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기를 그리다, 일러스트레이터 오하이오

일기를 쓰듯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오하이오의 작품은 대체로 어딘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나 물건, 사람을 담고 있다. 실제로 본 적 없어도 본 것 같은 느낌. 다른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는 ‘개인적인 순간’을 기록할 때 진정으로 하루를 보냈다고 여긴다는 오하이오의 작업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일기를 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COVER. Untitled/25

이름. 오하이오(Ohio)
지역. Korea
인스타그램: instagram.com/ohio_ooooo
그라폴리오: grafolio.com/ohiooooo


안녕하세요. 먼저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일러스트 작업을 하시게 된 배경도 궁금하고요

‘오하이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윤아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제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건 늘 그림이었어요. 미대를 갔고, 일러스트 회사를 다녔죠. 그러다 회사를 나오게 됐고 1년 정도는 여행도 가고 해보고 싶은 걸 하면서 뒹굴뒹굴 놀았어요. 저는 그때가 ‘나와 내 그림이라는 게 뭘까’라는 고민의 시작점을 형성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겠다고 그림을 그린 건 아니었어요. 그냥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그리기 시작했죠. 웹에 올려둔 작업물을 보신 분들로부터 조금씩 연락이 왔고, 그렇게 작업 활동을 시작한 지 이제 딱 2년이 됐어요.

▲Untitled/12

‘오하이오(Ohio)’라는 이름에는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요? 보자마자 떠오르는 건 미국 오하이오주예요. 혹시 오하이오주에서 지낸 경험이 있으신가 생각했어요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예요. 처음 이름을 정할 때 제 별명이나 그림에 담을 의미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고민을 했어요.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었지만요. 그러다가 이젠 정말로 정해야 할 타이밍이 됐는데 마침 혁오의 ‘ohio’란 노래가 흘러나왔어요. 노래의 몽환적인 분위기도 좋았지만 특히 오하이오라는 단어가 자아내는 느낌이 한순간에 제 마음 속으로 들어왔어요. 특별한 의미 없이 단순하게 정해졌지만, 그래서 더 맘에 들어요. 오하이오주와는 아무 관련이 없답니다.

의외로 많은 분이 활동명에 큰 의미 부여를 않거나 조금은 충동적으로(?) 정하기도 하더라고요. 작가님도 비슷하시네요. 그럼 표지 작품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제목은 ‘UNTITLED/ 25’예요. 저는 반려견 ‘토리’ 와 살고 있는데 한동안 일이 너무 바빠 놀아주지도 못하고 산책도 못 나갔죠. 당시에도 새벽까지 일을 하고 있었어요. 공기가 답답해 창문을 열었는데 해가 뜨기 직전의 파란 하늘이 아주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날 토리와 신나게 뛰어노는 꿈을 꿨어요. 토리는 산책을 할 때 뒤돌아서 저를 꼭 확인하곤 하는데 그런 디테일까지도 있는 꿈이었죠.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강하게 인식된 꿈 속의 장면에 이끌려 바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UNTITLED’라는 제목이 눈에 띄어요. ‘이름이 없는 것’이 이름이 된 셈인데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작가님의 개인 작업에 붙이는 제목이 아닐까 하는데요

맞아요. 그전 작업들은 대부분 특정 제목에 숫자를 붙여 시리즈로 제작했어요. 그런데 때론 그러한 방식이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물론 제가 작업에 임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았어요. 어딘가 제한되는 느낌이 들었죠. 포토샵에서 새로운 도큐먼트를 생성하면 그것이 UNTITLED라는 제목으로 열려요. 아무것도 정해두지 않은 상태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했던 것 같아요.

그럼 UNTITLED 작업에 담으려는 것은 무엇인가요?

작업들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나에 대한 기록들이에요. 나에게 주어진 ‘자유성’과 ‘계절’에 나를 담고 그때 그 순간들을 일기를 써 내려가듯이 기록해요. 그림의 겹을 쌓아 무언가 이루려하기보단 뭉쳐있던 덩어리를 풀어내려는 작업이에요. UNTITLED라는 제목의 도화지 위에 현실감 없는 잔상들과 내 안에 가득한 이야기들, 어쩌면 모두 다 개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누군가에게 공유돼 새롭게 섞이는 순간이 가장 흥미로워요. 이것을 기록하고 나면 저는 진정으로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자유성’이라고 하면, 그리고 싶은 걸 그리는 자유를 뜻할까요?

‘자유성’은 제가 제 자신에게 약간 집착에 가깝도록 끊임없이 주입하는 것이에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했던 건 대학교 4학년이었던 때 잠깐이었던것 같아요. 그전에는 입시미술을 했고, 그 후에는 회사에서 원하는 걸 그려야 했죠. 내가 진정 뭘 원하는지, 어떤 걸 그리고 싶은지를 찾는 일은 제 작업의 중심축이며, 언제나 현재 진행 중이에요.

▲Untitled/1
Untitled/9

‘계절’은 의식주에 큰 영향을 미치잖아요. 그래서 우리 일상의 외적인 부분, 예를 들어 색감이라든지 형태라든지 재료라든지 하는 것들을 근본부터 바꾸죠. “순간들을 일기를 써 내려가듯이 기록”하는 작가님 같은 분들이 크게 의식할 수밖에 없는 요소일 것 같아요

저는 평소에도 계절과 날씨에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아요. 날씨가 너무 좋다, 덥다, 춥다는 표현도 반복적으로, 그것도 ‘많이’ 해요. 자연이 변화하면서 주는 풍경의 변화나 온도, 거기에 더해진 감정, 날씨와 시간이 주는 느낌을 통해 컬러와 작업의 소재가 결정되는 일이 많아요.

