놓은 이 얘기에 솔직히 생각 못한 얘기에 살짝 놀랐다.

인터뷰가 처음이라지만 상대와 눈을 맞춰가며 하나하나 이야기 실타래를 푸는 천 대표에게서 조금도 긴장했음을 느끼지 못했다. 기자 너머 안개를 보는 빈 눈동자가 아닌, 그 너머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힘 있는 눈동자와 차분한 목소리 톤이 이 순간 그의 마음가짐과 각오를 대변하는 것이리라.

세계 시장을 들추다

원하는 사업의 수주를 위해서는 제안부터 달라야 하지 않나요? 어떻게 제안하는 편입니까?

“저희는 처음 고객에게 제안할 때 지금의 웹페이지 상에서 디지털 방향만을 제안하지 않습니다. 기술적인 부분과 UX/UI는 물론 마케팅 부분도 함께 융합해 토털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제안합니다. 결국 현 상황을 진단하고, 그것이 매출로 이어지기 위해 무엇을 갖춰야 하는지 하나하나 짚어 나아가죠. 그런 툴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그러한 부분을 우리가 채울 수 있다, 하고 강조합니다. 아울러, ‘고객보다 더 고객을 생각하자’고 늘 입이 닳도록 말하죠.(웃음)”

매디브는 디지털 에이전시인가요? 어떤 수식어가 필요할까요?

“우리가 디지털 에이전시인지, 디지털 광고대행사인지 그런 구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디지털이라는 변곡점에서 시너지를 내야하고, 그것이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도록 집중하는 것이 저희 역할이니까요. 영역을 구분하는 순간, 그 경계에 갇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구분하지 않는 편입니다.”

인력 배치가 여느 기업과는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매디브는 업무별 인력자원을 별도 팀으로 나누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글로벌 무슨 팀, SI 무슨 팀, 그렇게 구분하기보다 기획그룹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 기획그룹 내 SI파트와 글로벌 파트가 있어요. 그 파트 내에서 언제든지 원하면 누구나 부서 이동이 수평적으로 가능합니다.”

수평적인 이동이 가능하다고요?

“네. 국내 에이전시 업무를 하다 글로벌 마케팅을 하고 싶을 때 그 부서에 TO가 있다면 이동할 수 있습니다. 당장 개인적인 업무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업무 시스템과 프로세스만 잘 갖춘다면 이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저마다 두루 경험하는 것도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업무의 긴장감도 높일 수 있고요. 사실, 이렇게 추진할 수 있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구석이요?

“네. 바로 팀 리더들이죠. 어떻게 보면 리더는 그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쉽게 부서를 이동하기 어려워요. 그렇다면 그들이 그 자리에서 업무의 방향만 제대로 잡고 이끌어갈 수 있다면 누가 어떤 일을 하든 큰 리스크는 없지 않을까요?”

사실, 내부 인력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프로젝트를 하나 시행할 때도 책임감과 리듬도 갖춰야 하고요. 사정이 그렇다보니 프리랜서의 비중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대한 대처와 방향이 궁금한데요? 그것이 비용이 될 수도 있고, 업무 지속성과 연결될 수도 있겠고요.

“물론 일을 거듭할수록 프리랜서의 비용도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당장 이러한 현상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인재가 대기업으로 많이 유입되고 그 과정에서 다양화된 기술만큼 UI/UX는 물론 메타버스나 빅데이터, AI분야로 세분화돼 각 분야로 넘어가는 이도 많더라고요. 그처럼 IT 시장 자체가 다각화돼 있기 때문에 인재의 이동은 하나의 시대적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여기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겠죠. 그래서 저희가 글로벌 시장을 내다보는 이유도 한 명의 인원이 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더 많은 퍼포먼스를 내기 위함이지만, 그 안에는 파견이 아닌 비상주 형태의 업무 방식을 띨 수밖에 없어요. 이제는 비상주 업무방식이 정착해야 해요.

