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조 前 한국광고단체연합회 회장

우리나라 광고 산업의 살아있는 역사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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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조 前 한국광고단체연합회 회장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표현이 감히 아깝지 않은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주변에서 그런 분을 만나기란 더더욱 어렵고 말이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 광고가 아직 산업으로서 본격적인 성장을 이루기도 전의 모습이 그래서 기자에게는 마치 TV를 통해 보는 옛날 이야기와도 같았다. 국내 최고의 광고회사로 손꼽히는 두 회사. 제일기획을 처음 만들고, 대홍기획의 첫 대표이사를 역임한 남상조 前 한국광고단체연합회 회장을 만나 우리나라 광고 산업의 살아있는 역사를 들었다.


우리도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판단 하에 약 30여 명이 을지로 쌍용빌딩에서 1973년 1월, 제일기획을 시작했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간 우리나라 광고 산업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해오셨는데, 사실 처음부터 광고 분야에서 일을 하신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보면 광고와 전혀 관계가 없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연세대학교 학부 재학시절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관심이 많던 상경계열 분야의 수업을 들으며 한 때는 학자를 꿈꾸기도 했었다. 군대를 다녀와 1963년 즈음이 됐을 무렵, 그때만 해도 국영 기업 몇 곳을 제외하고 나면 취업할 회사가 많지 않았는데, 처음 시험을 봤던 은행에 합격해 신문 하단에 이름까지 실렸었다. 그런데 당시 시험을 봤던 삼성그룹에서도 합격 통지를 받게 돼 삼성에 입사하게 됐다. 어찌보면 경제학, 회계학을 공부했던 전공을 좀 더 살린 셈이다. 대구에 있는 제일모직 공장, 부산에 있는 제일제당 공장에서 한 달씩 실습을 마치고 제일제당 경리과에 배치를 받았고, 약 2년여 정도 제일제당에서 일을 하게 됐다.

Q 그러던 도중 중앙일보 동양방송에서 근무를 하시게 됐습니다. 얼핏 생각해봤을 때 두 회사의 연결고리가 잘 떠오르지 않는데요, 어떤 일을 하시게 된 건가요?

1964년 라디오 서울방송, 동양방송 TBC의 개국 이후 1965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립자를 창업주로 중앙일보가 창간됐다. 그리고 같은 해 겨울 중앙일보·중앙라디오·중앙TV 통합 운영으로 전환되며 중앙 매스컴 센터가 형성됐다. 갓 입사 3년차 무렵이었는데, 그곳으로 발령이 났다. 아무래도 이병철 회장과 동향에 우리 집안도 잘 알고 계셨던 만큼 믿고 맡겨주신 것 같다. 중앙일보의 초창기 인력을 구성하는 일부터 모든 일이 내 손을 거쳐 진행됐고 직원 수가 1000여명 가까이 되는 등 완전한 매스컴 센터로 발전하게 됐다. 또 이곳에서 기획실 실장이 됐을 때는 국내 최초로 전산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Q 그렇다면 중앙일보 동양방송에서 본격적으로 광고 분야 업무를 시작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기획실장을 지내며 매달 경영실적과 관련해 이사회에 참석했는데, 그러던 중 한 번은 이병철 회장의 지시로 언론사 경영 체제를 배우러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 언론사의 광고, 수입 관계 등을 보고 배웠고, 출장을 마치고 리포트를 작성해 회사에 제출했는데, 이를 계기로 광고 분야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사실 광고 관련 공부를 한 것도 아니었고, 경험도 부족했기 때문에 고사를 하려 했으나 계속되는 권유에 광고국장을 맡게 됐다. 매스컴 센터 구축 이후 신문사의 수입 구조에 제일 고민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광고 시장이 약 200억 원 규모였는데, 그 중 신문이 약 40% 비중을 차지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워낙 기존 신문사의 영향력이 컸는데, 광고국장이 되고 제일 먼저 이 세 곳의 광고국장들과 관계를 맺었던 걸로 기억한다.

Q 그러던 중 제일기획 설립에 참여하시게 됐습니다. 여전히 우리나라 대표 광고회사로 꼽히는 제일기획은 처음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나요?

제일기획 역시 어느 날 다시 한번 일본 출장을 다녀오라는 이병철 회장의 지시에서 시작됐다. 미리 연락이 닿아있던 일본 광고회사 ‘다이이치기카쿠’를 견학하며 광고 전반에 대해 배웠고, 여러가지 관련 자료를 모았다. 그 이후 출장에서 돌아와 그룹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에도 삼성그룹은 제일모직, 제일제당, 삼성전자 등 자체적인 광고주가 있고, 매스컴 센터 기반의 매체 또한 보유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판단이었다. 최초에 그룹사 말고도 유한양행, 종근당, 롯데제과,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이 제일기획의 주주로 참여했다. 당시 중앙일보 3층 식당에서 열렸던 발기인회의에서 직접 브리핑을 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이때부터 중역을 맡았다. 불과 삼성그룹 입사 9년만의 일이었다. 그렇게해서 중앙 매스컴 센터 광고국 직원 일부, 그룹사 선전과 직원 일부, 그리고 주주사에서 일부가 모였고 약 30여 명이 을지로 쌍용빌딩에서 1973년 1월, 제일기획을 시작하게 됐다.

