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 Design

애플, IBM, 에어비앤비 전용서체에 어떤 흥미로운 사연이?

배민 을지로10년후체와 네이버 나눔글꼴

기업 전용서체는 특징이 뚜렷하든 중립적이든 브랜드 정체성이 녹아있기 마련이다. 국내에선 배달의 민족과 네이버가 서체 디자인에 큰 의지를 가진 기업이라 할 수 있다. 배달의 민족은 한나체·주아체·도현체·연성체·기랑해랑체·을지로체·을지로10년후체 등을 배포했고, 네이버는 나눔고딕·나눔명조·나눔손글씨·나눔스퀘어 등을 배포했다. 두 기업은 서체 ‘이름’부터 의도가 확실하다. 서체를 만드는 이유부터 배포하는 방식, 작명법 등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체감할 수 있기 때문에 전용서체에 관심을 둔다. 이에 글로벌 IT 기업의 전용서체가 만들어진 과정과 그 이름에 얽힌 흥미로운 사연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Apple – San Francisco체

2014년 발표된 후 지금까지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체는 디지털 제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서체이자 수많은 IT 기업이 참고하는 주요 레퍼런스로 자리했다. 영문, 숫자, 기호의 균형감, 사용성은 물론 Display, Compact, Text, Mono, Rounded 등으로 서체를 확장한 방식까지 혁신적이었다.

가독성과 심미성 모두 뛰어난 SF

하지만 우리가 아는 샌프란시스코체는 태초의 형태와 매우 다르다. 애플 초창기 아이콘과 서체는 수잔 케어가 전부 디자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녀가 그린 1984년의 샌프란시스코체를 보자.

출처. 수잔 케어 웹사이트(http://kare.com/apple-icons/)

잡지나 신문에서 글자들을 오려내서 누가 쓴 것인지 못 알아보게 하는 것을 Ransom Note Effect라고 한다. 첫 번째 샌프란시스코체는 이 효과를 이용해 다소 개구진 서체를 만들었다. 서체보다 그림에 가까울 정도다. 현재의 샌프란시스코는 그저 이름만 같을 뿐 극단적인 가독성과 시원한 형태의 산세리프다. 마찬가지로 애플의 세리프 서체인 뉴욕도 옛 서체 이름만 빌렸을 뿐 형태적 유사성은 전혀 없다.

잡스는 애플 서체에 누구나 알만한 대도시 이름을 붙이라고 지시했다. 이 도시를 고른 이유는 알 수 없고, 단지 잡스가 그렇게 짓고 싶어했다는 사실뿐이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2개만 있어 그 유래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1990년대에 존재했던 애플 서체 리스트를 보면 모나코, 시카고, 로스앤젤러스 등 대도시 이름으로 일관성을 유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서체들도 모두 수잔 케어가 담당했다.

(참고. 메킨토시 서체 역사(바로가기) / 샌프란시스코 서체의 역사(바로가기))

더 이전으로 돌아가보자. 애플은 2002년까지 Garamond를 전용서체로 사용했고,

2002년부터 2014년까지는 미리어드(Myriad)체를 전용서체로 사용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애플 인하우스 디자이너들이 제작해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미리어드체는 Robert slimbach와 Carol Twombly가 디자인했다. 각각 Adobe Garamond와 Adobe Caslon을 디자인한 사람들로 타입 디자인의 마스터라 할 수 있다. 미리어드는 당시엔 최신 기술이었던 Multiple Master Font로 개발됐다고 한다. 이는 한 서체에 Condensed, Wide, Italic 등 다양한 Weight와 Style을 담는 기술을 의미하는데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방식이다(볼드와 라이트를 각각 따로 설치하지 않는 것처럼). 미리어드도 이름의 유래를 찾을 수 없었지만, ‘무수히 많은’이라는 뜻을 지녔기에 당시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잘 지은 이름이라 느껴진다.