아시겠지만, 파견직 같은 경우 인원별로 비용이 책정되기 때문에, 본인 자체도 자기 몫만 하려는 인식기 강할 수밖에 없어요. 반면, 비상주 혹은 모두 모여서 하는 업무의 경우 더 성과를 내자는 취지로 모인 것이거든요. 개개인의 역할만 강조하는 것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어요. 저희는 일종의 루틴이 있는데, 오전에는 항상 시장 분석과 벤치마킹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아이데이션을 합니다. 그 아이데이션을 기준으로 저희가 제안서를 만들어 고객에 전달하죠. 결국은 인원에만 책정되는 비용 문제나 파견직은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웹은 지금보다 더욱 팽배해질 것이고, 기술 분야는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이 생겨날 텐데, 결국 저출산에 인구는 줄고 결국 시장 자체가 갈수록 더 많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으니 기존 비효율적인 업무 방식은 빨리 깨고 효율성과 집중력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죠.

한편으론,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지사(支社)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영국 에이전시를 보면, 프랑스와 미국으로 많이 진출해 있어요. 그 반대의 경우도 많고요. 유독 우리나라는 국내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아요. 아마 언어적인 차이도 존재하기 때문이겠지만 국가마다 다른 문화적 특성도 기인하는 듯해요. 해외는 스태프가 여기저기 섞여 일하며 에이전시에 쉽게 진출하기도 하고 크리에이티브와 성과도 나누는 반면, 국내는 이직이라는 개념이 짙고 대기업으로 옮겨가는 분위기가 강하잖아요. 인재 수급도 문제가 연쇄적으로 생기고요. 그래서 장기적으로 지사를 설립해 인재를 다양하고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지사 설립의 필요성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십시오.

“분명 해외 지사 설립의 니즈는 충분히 존재하죠. 만약 우리가 코카콜라나 월마트 사업을 수주한다고 가정하면 미국 지사를 설립할 수 있죠. 시장성으로 볼 때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을 떠올리고 있어요.”

내부에도 새로운 경험과 동기부여를 줄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곳곳에 해외 지사를 두루 경험하며 부서 상관 없이 본인이 더욱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시야를 키우고 성장할 수 있다면 저는 그보다 더욱 중요한 동기부여는 없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 시기를 언제로 잡고 계십니까?

“아직 막연하지만 길게 10년은 바라보고 있어요. 그때가 되면 또 어떻게 세상이 변할지 모르죠. 더 일정이 당겨질 수도 있고요. 저는 이러한 비전을 직원과 수시로 공유합니다. 상담이라는 명목으로요.(웃음) 사실, 직원들은 우리 회사에 대한 비전을 확인할 길이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항상 얘기하며 귀띔하는 편입니다.”

창업, 그리고 진화

손상만 대표와 공동 창업하셨죠?

“네. 함께 울고 웃으며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웃음)”

언제, 어떻게 창업한 겁니까?

“사실 저희 회사가 3인 대표 체제였어요. 원래, 손상만 대표와 또 다른 분이 함께 창업하셨고, 저는 나중에 합류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CEO를, 손상만 대표는 CFO로 함께 하고 있죠. 사실, 합류 제안을 받았을 때 저는 신혼이었기 때문에 살짝 고민은 했죠. 안정된 직장에 그대로 남을까, 아니면 새로운 도전을 할까, 하고요. 하지만 결국 제가 믿고 기댈 수 있었던 손 대표의 든든함이 더 컸던 것 같아요. 함께 더 오래 일하고 싶은 마음에 합류했어요. 그 두 분이 늘 제 옆에서 하나하나 힘이 돼주셨고 밀고 당겨주고(웃음) 그랬죠.”

그 믿음과 신뢰는 단시간에 쌓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웃음)

“뭐, 사소한 것일 수 있는데, 사람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잖아요. 손 대표와 함께 디지털 에이전시에서 짝 맞춰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둘이 뭐라도 함께 손발을 맞춰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던 터였죠.”

문제는, 사업은 사업이잖아요. 그 과정에서 함께 일을 하다보면 티격태격할 때가 있는데 어떠세요?