Q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절의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제일기획의 초창기 업무는 어떤 형태였나요?

당시 우리나라 광고주들에게는 ‘광고회사’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광고주를 섭외하러 다니며 우리에게 광고를 맡기라 설득하는 일보다는 광고회사가 왜 존재하고,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처음부터 설명했던 것 같다. 일본에서 출간된 광고 책자도 번역해 가지고 다니며 매체의 성격, 소비자 성향 등에 맞춰 광고 집행을 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알렸다. 우리의 목표는 우리나라 광고시장 매출에서 100억 원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당시 광고 전체의 50% 정도 규모였기에 사실 처음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는데, 제일기획에서 나올 즈음 됐을 때는 달성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국내에서 광고회사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광고회사가 왜 존재하고,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설명부터 해야 했다.

Q 그렇다면 제일기획이 처음 문을 열던 그 무렵, 국내광고회사는 거의 없었던 건가요?

제일기획이 처음 생길 때도 몇 개의 광고회사가 존재하긴 했다. 합동통신사라는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뉴스를 직접적으로 배포하지만 그때는 통신사를 통해서만 배포할 수 있었다. 합동통신사는 두산그룹 계열이었다. 계열사로 오비맥주도 있고 언론사를 상대하다 보니 광고 부서를 만들게 됐는데, 이게 나중에 오리콤이 됐다. 또, TBC가 제일기획을 만들었다고 본 MBC는 연합광고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연합광고는 나중에 MBC애드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밖에도 나라기획, 애드코리아, 현대기획 등이 있었다.

Q 이후에 그룹사에서 중역을 지내신 뒤, 뜻밖에도 대홍기획의 첫 사장이 되셨습니다.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제일기획 시절 한번은 회장님 브리핑을 하다가 ‘광고 업무에서 3년만 고생하라 하셨는데, 벌써 7년이 지났다’고 말씀 드렸더니, 당장 그 해 연말 중역 인사이동 때 삼성전자 전무로 발령이 났다. 이제 광고와의 인연은 끝이 났나 보다 하고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에서 본연의 관리 업무를 맡았다. 시간이 지나 1983년도에 그룹 세대교체 시기가 왔고, 나도 회사를 그만뒀다. 우리나라 제1회 회계사시험에서 합격했던 터라 회계법인을 해볼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무렵 롯데그룹에서 광고회사를 만드는데 이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개인적인 고민과, 회사 윗분들께 말씀드리는 등의 시간이 지나고 1983년 10월 대홍기획 사장으로 거취를 정하게 됐다. 당시 광고회사가 굉장히 많이 생겨났는데, 우리나라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광고 물량도 늘어 성장이 아주 빨랐다. 그 무렵 시청률 조사, 시청자 조사, 계층 조사 등 관련 연구도 시작됐다.

Q 대홍기획의 설립 배경도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4촌 동생으로, 대지라는 옥외광고회사를 운영하는 윤명의 회장이 있었다. 대지는 당시 전신주에 달아 매는 광고권을 갖고 있었는데, 롯데제과의 광고를 많이 유치했다. 이런 비즈니스를 바탕으로 롯데그룹과 자주 소통하던 윤 회장이 광고회사 설립을 제안했고, 소비재가 많은 롯데가 대홍기획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윤 회장이 대홍기획 회장으로 오고 경영자를 찾던 중 제일기획을 만든 경험이 있고 신문사 광고국장도 지냈던 내게 연락이 오게 돼 내가 대홍기획의 첫 대표이사로 부임하게 됐다.

Q 대홍기획 초기 시절, 외국 광고회사와의 교류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곳이었나요?

대홍기획 설립 후, 신격호 회장이 당시 일본 롯데의 광고를 담당하던 다이이치키카쿠 사카이 사장에게 롯데가 한국에 광고회사를 만들었다고 자랑을 하며 한국에 가면 한 번 만나 보라고 추천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카이 사장이 한국을 방문했고, 대홍기획의 윤명의 회장과 내가 직접 만나 업무제휴 얘기를 진행했다. 또 미국 광고회사인 DDB가 당시 일본 다이이치기카쿠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함께 업무 제휴를 맺게 됐다. 대홍기획, 일본의 다이이치키카쿠, 미국 DDB 등 모두 영어 D로 시작되는 회사여서 이른바 3D 업무제휴 라고 불렀었다.

