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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쉬는 왜 인스타그램 계정 운영을 중지했을까?

화장품을 만들 때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LUSH)가 소셜미디어 계정 운영 중지를 한 것이 한때 화제였습니다. 러쉬는 공식 웹사이트에 그 이유를 공개했습니다.

초기 소셜 미디어는 고객과 친밀하고 돈독한 관계를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의 진화는 사람들이 어떤 포스팅을 볼 수 있는지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됐고,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누가 무엇을 볼 수 있는지 결정하는 수준까지 됐습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그들의 포스팅을 더 많은 사람에게 도달시키고 검색 엔진 최상위를 선점하려고 돈을 지불하기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소셜 미디어 기업들은 정치, 종교, 캠페인, 프로모션 등 다양한 활동을 위해 의도적으로 개인 정보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소셜 미디어의 역기능인 디지털 폭력, 외모 지상주의, 불안과 우울 같은 정신 건강 문제 등이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 러쉬코리아

약 4.8만 팔로워를 가진 러쉬의 인스타그램 계정 폐쇄는 수백억원의 손해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하지만 러쉬는 브랜드 특유의 쿨한 어조로 “다른 곳에서 만나요”라는 짧은 메시지를 남기며 인스타그램 계정 운영을 중단했고 잇달아 페이스북·틱톡·왓츠앱·스냅챗의 다른 소셜 미디어 계정 운영도 모두 중단했습니다.

러쉬가 인스타그램에 남긴 이미지

1. 동물실험을 둘러싼 다양한 얼굴들

러쉬 공식 웹사이트에는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타 코스메틱 브랜드와는 다른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러쉬는 자연에서 얻은 신선한 재료와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정직한 재료를 사용해 모든 제품을 손으로 만듭니다. 더불어 공정 거래, 인권 보호, 포장 최소화 등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통해 기업 윤리와 신념을 알리고 있습니다.

– 러쉬코리아

러쉬의 메시지 중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이라는 문구가 눈에 띕니다. 그럼 화장품 개발을 위한 동물실험은 보통 어떤 모습으로 이뤄질까요? 토끼는 화장품 테스트에 많이 사용되는 동물입니다. 눈물의 양이 적고 눈 깜빡거림도 거의 없는 특성 때문에 목을 고정해 놓고 눈과 점막에 마스카라를 바르는 ‘드레이즈 테스트’ 실험에 자주 활용됩니다. 테스트를 거친 토끼는 수주에서 길게는 수개월간 눈에서 피를 흘리거나 눈이 멀게 됩니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한 장치에서 몸부림치다 목뼈가 부러져 사망하는 토끼도 무수히 많습니다.

드레이즈 테스트에 사용되는 토끼 모습(출처. 애니멀피플)

이외에도 일상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제품이 토끼의 희생으로 만들어집니다. 박테리아 균을 묻힌 탐폰을 견디거나 ‘질 자극성 검사’를 위해 콘돔 조각을 삽입한 채 5일간 생활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몸은 소중하다는 이유로 잔인한 동물실험이 감행되고 있는 셈입니다. 다행히 2017년 화장품 법 개정으로 화장품에서 동물실험은 금지됐지만, 탐폰·콘돔·생리컵·윤활제·데오도란트 같은 생리용품은 의료기기 및 의약외품에 해당해 여전히 동물실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생리용품은 윤리적 소비에 가려진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리적 소비: 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원료 재배·생산·유통·처리 등의 모든 과정이 소비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윤리적으로 판단해 이뤄지는 소비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가 점점 늘어나며 동물실험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에 부여하는 인증 마크인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가 윤리적 소비의 선택지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콘돔과 생리 컵 등을 생산하는 인스팅터스의 콘돔 브랜드 ‘이브(EVE)’가 최초로 크루얼티 프리 인증을 받기도 했습니다.

