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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아는 그림을 그린 만화가 김성모

과제·시험·계약 등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마감을 지키며 살아간다. 마감은 이름만 들어도 중압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로, 일주일에 한 번씩 마감하는 웹툰 작가가 바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일주일에 다섯 번 마감한다면 어떨까? 거기에 유튜브·굿즈몰 등 만화와 관련한 여러 사업 병행은 덤이다. 불가능한 일정을 현실로 만드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근성의 신’ 김성모 작가다. 만화가 말고는 다른 직업을 생각한 적 없을 정도로 만화에 진심인 그는 많은 히트작과 두터운 팬층을 보유했다.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성공한 만화가지만, 그의 열정은 아직도 활활 타오르고 있다.

디자인. 유해인 디자이너 uhaein@ditoday.com

글. 김성지 기자 jerome@ditoday.com
사진. 유해인 디자이너 & 카르만 제공

세대를 초월하는 만화가

오마주(Hommage)는 영화에 재미를 더하는 요소 중 하나로, 가끔씩 다른 작품의 대사가 나오거나 상황이 연출되는 상황을 말한다. 후배가 존경하는 선배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선배 작품 중 한 장면을 인용하는데, 이는 만화계에서도 동일하게 활용된다. 지금은 유튜버 침착맨으로 유명한 이말년 작가, 차세대 ‘만화의 신’으로 불리는 박태준 작가는 그들의 작품에 한 작가의 작품을 오마주 했다. 그 주인공은 네이버 웹툰 『쇼미더럭키짱』의 작가 김성모다. 이외에도 김풍·주호민·기안84 등 여러 인기 작가가 그의 팬임을 자처한다.

김성모 작가는 ‘만화가의 만화가’로 불리면서도 인지도에 대한 큰 온도차가 존재한다. 엄청난 마니아와 그를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이라도 그의 그림을 보여주면 대답이 달라진다. 특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는 그림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외에도 여러 명장면을 보유하고 있다. 명장면은 최근 밈(Meme)으로 활용되며, MZ세대에게 높은 인지도를 자랑한다.

그가 만화와 동행한 지 어느덧 30년이 지났다. 강산이 세 번 변한 시점으로, 많은 풍파가 찾아왔지만 특유의 근성으로 극복했다. 종이 매체에서 만화를 연재하던 그는 네이버에서 웹툰을 연재하고 있고, 명장면으로 만든 ‘김성모의 근성티콘’은 1,000개가 넘는 카카오톡 이모티콘 중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대상을 10대로 좁히면 6위에 해당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고 했던가. 어떠한 역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근성을 외치던 그는 어느새 ‘근성의 신’으로 등극했다. 이번에는 생략 없는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김성모 만화 스튜디오로 향했다.

김성모 만화 스튜디오

근성으로 완성하는 1주·5마감

입구에 천하제패라고 쓰여 있어요.

제가 1993년에 만화 잡지 <보물섬> 에서 『약속』으로 데뷔했는데, 그때부터 제 목표는 변함없이 만화로 천하제패입니다.

쇼미더럭키짱은 사상 초유 월·화·수·목·금 모두 1위를 했는데… 달성한 거 아닌가요?

물론 네이버 웹툰 1위도 훌륭한 성과라고 할 수 있죠. 천하(天下)는 더 넓어요. 물론 스스로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평가는 독자가 한다고 생각합니다. 드래곤볼·슬램덩크 정도는 돼야 천하제패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지 않을까요? 『쇼미더럭키짱』은 준비 단계라 얘기하고 싶어요. 저는 30년차 만화가지만, 더 좋은 작품을 제공하고 싶다는 열정은 신인 때와 비교해도 자신 있습니다.

5요일 1위한 『쇼미더럭키짱』(출처. 김성모 작가 페이스북)

30년 동안 열정이 식지 않다니, 근성의 신 답습니다.
언제부터 만화가의 꿈을 키우셨나요?