부산에 전파가 잡혀 녹화해 온 일본 TV CF가 그야말로 귀중품 중의 귀중품 대접을 받았다.

Q 광고 분야에 계시는 동안, 국내에서는 최초로 국제 광고제에도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인지도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IAA(International Advertising Association, 국제 광고 협회) 국제광고대회에 나간 것이 1978년이었다. 당시 대회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렸는데, 북한 대사관이 나가고 우리나라 대사관이 들어간 지 채 몇 년이 안됐던 때다. 나를 포함해 6명 정도가 방문했는데, 그때 처음 세계에 우리 광고계를 소개하게 됐다. 이때 이후 가까운 일본 광고업계와도 교류를 활발히 하게 됐고, 그 이후에 AFAA(Asia Federation of Advertising Associations, 아시아 광고연맹)를 설립해 활동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 성과를 인정받았다. 지금은 다들 알다시피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광고 대국으로 성장했다.

Q 해외 이동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대였던 만큼 관련된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습니다.

1970년대는 여권도 한 번 사용하면 끝나는 단수 여권뿐이었다. 해외 한 번 나가는데 신원조회에만 보름 넘게 소요됐고, 반공회관에 가서 교육도 한 시간 받아야 했다. 첫 국제 광고대회 참석차 덴마크에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파리에 들러 중앙일보 특파원을 만나고, 거기에서 동경을 들렀다 귀국하는 일정이었는데, 동경행 비행기를 타고 보니 그 비행기가 모스크바 경유였다. 당시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모스코바 공항에 내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동경행 비행기를 타고 나서야 ‘이제 살았다’ 싶었다. 물론 귀국해서 바로 안기부에 신고를 했었다.

Q 그럼 당시에는 해외 광고를 보는 일 자체가 굉장히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매체들도 해외 광고 혹은 광고제 관련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물론 쉽지는 않았다. 1970년대 초만 해도 해외 TV CF라고 해봤자 부산 해운대에서 전파가 잡히는 일본 방송을 보며 광고를 녹화해 가져오는 수준이었는데, 그것을 서울에 가져 오면 그야말로 귀중품 대접을 받았다. 당시 전체 광고주의 80% 가까이가 제약회사였는데, 녹화해온 CF가 있을 때면 각 회사 선전과장들이 찾아오곤 했고, 그때만 해도 우리말로만 바꿔 베껴 만든 광고도 많았다.

Q 중앙일보 광고국장부터 시작해 약 20여년 넘게 광고 분야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 보셨을 때 감회가 어떠신가요?

원래 내 본연의 업무는 관리직인데, 사실 자칫 따분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 광고 분야는 늘 크리에이티브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관리는 관습에 의해 꼼꼼하게만 일을 진행하면 되지만, 광고라는 건 늘 상대방에게 새롭고 임팩트 있는 무언가를 전달해야 하는 만큼, 생활 자체가 상당히 활기 있었다. 돌이켜보면 새로운 분야의 분위기, 사람들을 접하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Q 이제 현업에서 한 발 물러나 계신데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면 무엇일까요?

특별한 일 보다는 여행을 많이 하고 싶다. 가고 싶은 곳은 머릿속에 많지만, 체력이 달려 이제는 좀 어렵지 않을까? 일본이나 중국 정도로 가까운 곳을 좀 다녀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지금도 어디를 갔을 때 사진을 잘 찍는다. 물론 전문적으로 하려면 장비도 챙겨야 해서 어렵겠지만 휴대폰으로도 구도를 생각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재미있다. 또 다른 취미로는 붓글씨를 쓰는데, 취미 삼아 수양 삼아 하고 있으면 잡념이 없어지고 몰입을 할 수 있어 좋다. 뭐 그리 특별하다 할만한 건 없다.

<남상조 회장 약력>

  • 연세대학교 경제학사(’64)/경영학 석사(’70)
  • 중앙일보 동양방송 기획실장, 광고국장(’71)
  • 제일기획 상무이사(’73)
  • 삼성전자 상무이사(’75)
  • 삼성종합건설 전무이사(’80)
  • 대홍기획 대표이사(’83)
  • 한국방송광고공사 공익자금 운영위원(’88)/ 심의위원(’91)
  • 사단법인 한일협회 이사(’88)
  • 한국광고학회 발기이사(’89)
  • 방송위원회 방송제도 개선 연구위원(’89)
  • 한국광고인대상(매일경제)(’89)
  • 한국광고업협회 회장(’92)
  • 한국마케팅연구회 이사(’93)
  • 국제신문사 대표이사(’96)
  • 중앙언론문화상(중앙대학교)(’94)
  •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95)
  •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95)
  • 방송위원회발전기금관리위원(’00)
  • 한국보이스카웃연맹 감사(’01)
  • KADD 회장(’01)
  • 아시아광고연맹 회장(’05)
  • 한국광고단체연합회회장(’08)

Credit
에디터
레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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