“그럼요. 사람이 하는 일, 어찌 아무 문제가 없을 수가 있습니까.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요.(웃음) 중요한 건 감정을 빼고 업무적인 것만 서로 논한다는 사실이죠. 어떻게 보면 서로 비즈니스적인 면보다는 형제 같이, 좀 오래된 사이기 때문에 형제처럼 그냥 대놓고 막 싸웁니다.(또 웃음)”

어떻게요?

“기자님은 형제끼리 어떻게 싸우세요? 뭐, 그냥 욕하고 싸우다 금세 화해하고 그러지 않나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저렇게 형제처럼 싸우다가도 어느 정도 해결되면 그 다음부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어디어디 맛집이 있는데 밥 먹으러 가자’고 얘기하죠. 그럼 아무렇지 않게 툴툴 털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갑니다. 소화도 잘 돼요. 때로는 술 한잔 입에 털어 넣으며 인생 얘기도 하고 그러죠. 서로 배우고 힘이 돼주는 입장입니다.”

그럼, 이쪽 업계에 처음부터 발을 내딛은 건가요?

“아니요. 저는 원래 요리를 전공했어요.”

요리요? 그럼 어떤 요리를…

“27살 무렵까지 일식 요리를 했어요. 요리는 좋았지만 주말도 그렇고 제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결혼도 하고 아이도 함께 키워야 하는데 주말에 제가 쉬지 못하면 아내 혼자 힘들잖아요. 그래서 요리를 그만두고 광고학을 다시 공부하게 됐어요.”

방향을 바꾸셨는데, 후회는 없었습니까?

“광고를 접한 후 공모전을 준비하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포토샵도 만지다보니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결국 학원 공부를 병행했죠. 디자이너에 눈을 뜨게 됐고, 결국 기획 퍼블리셔까지 오게 됐는데, ‘이게 내 길이구나’하고 무릎을 쳤지요. 저와 정말 잘 맞더라고요. 한 길을 우직하게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에 감춰진 끼를 발견하기 위해 그 시기를 적절히 타고 두루 경험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봐요.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거든요.”

노후에 일식집을 열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건 진짜 은퇴하고 나서, 여기서 제가 목표로 했던 것을 전부 이룬 후에 계획하고 있어요. 조그맣게 열어서 하루에 열 명 정도 받을 수 있는 일식 오마카세를 해보고 싶긴 해요. 하지만 그건 나중 이야기죠.”


디지털 경험, 자산 되다

이케아(IKEA), 하면 360도 디지털 쇼룸을 빼놓을 수 없지요. ‘쇼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기존 이케아의 스토어 느낌을 희석해야 했을 텐데요. 쇼룸과 스토어의 차이는 뭡니까?

“디지털에서 구현하는 쇼룸과 스토어의 차이를 말씀드리기 전에 저는 이케아를 떠올리면 ‘이 가구가 우리집과 어울릴까?’하고 머릿속에서 여기저기 상상을 하곤 해요. 여기에 집중했어요. 고객이 가구를 들일 때는 단순히 디자인보다 이제는 집안 곳곳에 적합한 가구 배치를 떠올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가구가, 혹은 제품이 우리 집에 배치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온라인 스토어에는 ‘사진’보다 ‘쇼룸’, 그것도 디지털 쇼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이케아의 인기 비결은 물론 가구도 가구지만, 얘네들이 배치된 공간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고객이 직접 매장에 온 것 같은 경험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 이것이 이케아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매력 아닐까 싶습니다.”

고객의 디지털 경험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했다는 데서 이케아 측에서도 긍정적으로 판단한 것 같습니다.

“넵. 오프라인 매장에 직접 가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직접 고객이 체험하여 현실적인 감각을 높여 구매로 이어질 확률을 높였습니다.”

말이 쇼룸이지, 처음 머릿속의 지도를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었는지도 궁금한데요?