저를 만화가로 이끈 작품이 있어요.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만화인데, 각자만의 사연으로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야구팀에 모여 최고가 되는 내용입니다. 당시 저는 좋지 못한 집안 사정으로 인해 희망보다는 걱정이 많았어요. 국민학교 6학년이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욱 가슴에 와닿았고, 어느샌가 제 가슴속에 희망이 가득 찼어요. 그래서 저도 『공포의 외인구단』의 작가처럼 누구에게나 희망을 주는 만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공포의 외인구단』 작가라면… 혹시?

이현세 선생님입니다. 제 영원한 사부님으로 1년에 한두 번씩은 꼭 봬요. 요즘도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하고 계시죠. 호민이나 기안이의 만화가 영화·드라마로 만들어 지는 것처럼 웹툰이 대세잖아요? 이렇게 웹툰 시장이 커질 수 있던 근간은 사부님이라고 생각해요. 전국에 만화방이 1,000개도 안되던 시절, 사부님을 중심으로 다른 작가들의 노력이 더해지며 만화 시장의 규모가 커졌죠.

주호민(좌)·기안84(중)·이말년(우) 작가가 그린 초상화

<이현세-김성모> <김성모-주호민·이말년·박태준>
같은 관계인 거죠?

그렇게 되나요? 사부님 정말 존경합니다. 그리고 호민이, 말년이, 조석이 등 후배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많아요. 그중에서도 태준이는 정말 놀라워요. 『외모지상주의』 1화를 봤는데, 신인 작가라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림·스토리·연출 등 모두 훌륭했어요. 다른 작가에 비해 만화계에 늦게 들어왔지만, 지금은 선봉에서 이 시장을 이끌고 있죠. 같은 만화가로서 너무 흐뭇하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의 구상을
50% 정도 구현 ⇨ 중박
70% 이상 구현 ⇨ 대박
90% 이상 구현 ⇨ 세계적 히트작


이렇게 인정하니 박태준 작가님과 협업한 거군요.
1주·5연재는 누구 아이디어인가요?

제안은 태준이가 했습니다. “형님, 한 번 해봅시다”라고요. 좋아하는 후배가 제안하는데 거절하는 선배가 있을까요? 흔쾌히 수락했죠. 1주·5연재는 네이버에서는 이례적이었지만, 제게는 새롭지 않았어요. <일간 스포츠> <스포츠 서울> 등 여러 신문에서 15년간(2000~2015) 연재했고, 신문은 1주·6연재였죠. 이 기간 동안 한 번의 휴재도 없었습니다.

1주·5회 연재라니…
협업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스토리는 태준이, 그림은 제 담당이었습니다. 스토리를 보면 놀랄 때가 많았고, 정말 기분 좋았어요. 분명 태준이가 썼지만, 내가 쓴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제 만화에 나온 대사나 장면을 이렇게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건 대한민국에 박태준 밖에 없죠. 덕분에 대부분 MZ세대인 네이버 독자들과 친해졌어요. 저도 어느덧 54살(1969년생)이라 그들과 친해지기 쉽지 않은 일이었거든요.

책장에 꽂힌 그의 대표작 『대털』

이번 작품 전에는 주로 성인 극화 위주였어요.
이유가 있나요?

애니메이션하면 어떤 나라가 떠오르나요? 일본이죠. 1999년부터 일본 문화에 규제가 풀리면서 일본 만화가 수입됐죠. 당시로선 상대되지 않았어요. 일본 만화와 맞붙어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했습니다. 아무리 일본 만화가의 실력이 좋아도 한국인의 정서를 표현할 순 없잖아요? 한국인의 한사회 어두운 면을 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거기에 저는 극화를 추구하는 작가이다 보니 성인 극화를 선택했죠. 현실감 넘치는 성인 극화를 그리기 위한 첫 단계는 사회를 파악이었죠. 그래서 취재에 나섰습니다.


