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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쁘아 메이크업 펍점

espoir make up pub

놀러 와 에스쁘아 메이크업 펍점

‘화장’을 취미 삼는다고 할 때, 그에게 화장은 화장품 및 화장 소품에 대한 조사와 체험, 구매를 포함하는 활동이다. 화장품을 발라보고 비교하고, 구매하는 경험은 그에게 ‘노는’ 일일테니, 화장품을 ‘구매하는 공간’은 일종의 ‘놀이 공간’일 것이다.

작년 11월 개장한 화장품 브랜드 에스쁘아의 콘셉트 스토어 ‘에스쁘아 메이크업 펍점’은 화장을 취미 삼은 이들이 좀 더 ‘잘 놀 수’ 있도록 꾸며진 화장품 매장이다. 위치는 자사의 타깃층과 같은 주 사용자를 가진 ‘홍대’, 주제는 홍대의 맥락이 무던히 묻어나는 ‘라운지 펍’이다.

 

공간의 문법

모든 공간은 저마다의 문법을 가진다. 눈높이의 계단식 매대에 층층이 진열된 화장품, 매대 중간 설치된 거울, 계산대를 지키거나 손님 제가끔을 상대하는 직원은 ‘화장품 매장’의 문법이다. 이미 자리 잡힌 문법은 잘 깨지는 법이 없는데, 간혹, 변화한 요구에 따라, 혹은 요구를 변화시키기 위해 다른 문법을 적용한 별난 공간이 등장하기도 한다.

에스쁘아 메이크업 펍점에서 가장 별난 부분은 ‘앉을 자리’가 있다는 점이다. 매장은 입구 앞 둥근 바 바깥을 둘러 여러 대의 의자를 두었고, 매장 안쪽 생맥주 기계와 비슷한 외양의 액체 파운데이션 실린더 근처에 벤치를 설치했다. 맞은편에 화장대 여러 대를 두어 그 앞에도 의자를 비치했다.

화장품 매장, 특히 로드숍 매장에는 거의 의자를 들이지 않는다. 메이크업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매장에서도 화장대 앞을 제외하면 손님이 앉을 자리를 마련하는 경우는 드물다. 화장품 브랜드가 매장에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은 매장을 머무를 수 있는, 머물러서 즐길 것이 있는 놀이 공간으로 기획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구매 공간을 놀이 공간으로 확장하기 위해 에스쁘아가 선택한 방법은 다른 놀이 공간의 문법을 빌리는 것이었다. 에스쁘아는 자사의 주 고객 20~30대의 여러 놀이 공간 중 주류 매장, 그중에서도 ‘라운지 펍’에 주목했다.

라운지 펍

기자가 매장에 찾아간 시간은 평일 오후 여섯 시였다. 일찍이 해가 져서 주변은 어두웠다. 매장의 간판은 검었는데, 검은 간판 중앙에 빨간 네온 선으로 둘러친 입술 윤곽이 붙어 있었다. 문을 열고 매장에 들어서자 큰 디귿 모양의 바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바에 달린 투명한 찬장에 술병이며 와인 잔이 늘어져 있었는데, 술병은 똑바로 서 있었고 와인잔은 거꾸로 붙어 있었다. 매대는 바 의자에 앉아서 제품을 살필 수 있도록 바 바깥으로 테이블처럼 붙어 있었다.

더 즐거운 화장을 위해, 에스쁘아 메이크업 펍!

매장 벽은 회칠하고 그친 것 같은 질감이었는데, 고르지 않은 벽 한쪽에서 빔 영상이 재생됐다. 화면 안에서 서로 다른 색 물감 두어 개가 화면 가득 펼쳐졌다가 섞이기를 반복했다.

매장의 가장 안쪽에는 액체 파운데이션 실린더가 진하기 별로 여럿 설치돼 있었다. 실린더는 꼭 생맥주 기계의 생김을 닮았는데, 파운데이션을 뽑아낼 때의 모습 역시 손잡이를 내려 생맥주를 제조할 때의 것과 흡사했다. 파운데이션 샘플을 내리는 동안 잠시 대기할 자리로 보이는 벤치 위 벽에 간판에 붙어 있던 입술 윤곽과 같은 모양의 네온이 분홍색 갈대 장식 사이로 드러나 있었다. 실린더가 설치된 테이블 뒤, 매장 가장 안쪽 벽에는 바 천장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술병이 열 맞춰 서 있었다.

장소의 맥락

자주 홍익대학교 정문 앞으로 펼쳐진 번화한 상권을 가리키는 ‘홍대’는 소위 ‘젊은’ 거리다. 인디 음악인이 거리공연을 하고 라이브 클럽 데이에는 길마다 대학생들로 그득하다. 해가 완전히 지면 술이 들어간 붉은 얼굴과 세 발짝에 한 번씩 마주칠 수 있다.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번화가 근처에는 소주에 김치찌개를 안주 삼아 술 마시는 학생들이 많지만, 조금만 위쪽으로 올라가면 조용한 펍에 자리 잡은 20~30대 직장인을 여럿 만날 수 있다. 대체로 단골 장사하는 펍이다. 사장님과 손님 사이 안부 인사가 오가고 음악은 대화를 해칠 만큼 크지 않다. 서로 말을 붙이는 것도 붙이지 않는 것도 자연스럽다.

에스쁘아 메이크업 펍 점은 펍이 밀집한 골목보다는 아래쪽 번화가 가까이 위치했지만, 이곳의 생김과 분위기를 꼭 닮았다.

즐길거리

평일 오후 여섯 시에 매장에서는 특정 색깔의 립밤을 즉석에 만드는 ‘컬러 믹스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기자가 방문한 날도 역시 그즈음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바의 중간에 마련된 흡사 철판 아이스크림 가게의 그것 같은 철판을 모서리까지 꼼꼼히 닦아내는 직원 앞으로 손님 두어 명이 앉았다. 철판 위에 유화물감 같은 제형의 립밤을 펼치는 직원과 펼쳐진 립밤을 휴대전화 사진으로 담는 손님 사이로 대화가 자연스레 오갔다. 손님이 요청한 색깔은 붉은 기 도는 분홍색이었다. 색상이 정해지자 직원은 다른 색의 물감을 철판 위로 조금 덜어내 붉은 물감 옆으로 펼쳤다. 직원은 지금이 카메라에 담기에 가장 예쁠 때라며 너스레를 떨면서 두 색의 물감을 잠시 펼친 채로 두었다가, 손님이 사진 찍은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섞어나갔다. 중간중간 손님이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지면 직원이 답변했는데, 직원에게서 대화 의지가 물씬 느껴졌다.

지난 2월 신사동 가로수길에 신설된 에스쁘아 콘셉트 스토어의 주제는 ‘유러피안 마켓’이다. 위치에 따라 혹은 다른 이유로 주제는 다르지만, 더 즐거운 화장을 위한 장소라는 점은 같다. 혹 더 즐거운 화장품 구매 경험을 원하는 소비자라면 본인에 더 즐거운 콘셉트를 찾아 방문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 같다. 하나 더. 홍대점에서는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라이브 클럽 데이’에 ‘야광 립터치 서비스’를 제공하니, 방문 시 참고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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