2. IBM Plex

서체를 만드는 데는 비용과 시간, 노동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된다. 하지만 전용서체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득이다. 2017년, IBM이 IBM Plex를 내놓기 전까지 IBM의 전용서체는 헬베티카였다. 한때 애플을 포함한 여러 기업들의 전용서체이기도 했던 바로 그 헬베티카다. IBM은 헬베티카 라이선스 비용으로 매년 100만 달러 이상을 Monotype에 지불했다.

1960~70년대엔 IBM이 일반적인 기계가 아니라 좀 더 근대식 기계를 만든다는 점에서 모던하고 효율적인 헬베티카가 알맞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 IBM의 사업 영역은 PC 하드웨어를 넘어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미래적인 소프트웨어, 비지니스 컨설팅 등으로 크게 확장됐고 브랜드 차원에서의 변화가 필요한 국면을 맞았다. 이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Mike Abbink가 합류하면서 IBM만의 서체를 제작하기로 했다.

2017년에 발표한 IBM Plex서체는 로고에서 느껴지는 직선과 곡선의 대비가 절묘하게 합쳐졌다. Mike Abbink는 “이 서체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과 기계적으로 구현되는 순간 사이의 기이함을 글자의 형태로 담아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래 IBM의 아이덴티티를 디자인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Eliot Noyes의 이름을 따 서체 이름을 Eliot이라 지으려 했지만 그의 가족이 거부했다. Abbink는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야 했고 plex라는 이름을 고안했다. ‘-plex’는 다른 단어와 붙어서 다른 의미를 생성해내는 접미어로 IBM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는 메타포였다. Multiplex, Duplex와 같은 단어처럼 IBM plex도 하나의 단어로 기능하는 것이다. Eliot이라 지었다면 낭만적이고 유서 깊은 이름이 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Plex가 좀 더 IBM스럽고 매력적인 이름인 것 같다.

3. Airbnb Cereal

에어비앤비는 오랜 기간 LL Circular를 전용서체로 사용했다. 2013년에 출시된 LL Circular특유의 지오메트릭한 디자인으로 에어비앤비, 스포티파이를 비롯해 많은 IT 기업의 사랑을 받았고 제2의 Futura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LL Circular로 제작된 광고

2018년 5월, 에어비앤비는 시리얼이라는 이름의 전용서체를 발표했다. Circular처럼 지오메트릭하지만 더 둥글고 개구진 인상을 지녔다. 개발한 이유는 대부분 기업이 마찬가지겠지만 시중에 있는 기성 폰트는 디지털 환경에선 적합하지 않거나, 반대로 디지털 환경에서의 가독성은 높지만 브랜드 서체로서는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글로벌 기업들은 여러 환경에서 많은 언어를 제공해야 하는데 복잡한 옵션들이 완벽하게 구현된 서체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2008년, 창립자 Brian Chesky와 Joe Gebbia는 에어비앤비를 창립했지만 그들의 서비스에 접속하는 사용자도 없었고, 돈은 바닥나고 빚만 쌓였다. 빚 청산을 위해 그들이 선택한 것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 맞춰 민주당 버락 오바마와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가 그려진 시리얼 박스를 파는 것이었다. 다른 창립자는 미쳤다고 했지만 그들은 밤새 접착제로 상자를 붙였다. 실제로 오바마 박스 ‘Obama O’는 3일 만에 매진됐고 이베이 같은 쇼핑몰에서 중고로 350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슬프게도 존 매케인 얼굴이 붙은 Cap’n McCain은 매진되지 않았다고.)

처음 서체를 개발했을 땐 전통 네이밍 방식도 고려했지만 경쾌하고 개방적이며 단순한 형태를 지닌 이 서체에 약간 별난 부분을 가미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리얼이 회사를 구한 사연을 담아 전용서체의 이름이 ‘시리얼’이 됐다.