<김성모 작가의 유명한 취재 일화>

  • 사창가를 취재하던 과정에서 그곳을 관리하던 건달에게 적발돼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구타당했다.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택시 안에서 사진 촬영하며 취재했다. ⇨ 『용주골』 발행
  • 1,500명의 여성을 농락한 제비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여자 꼬시는 기술(?)을 배웠다. ⇨ 『빨판』 발행
  • 어찌어찌 신세대 털이범의 청송 교도소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와의 흥정(?) 끝에 그의 절도 포트폴리오를 건네받았다. ⇨ 『대털』 발행
  • 이외에도 깡패의 싸움 실력을 알아보기 위해 실제 싸운 일화, 사채업자가 어떻게 채권을 추심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5,000만원을 빌린 후 갚지 않은 일화 등 전설같은 일화가 많다.

작가님을 ‘취재의 신’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기자로서 작가님의 취재 정신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정말 신기한 것이 독자는 바로 압니다. 현장 취재와 인터넷·책 등 간접 취재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요. 제가 직접 체험하고 느꼈으니, 더욱 정밀하게 표현할 수 있거든요. 여기서 간과해선 안될 것이 있어요. 성인물이라고 해서 ‘섹스나 폭력 같은 것이 주가 돼선 안 된다’입니다. 어디까지나 실감 나는 사회의 암울한 현실 묘사가 주입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만화와 웹툰

과거에는 종이, 지금은 휴대폰으로 만화를 봐요.
만화가 입장에서 만화와 웹툰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제작 방식이 달라요. 우선 진행 방향이 만화는 가로, 웹툰은 세로죠. 만화는 두 페이지가 한눈에 들어오기에, 두 페이지를 바탕으로 연출했죠. 그런데 웹툰은 한 번에 한 컷만 보이니 더 제한적입니다. 기존 만화가라면 이점 때문에 힘들었을 거예요.

또 다른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속도’라는 개념이 추가된 것 같아요. 만화책으로 보던 시절에는 독자마다 보는 속도가 다르지만, 웹툰은 스크롤 방식으로 한 컷만 있죠. 그래서 웹툰은 상대적으로 속도감이 있고, 중독성도 있는 것 같아요. 재미있는 점은 종이로 만화를 연재하던 시절에도 저는 독자가 리듬감 있게 보길 원했어요. 액션 극화와 리듬감 있는 대사를 통해 작품에 몰입시켰고, 어느새 다음권을 찾게 유도했죠.

학창 시절 『럭키짱』을 볼 때 리듬감이 있었어요.
『돌아온럭키짱』과 『쇼미더럭키짱』의 흥행 차이는 무엇인가요?

근성 차이? 『돌아온럭키짱』을 시작했던 2012년은 사실 네이버를 너무 쉽게 생각했어요. 제가 <일간 스포츠>에 들어갈 때 누구랑 경쟁했는지 아시나요? 바로 허영만 화백님과 경쟁했습니다. 이외에도 쟁쟁한 작가들과 경쟁했는데, 당시 네이버에는 극화 작가는 없었죠. 거기에 신문 연재 중인 작품이 3개였기에, 네이버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점차 시대가 변했고, 다들 휴대폰으로 만화를 보는 세상이 왔죠. 이후 많은 일이 있었고, 저는 완전 무장 상태라 할 정도로 준비를 했죠. 게다가 현 웹툰 시장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태준이와의 협업이었기에 『쇼미더럭키짱』은 좋은 성과를 얻은 것 같아요.

『쇼미더럭키짱』에서도 명장면이 탄생했어요.
수많은 명장면 중 Best 3를 꼽아 주실 수 있나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드라군’ ‘대인배’ 입니다.

『스타크래프트』 에 등장한 장면으로, 2000년대 중반에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켰다. 게시판에 한 글자씩 적으며, 이름을 완성하는 놀이로 ‘드라군 놀이’라 불렸다.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트드에 뛰던 시절, 드라군 놀이로 사이트가 다운되기도 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표현이지만, 이는 김성모 작가가 보급한 단어다. 그가 사용하기 전까지는 소인배라는 단어만 존재했다. KBS의 <바른 말 고운 말>에서도 소개되며 표준어가 됐다.