“네. 코로나19 이전이니까, 2018년 전후네요. 이케아 쇼룸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일본 내 실제 이케아 쇼룸 자체를 모두 촬영, 참고할 필요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 팀이 후쿠오카에서 1박, 미야기현 센다이에서 1박, 나고야 1박, 도쿄와 교토에서 각각 1박 등 머문 적이 있었거든요. 처음엔 신나서 와~ 하고 출발했지만 이렇게 열흘 가까이 일주하다보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일정 마치고 나서 무조건 숙소에서 쉬기 바빴죠. 거의 누워서 움직이지 않았죠.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이 맞아요.(웃음) 그래도 그때 각 스토어를 돌면서 콘텐츠 얘기도 하고, 여러 기술적인 요소도 주고 받고, 당시 나눴던 이야기와 경험은 두고 두고 우리의 자산이 됐답니다.”

이케아 디지털 쇼룸
Square Enix

이밖에도 Square Enix라는 큰 프로젝트도 진행하셨지요?

“네. Square Enix(미국, 영국)는 전체 웹사이트 리뉴얼 컨설팅에 참여했어요. 배송과 물류, 재고 파악, 결제 시스템 구축 등을 포함한 e커머스 전체 컨설팅에을 제안하고 참여했죠.”

이렇게 깊이 있는 디지털 콘텐츠를 가미할 수 있다는 것, 매디브만의 경쟁력이 될 텐데요, 매디브라는 사명(社名)은 어떤 의미입니까?

“많이 궁금해 하세요. 매디브(madive)는 매드(Mad, 엄청난, 깊은)와 다이브(Dive, 다이빙하다)의 합성어에요. 즉 특정 산업에 깊이 뛰어들어 확실한 결과물과 성과를 낸다는 의미를 띠고 있어요.그래서 프로젝트 하나를 하더라도 하나 하고 끝나는 게 아닌, 깊은 사고와 실행력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퍼포먼스가 현실이 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매디브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혹은 영감을 얻기 위해 평소 챙기는 루틴(Routine)이나 활동이 무엇인지 궁금한데요?

“특별한 것은 없어요. 다만, 머릿속을 말랑말랑하게 비우고 사고를 유연하게 하기 위해 꼭 하나 챙기는 것은 있지요.”

궁금한데요? 혹시, 틱톡이나 유튜브 시청 같은?

“비슷합니다. 해외 코미디 영화를 많이 봐요. 코미디 멜로든, 코미디 액션이든 가리지 않아요. 우리와 문화적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여기서 창의적인 코드를 많이 발견해요. 이젠 크리에이티브가 국경이 없어진 지 오래잖아요. 거기서 힌트를 많이 얻는 편이죠.”

할 수 있다는 믿음

매디브를 어떤 회사로 만들고 싶으십니까?

“저는 매디브를 구글과 같은 회사로 만들고 싶습니다.”

왜 구글로 점찍으셨나요? 특별한 이유가?

“자율을 바탕으로 한 권한과 책임 문화도 배울 점이 많지만 언제, 어디서, 누구와 일하든 경계 없이, 분야와 상관 없는, 궁극적으로 크리에이티브를 넘나드는 회사로 키우고 싶어요. 꼭 구글처럼 되겠다는 게 아니라 구글과 같은 문화로 시너지를 내고 싶은 거죠.”

그러기 위해 먼저 사내에서 먼저 구축해야 할 시스템이 있다면요?

무엇보다 ‘성과시스템’이겠죠. 눈앞에 성과가 보이지 않거나 보상이 없으면 누구나 현실을 의심하게 되거든요. 이러한 부분을 체계적으로 시스템화하고 성과를 구체화하면 어디에 있든 업무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을 정착시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렇죠. 책임감도 생기고.

“맞습니다. 저희는 1년에 두 번 워크숍을 진행하는데 늘 해외로 나갔고, 건강검진도 대형병원과 협약을 맺어 진행합니다. 본사 업무 시간도 6시간 30분입니다. 이 시간을 집중력 있게 업무할 수 있도록 하죠. 10시 출근, 점심 시간은 1시 30분이고요. 6시 정시 퇴근입니다. 상여금 제도도 있어, 영업이익의 10%를 직원들에게 다시 돌려줄 계획입니다.”