4. Google Product Sans체

구글은 2015년 리브랜딩을 진행하면서 전용서체를 만들었다. 새로운 로고는 순수하게 기하학적으로 다듬어진 형태로, 단순하면서 친근하고 이해하기 쉬운 스타일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독특한 부분은 어린아이가 글자 쓰는 것을 연습하듯 획을 그리는 순서와 방향을 정직하게 그린 듯한 인상이라는 점이다. 구글은 이를 ‘Childlike simplicity of schoolbook letter printing’이라 설명했다.

더 귀여운 부분은 살짝 비틀어진 ‘e’다. Google에서 e만 비뚤어진 것은 구글이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색다른 도전을 한다는 것을 상기하기 위함이었다.

구글 프로덕트 산스체는 새로운 브랜드 시스템을 완벽하게 이행하기 위해 제작됐고, Simple, Humble, Approachable을 중요한 키워드로 선정했다. 여기서 Humble이라는 키워드가 인상 깊다. 서체의 디테일을 보면 로고의 e를 비튼 것처럼 소문자 a, 대문자 Q 등의 디테일이 약간 엉뚱하고 어설프다. 왠지 이런 의도된 어설픔이 구글이 생각한 Humble 아니었을까.

전용서체는 구글 로고와 함께 쓰이기 때문에 비슷하면서도 달라야 했다. 그래서 적당히 중립적인 요소를 넣었다. 구글 프로덕트 산스체는 이름 그 자체로 제품에 사용되는 서체라는 의미다. 구글의 제품 지향적인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5. Android Euclid체

2019년 안드로이드 역시 리브랜딩을 하며 새로운 전용서체를 지정했다. 아직 어디에 쓰는지는 모르겠고 공식 웹사이트 android.com에만 적용됐다. 왜 유클리드인지, Swiss Typefaces의 유클리드인지, 앞으로 전용서체로 계속 쓸 것인지 등 구체적인 정보는 알려진 바 없다. 세세하게 서체 디테일을 뜯어봤을 때 Swiss Typefaces의 유클리드를 커스텀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기하학적인 형태를 원했기에 (이름부터 아주 기하학적인) 유클리드를 선정하지 않았나 싶다.

6. Microsoft Segoe체

애플이 헬베티카를 전용서체로 사용하던 시절, 마이크로소프트는 헬베티카와 유사하게 생긴 전용서체 Arial을 만들어 전용서체로 사용했다. 이때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려고 헬베티카를 베꼈다는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개인적으로 아주 재밌다고 생각하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Arial을 만든 Monotype에서 애써 변호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헬베티카 라이선스 비용을 피하려고 했다기보다 Arial 개발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갔다고 공식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완벽하게 자폭이 동일하다는 점은 피할 수 없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의 공식 전용서체는 Segoe다. 2012년 마이크로소프트가 25년 만에 로고를 리뉴얼하며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이 서체 또한 Monotype에서 개발했지만 Arial보다 완성도는 높다. 체스 글립이 포함된 Segeo Chess부터 Segoe Print, Segoe Script, Segoe UI, Segoe UI Emoji, Segoe UI Symbol, Segoe UI Historic까지 폭넓은 스타일과 언어, 자족을 지원한다.

Segoe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로고를 비롯해 웹사이트, 각종 프로그램, 하위 브랜드들에 일관되게 사용되며 구글 프로덕트 산스체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Segoe와 Arial이 무슨 의미인지는 찾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애플, IBM, 에어비앤비, 구글, 안드로이드, 마이크로소프트 전용서체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디자인 이야기보다는 어쩌다 전용서체를 만들었는지,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을 언급한 것에 가깝다. 기업 전용서체는 문자 사용성과 가독성, 브랜드 정체성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어렵고 복잡한 작업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서체는 궁극의 브랜딩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모든 문자가 의도적으로 설계된 디자인이라면, 브랜드와 사용자의 접점이 얼마나 넓어질까?’하는 생각도 든다. 국내도 전용서체로 브랜드가 강력해진 사례가 많기에 앞으로 더 새로운 형태, 새로운 방식의 서체가 등장할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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