스타크래프트, LoL 등 유행을 잘 읽으세요.
심지어 『스타크래프트』는 블리자드에서 라이선스를 취득했어요. 이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어요.

당시 스타크래프트가 유행하던 시절, 당시 창간된 코믹 잡지 <팬티>에서 저랑 작업하고 싶다고 연락 왔어요. 그래서 저도 스타크래프트를 소재로 연재하고 싶으니 블리자드 측에 라이선스를 얻어달라고 요청했죠. 블리자드에서 수락했고, 연재를 시작했어요. 기존 스타크래프트 설정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극대화해 새로운 스토리를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훗날 스타크래프트2의 스토리와 일치해 이슈가 되기도 했죠.

보통 트렌드를 좇는 사람이 있고, 만드는 사람이 있죠.
그런데 작가님은 확고한 스타일이 있으면서도,

시기별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있죠.

작가라면 트렌드에 민감해야 합니다. 트렌드라 함은 사람들이 관심 갖는 소재기 때문이죠. 하지만 트렌드를 따라간다고 해서 성공을 의미하진 않아요. 그 안에서도 작가만의 독창성이 필요합니다. 시중에 사랑받는 작품들을 보면 모두 작가의 개성을 느낄 수 있어요. 물론 저는 트렌드를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트렌드를 좇지 않고 성공한 경우가 『럭키짱』 『대털』 『용주골』 등이 있죠.



그림, 스토리, 독창성
만화가에게 필요한 세 가지


김성모 하면 ‘강건마’를 빼놓을 수 없죠.
김성모 만화의 주인공은 무조건 강건마잖아요.
그 이름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제가 만화를 보던 시절에 주인공은 모두 강씨였어요. 그래서인지 왠지 강씨가 멋있게 보이더라고요. 또한 ‘건’이란 글자 또한 마찬가지였죠. ‘마’는 특별한 의미는 없었어요. ‘강건마’가 어감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강건마라는 이름이 탄생했고, 데뷔작 『약속』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각 작품에 등장하는 강건마는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거예요.

능력은 뛰어나진 않지만 근성은 뛰어나죠. 너무 압도적인 강자는 매력적이지 않더라고요. 좀 약하더라도 노력으로 시련을 극복한다면 독자가 더 몰입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정신력이나 인간 본연의 끓어오르는 열정을 강조하게 됐죠. 싸움을 잘하는 강건마는 없어요. 하지만 강건마는 결국에 다 이기죠. 제 만화에서는 싸움이지만, 독자도 자기만의 신념과 열정이 있다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성인물에서는 강건마가 등장하지 않아요. 성인물에서는 주로 ‘구석기’가 등장하고, 대털에서는 ‘교강용’이 주인공이었죠.

만화를 보다 어렴풋이 느꼈지만…
대화하다 보니 확신으로 바뀌었어요.
작가님이 강건마고, 강건마가 작가님 같아요.

그렇게 느낄 수 있죠. 대부분의 작가는 본인과 주인공을 일치시키는 경향이 있어요. 자기랑 비슷해서 일 수도 있고, 자기가 추구하는 모습을 주인공에 투영하고 작품에 몰입하다 보면 그 주인공을 닮아가기도 합니다. 사실 제가 만화계에서 특별히 잘 그리고 뛰어나서,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데뷔 후로 작품 공백기가 없습니다. 항상 작품을 연구했고, 신작을 출시했죠. 역시 가장 중요한 건 ‘근성’입니다. 항상 현역들과 피 끓는 경쟁을 해야 합니다. 강건마와 저는 뛰어나진 않지만, 결국에 버텨내는 근성은 비슷한 것 같네요.