계절만큼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요소는 없나요?

‘음악’인 것 같아요. “난 아마 미술을 하지 않았으면 음악을 했을 거야” 라고 말할 만큼 음악을 좋아해요. 지금도 작업할 때면 항상 음악과 함께하고, 길을 다닐 때도 이어폰이 없다면 큰일(?)이 난다고 생각할 정도죠. 제 작업에 있어 영감을 더해 주고, 그 감정을 이끌고 가는 데에 아주 큰 역할을 해요. 가끔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노래를 소재로 삼아 작업을 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인 것이 공유되는 순간을 흥미롭게 여긴다는 것에 대해 좀 더 말씀해주세요

제 작업은 상상에서 시작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보고 느낀 것들이 많아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나의 시선을 덧대 그 감정을 표현하려고 해요. 그런 것들은 자연스럽게도 대부분 제가 좋아하는 것과 행복하게 느끼는 것들을 나타내고 있더라고요. 보시는 분들께서도 그 느낌을 받고 편안하고 좋은 기분을 얻으셨다고 할 때 제일 기뻐요.

작가님이 좋아하거나 자주 쓰는 요소나 방식은 무엇인가요?

조그만 인물이 그림 안에 있는 형태를 선호해요. 처음에 큰 덩어리들이 보이지만, 작은 인물을 통해 또 하나의 작은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게 재밌어서 그런 방식을 많이 써요. 또 빛을 이용해 그림자를 만드는 작업이예요. 좀 더 입체적인 느낌이 들게 하는것 같아 가장 재미있어해요. 제 그림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요소 같아요.

작가님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어떤 ‘느낌’을 냈으면 하시나요?

편안함과 따뜻함이요. 예를 들어 아주 추운 겨울이나 시원한 바다에서도 뭔가 그안에서 따뜻함이 느껴졌음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해요.

그럼 ‘오하이오의 작품은 이렇게 보면 좋다’라는 감상법이 있을까요?

제가 의도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개개인의 상황이나 특정 입장에 따라 시각이 달라질 수도 있잖아요. 전 그런 것들이 재밌어요. 자신에게 보여지는 대로,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죠. 정답을 찾기보단 전체적인 분위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 담길 원해요.

특히 기억에 남은 작품이 있는지 궁금해요

Untitled/ 21 작업이요. 지난 여름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가 끝난 후 처음으로 마무리 한 작업이었어요. 실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아 묵혀뒀던 작업이었는데, 페어에서 만난 분들의 응원에 탄력을 받았는지 다시 꺼낸 날에 빠르게 작업을 완성했어요. 한번 묵혀둔 작업을 다시 꺼낸다는 자체가 제겐 부담되고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럼에도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고 뿌듯했어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작가님의 평소 시선이 어떤지도 궁금해요.

일상이나 어떤 풍경, 꿈, 영화에서 저도 모르게 정지된 프레임으로 잡히는 한 장면들이 있어요. 이 장면은 정말 당장이라도 그리고 싶다. 이렇게 생각이 드는 장면이요. 그럴 때마다 사진이나 메모로 기록을 해두기도 하고요. 그런 식으로 평소 익숙한 장면들도 갑자기 그림으로 연상되는 때가 있어요. 사실 그런 순간들이 정말 많은데 기록하지 못하고 놓치는 부분들이 많죠. 최대한 그런 부분들을 기억하고 작업으로 가지고 오려고 노력해요.

위 질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은데요, 일러스트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같은 재료를 가지고 어떤 사람은 글로, 음악으로, 또는 영상으로 표현해내는 도구 중에 하나가 있다면 저에겐 일러스트로 그걸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다른 것보다 시각적으로 직관적일 수도 있고 이미지로써 접하기 쉬운 것 같아요. 그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보통 작업하는 과정은 어떤가요? 아무래도 의뢰 받은 작업은 개인 작업과 또 다른 단계를 밟아야 할 것 같은데요.

개인 작업은 그날의 환경에 따라 느낌 위주로 시작한다면, 의뢰 받은 작업은 좀 더 신중해지고, 시작하는 데까지 오래 걸려요. 우선 한 가지를 파는(?) 시간을 갖고 의뢰인이 의도하고자 하는 내용을 따라 마구잡이로 이미지를 서치해요. 꼭 일러스트가 아니더라도 찾아보는 식이죠. 또는 노래 한 곡을 종일 반복해서 듣기도 하고, 누군가의 눈에는 전혀 관련이 없을 어떤 한 부분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보기도 해요. 또 어떨 때는 아예 편견된 이미지를 갖게될까봐 서치를 안하는 경우도 있어요. 작업이 시작되면 저는 따로 스케치를 거치지 않고 바로 면으로 형태를 잡아나가요. 불필요한 요소를 배제하고 최소한의 색상과 형태로 잡아나가려고 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으신가요?

‘작업을 통해 뭘 하고 싶다’ 같은 장대한 목표보단, 올해는 지금 하는 작업들을 직접 캔버스로 옮겨보고 싶어요. 다양한 재료를 통해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앞으로 무엇을 하든 그림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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