무조건 어디서 하니까 우리도 한다, 그런 것이 아니라 분명 목적이 있을 것 같은데요.

“있지요. 성과와 보상 시스템을 구축하면 누가 디테일하게 업무와 결과를 체크하지 않아도 회사의 성장이 본인의 성장과 직결시키고 다양한 모티베이션을 장착할 수 있거든요. 결국 이러한 문화가 쌓여서 이직률도 낮추는 것 같아요. 사람이 하는 일인데, ‘너 말고 사람 많아’가 아니라 ‘지금 나와 함께 하는 당신이 베스트’라는 생각을 나누고 싶어요. 결국 이들도 내부고객이거든요.

이런 고민 하나하가 절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요.

“근데, 하나만 내려놓으면 편하더라고요. 돈이죠. 복지도 결국 돈이잖아요. 그 돈에 대해서만 욕심을 내려놓으면 직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더라고요.”

앞에 말씀하신 내용을 종합해보면 매디브의 10년이 기대됩니다. 개인적인 10년 후, 바람이 있다면요?

“10년 후 은퇴하고 싶어요. 그럴 수 있도록 오늘의 매디브의 이상을 현실로 바꿔놓아야겠죠. IPO(Initial Public Offering, 비상장기업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유가증권시장 또는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는 것)를 하고 싶어요. 이게 제 소망입니다.”

그럼, 은퇴를 위해서는 IPO를 해야 한다는 가정이 성립되는데요.

“그렇죠. IPO를 이루지 못하면 저는 은퇴를 할 수 없죠. 그만큼 회사가 목표를 갖고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놀이터 같은, 이것저것 많이 시도도 하고 성과도 내고요. 이런 생각도 했어요. 직원도, 학생처럼 방학을 만들어 볼까? 하는.”

방학이요?

“네. 직장인을 보면 물론 휴가도 있지만 제대로 푹 쉬기가 어렵잖아요. 직장을 그만 두거나 죽지 않는 이상은요. 그래서 맘 편히 쉴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재충전하고 견문도 넓히고요.”

아이가 이제 8개월 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네. 아내가 많이 힘들죠. 아직 말을 못하지만 많이 귀엽습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더 힘을 내야죠.”

이것이 바로 아빠 미소지요.

“감사합니다.”

장시간, 매디브의 비전과 직원들을 위한 마음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인사이트>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해주시지요.

“네. (옷매무새를 차분히 가다듬더니) 일하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좇는 사람과 자신의 미래를 보고 달리는 사람. 두 가지 모두 정답일 수 있겠죠. 다만 저는 후자를 보고 좇으려 합니다. 삼성전자가 처음 휴대폰 사업을 추진했을 때 굉장히 부진했대요. 그래서 모두가 힘을 모아 이겨내자는 의미로 1998년 10월 출시된 삼성전자의 최초 폴더형 휴대폰 ‘SCH-800’ 회로기판에 이러한 문구를 새겼다고 해요.

‘할 수 있다는 믿음’

결국 당시 국내 4위였던 삼성전자 휴대폰의 시장점유율은 이듬해 모토로라를 제치고 1위를 탈환하죠. 코로나19로 상황이 녹록치 않고 속도가 느릴 수 있어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분명히 자리한다면 저마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요. 모두 파이팅입니다.”

그렇게 천혜성 대표와의 2시간에 달하는 달콤쌉싸름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인터뷰하다 기자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동의하기도 하고, 때론 민감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지만 기자의 질문 하나하나, 사소한 제스처도 다 받아 현답(賢答)으로 풀어낸 천혜성 대표. 그는 분명히 젊다. 육체적인 젊음뿐 아니라 사고(思考)가 젊다. 그렇기에 매디브도 젊다.

2015년 혜성처럼 등장, 7년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매디브의 족적(足跡)은 확실했다. 매디브가 뛰어든 깊은 수심, 분명 그곳엔 또 다른 매디브만의 세상이 열리고 있다. 그게 노다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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