김성모 작가의 자서전 『근성론』

성모’s Mentality, 근성

만화가로 지낸 지 30년이 됐어요.
만화가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히트작을 냈을 때죠. 스토리·그림 등 여러 작업을 거쳐야 하나의 작품이 완성됩니다. 히트작을 냈다는 것은 모든 독자가 인정하고 찾아준다는 의미기도 해요. 이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제 작품 중에서 히트작으로 인정받는 것은 7개 정도 있어요. 7개면 많다고 할 수 있지만, 제가 다른 작가보다 작품이 많잖아요? 400여 개의 작품 중에서 독자에게 화자되고 있는 작품이 7개 정도입니다. 하지만 내년, 내후년에는 제 히트작이 더 늘어날 거라 확신합니다. 작가의 최고작은 언제나 ‘신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히트작 개수도, 전체 작품 개수도 놀라워요.
역시 작가님은 스케일이 다르네요.
작가님 일화 중에 하나가 1달에 20마감이었다고…

제가 가장 바쁠 때는 1달에 20권씩 냈어요. 1달에 마감이 20번이라는 의미죠. 요즘 웹툰 작가도 바쁘기로 유명하잖아요? 1년간 꾸준히 웹툰을 연재하면 단행본 5권 정도 분량이 됩니다. 당시에는 제 작업량이 많긴 많았어요. 사실 만화가가 혼자 작업하면, 연재 속도도 늦기도 하고 연재 종료 후에 오래 쉬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그게 싫었어요. 제 신념 중 하나가 ‘작가는 독자에게 좋은 만화를 빠르고 많이 제공해야 한다’거든요. 그래서 화실에 체계적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화실원이 150명까지 갔던 시기도 있었죠. 먹여 살릴 식구가 많아지니, 쉴 수 없더라고요.

150명이요? 여러 명이 그린다는 느낌을 못 받았어요.
모든 작품의 완성도 한 명이 그린 것처럼 균일해요.

이 점이 정말 힘들었죠. 저희 화실 분업화 단계 중에 얼굴을 그리는 단계가 있어요. 이 단계를 진행하는 2명이 있어요. 저도 같이 얼굴을 그리기 때문에 3명의 그림이 일치해야 합니다. 세 명의 그림이 전혀 구분 안되기까지 10년 정도 걸렸어요. 많은 작업량은 작가에게 행복한 고민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만화가로서 힘들 때는 언제였나요?

트레이싱 사건 터졌을 때입니다. 당시 네이버 웹툰을 파악하지 못하고 시작했기에 『돌아온럭키짱』이 반응이 좋지 않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야심 차게 새로운 작품을 준비했어요. 그림체도 요즘 스타일로 바꿨고, 10대 말투를 공부해 대사를 구성했죠. 그렇게 탄생한 게 『고교생활기록부』입니다. 다른 웹툰은 한 화에 100컷 내외인데, 『고교생활기록부』는 140컷이었죠. 연재 3주 만에 1등을 하며 반응이 좋았는데… 사건이 터지고 말았죠.

한때 150명이었던 저희 화실은 사건 후에 3명만 남았어요. 당시는 정말 힘들었지만, 3명이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근성으로 버텼죠. 역시 정신만 꺾이지 않으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쇼미더럭키짱』 『인간대전』을 연재했고, 어느새 화실원도 30명가량으로 늘었습니다. 앞으로는 불미스러운 일 없이 더 좋은 작품을 제공할 일만 남았어요.

빼곡히 꽂힌 그의 30년간의 노력

30년이란 세월도 길지만, 유독 에피소드가 많아요.

많은 일이 있었지만, 취재가 좀 가혹했던 것 같아요. 취재 중 ‘이러다 죽겠다’ 싶은 경우가 많았어요. 청부업자를 진짜로 만나보니 피 냄새가 났으며 일반인과는 분위기가 달랐어요. 깡패와 싸우고 맞아 보기도 했죠. 그중에서 사채업자 건은 정말 힘들었어요. 5,000만원을 빌린 후, 갚지 않고 사채업자의 행동을 관찰했죠. 지금이야 지난 일이니 이렇게 얘기하는 건데, 당시에는 정말 심각했어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그 사채업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상황을 해결했습니다.