국제 동물권 단체 페타의 크루얼티 프리 인증(출처. 애니멀피플)

과거 라네즈·에뛰드·헤라·설화수 등의 브랜드를 거느린 아모레퍼시픽은 ‘화장품에 대한 불필요한 동물실험 금지 선언’을 통해 협력업체에 대해서도 추가 동물실험을 금지한 바 있습니다.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동물 실험의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자본이 필요한데 작은 업체의 경우 이를 감당하기 힘듭니다. 한편,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화장품 브랜드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 역시 여전히 존재합니다. 러쉬는 꽤 오랜 기간 이러한 논쟁의 최전선에 있었습니다. 러쉬의 윤리적 태도는 브랜드를 지탱하는 핵심 가치이기에, 소셜 미디어 계정 운영 중지라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러쉬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탈퇴가 아닌 여전히 ‘운영 중지’ 상태로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2. 탈퇴하지 않은 러쉬의 인스타그램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러쉬의 이러한 결정은 다각도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 러쉬의 브랜드 소셜미디어 계정의 운영 중단은 용기 있는 선택이며 많은 사람에게 소셜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부정성에 대한 반작용으로 긍정적 영감을 줬습니다. 하지만 러쉬는 인스타그램을 완전히 탈퇴하지는 않고 굿바이 피드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러쉬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방문해 응원 댓글을 남기며 자신의 신념과 브랜드 철학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즉, 계정 운영은 중단했지만 굿바이 피드는 계속 남아 브랜드의 윤리적 측면을 광고하고 있는 셈입니다. 러쉬에게 윤리적인 이미지는 브랜드 정체성 그 자체이기도 하며 사실상 마케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러쉬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브랜드가 점점 많아지는 것은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 또한 점점 늘어나는 것과 관계있습니다.

여전히 존재하는 러쉬의 굿바이 피드(출처. 러쉬 인스타그램)

조금 논의를 바꿔 보겠습니다. 작년 한국에서는 AI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나 브랜드의 과대광고 등으로 기업 이미지가 한순간에 추락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앞으로 가치 소비,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가 점점 더 많아지게 될 것이며, 강도 높은 윤리적 피드백을 기업 입장에서는 피하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브랜드가 윤리적 이미지에 투자하는 것은 피상적인 담론이나 철학적인 문제를 넘어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빅데이터로 더 가속화될 브랜드 윤리

고객의 니즈와 동기, 행동과 관련한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하는 데이터 드리븐(Data Driven) 운영 방식은 이제 많은 기업의 의사결정 표준이 된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데이터 드리븐 의사결정이 인기를 끄는 것일까요? 우리가 남기는 모든 것이 데이터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죠.

출근 전 스타벅스 앱을 활용해 사이렌 오더로 미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조금 뒤 방문해 굿즈 코너에서 잠깐 새로 나온 텀블러를 구경하다 커피를 들고 매장 밖으로 나온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사실 아주 익숙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이 평범한 장면에서 남는 데이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앱 로그 데이터, 방문 시간, 방문 매장, 주문한 상품, 지불 카드 종류,
텀블러 코너 접근 유무(와이파이 데이터)

이 사람의 아침 평균 방문 시간에 맞춰 텀블러를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쿠폰을 앱 푸시로 보낼 수도 있겠네요. 더 흥미로운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대형마트에서 한 남성이 화가 잔뜩 난 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남성의 딸에게 대형마트 측에서 우편으로 유아용품 할인쿠폰을 보낸 것입니다. 남성은 자신의 딸이 아직 고등학생인데 이런 쿠폰을 보낸 것이 임신을 부추기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대형마트 매니저는 겨우겨우 남성을 진정시키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이 남성이 매니저에게 건 한 통의 전화에는 완전 뜻밖의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실제로 남성의 딸이 임신한 것이었습니다.

미국 여고생의 임신 사실을 알아낸 대형마트 타깃(출처. 초이스경제)

어떻게 이 남성의 딸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 유아용품 할인쿠폰을 보낸 것일까요? 이 이야기는 미국의 대형마트 타깃(Target)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타깃의 데이터 전문가들은 소비자의 구매 행태를 25가지로 분석했습니다. 향이 나는 로션을 사던 여성이 갑자기 향이 없는 로션으로 바꾸거나, 미네랄 영양제를 갑자기 많이 사들이는 패턴 등으로 임신 추정 여성을 가려내 할인쿠폰을 보낸 것입니다. 아버지도 몰랐던 딸의 임신 사실은 바로 여기 있었던 것이죠.

타깃의 일화는 앞으로 올 세상의 단면을 잘 보여줍니다. 러쉬는 웹사이트에서 “디지털상에서 고객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변화가 필요하다”라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이러한 브랜드의 윤리적 태도는 앞으로 피할 곳 없는 빅데이터 시대의 얼마 남지 않은 안전한 그늘막처럼 느껴집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자신이 남긴 데이터를 악용하지 않는 브랜드를 찾을 것입니다. 윤리적 이미지는 앞으로 기업의 가장 큰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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