실전 취재로 스토리를 구성했다면,
그림 실력은 어떻게 키웠나요?

좋은 작품을 많이 보고, 한 작품을 선정합니다. 그리고 그 작품을 교재 삼아 똑같이 그려보는 것입니다. 야구 선수도 유명 선수의 자세를 따라 하면서 시작해, 결국에는 자기 자세를 만들잖아요? 만화도 똑같아요. 처음에는 무심코 따라 그리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배경은 어떻게 연출하는지’ ‘표정은 어떻게 구현하는지’ ‘스토리 흐름’ 등 다양한 것을 습득하게 됩니다. 이 작업을 반복하면 그림 실력과 연출력을 향상시킬 수 있어요.

김성모 작가에게는 ‘전설 같은 미담’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한다. 그런데 그는 ‘혈맹’이라 부르는 세 명의 화실원에게 집을 마련해 줬다. 집값의 일부를 지원해 준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집을 사줬다. 이는 2020년 <침착맨> 유튜브 방송에서 언급되며 화제가 됐다. 그로부터 1년 후, 본인 페이스북에 한 게시물을 업로드했다.

김성모 작가의 채용공고(출처. 김성모 작가 페이스북)

지난해 있었던 채용 공고도 화제였어요.

저도 많은 기대를 품었지만 아무도 채용하지 못했어요. 채용 취지는 ‘숨어있는 고수를 찾아라’였습니다. 당시 채용이 꼭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50명가량 지원했는데 저희가 기대하는 수준의 고수는 없었어요.

입사 선물로 차, 혈맹원이 되면 집까지…
김성모 만화 스튜디오 복지가 엄청나요.

제가 데뷔하고 난 후, 1년 후에 ‘김성모 화실(1994~1995)’을 설립했어요. ‘김성모 PRO 자유구역(1996~2020)’을 거쳐 현재의 ‘김성모 만화 스튜디오’가 됐죠. 김성모 화실 시절 합류한 3명의 친구가 있습니다. 1명은 눈부상으로 지금 쉬고 있고, 나머지 두 명은 지금도 같이 일하고 있어요. 20대 중반에 팀을 만들었고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죠. 이들과 함께 현역에서 물러나지 않고 70~80살까지 함께 일하고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떤 만화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어떠한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근성 있는 작품으로 독자에게 희망을 주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근성의 신, 김성모’였습니다.

근성의 신, 김성모 작가

근성으로 시작해서 근성으로 끝났던 인터뷰였다. 아직도 30년 차 만화가지만 그의 열정은 신인 시절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열정은 복리로 누적된 것처럼 더욱 커진 느낌이다. 후배 작가나 독자는 그를 만신(만화의 신)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는 손시래치며 아직까지는 근신(근성의 신)으로 불러달라고 한다. 그는 만화로 ‘천하제패’ ‘세계정복’을 외치는 것은 진심으로, 이를 달성해야 ‘만화의 신’이라는 칭호를 고려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미 고려해도 되지 않을까? 만화 잡지 <아이큐 점프>에 만화를 연재하던 당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마계대전』은 종종 1위를 했다. 무려 같이 연재되던 작품은 전 세계 최고 인기 만화 중 하나인 『드래곤볼』이다. 물론 그가 원하는 승리는 더 확실한 승리다. 세계 제패는 쉽지 않은 목표지만, 만화를 대하는 그의 태도나 열정을 보면 정말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희망을 전달하고 싶다던 그는 내게도 희망을 전달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니 그 희망은 내 가슴 한켠에서 열정 가득한 근성의 불씨로 피어났다.

Author
김성지 기자

김성지 기자

디지털 인사이트 기자. 아픈 건 참아도 궁금한 것은 못 참는 ENTJ. 궁금증을 해소하다 보니 아는 것이 많아졌어요.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욱 명확해진 인사이트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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